영화 '설계자'의 이요섭 감독은 배우 강동원을 이렇게 표현했다. 완벽한 외모로 만화 주인공 같은 비현실적인 면을 표현해 내지만 동시에 인간적인 감정들을 담아내 보는 이들을 설득하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는 평이다. 이는 강동원의 지난 필모그래피를 관통하는 말이기도 하다. 영화 '전우치' '초능력자' '가려진 시간' '인랑' '반도' 등에 이르기까지. 강동원은 감독이 그린 비현실적인 인물을 완벽히 구현하고 동시에 관객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현실에 발붙이게 했다.
영화 '설계자'도 마찬가지다. 의뢰받은 청부 살인을 완벽한 사고사로 조작하는 설계자가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 이야기를 담은 작품에서 설계자 '영일'을 연기한 강동원은 영화적인 인물을 현실감 있게 표현해냈다.
"시나리오를 읽고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살인 청부를 사고사로 위장하도록 만든다는 콘셉트 자체가 신선하고 재밌잖아요. 기존 범죄물과 달리 심리 드라마를 풀어간다는 점도 그랬고요. '영일'이 무엇이 진짜인지 믿지 못하게 되면서 미쳐가는 부분도 흥미로웠어요. 이 캐릭터를 보면서 '새로운 모습이 나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이런 캐릭터를 할 때도 되었다 싶더라고요."
강동원은 '영일'을 연기하며 "기본에 충실하게 찍었다"고 말했다. 클로즈업이 많았던 작품인 만큼 정석대로 '기본'에 주안점을 두며 접근했다는 설명이었다.
"지금까지 25~26편가량의 영화를 찍었더라고요. 대사가 없는 캐릭터들은 (연기할 때) 어려운 지점이 있어요. '설계자'도 마찬가지였고요. 그걸 극복하려면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기할 때 생각이 너무 많은 편이거든요. '이만큼만 다가가야 돼' '이만큼 움직여야 해' 하고 계산하며 연기하다 보니 호흡하는 걸 잊을 때도 있어요. 그런 점들을 넘어서서 '기본'에 충실하게 연기하자고 생각하고 작품에 임했어요."
강동원은 '영일'이 삼광 보안의 식구들을 "영리하게 이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해석한 '영일'은 소시오패스적인 성향이 있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위해서라면 상대가 원하는 말들을 건네기도 하는 입체적 면모를 가지고 있는 캐릭터였다. 능숙하게 캐릭터를 해체하고 엮어내며 자신만의 '영일'로 만들어냈다.
"그런 점이 드러나는 장면들이 있어요. '월천'과 '재키'를 대할 때 특이 잘 표현되죠. '월천'이 사랑에 목말라하고 있다는 점, '재키'에게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점에서 그런 면모가 드러난다고 봐요. 가스라이팅 하면서 조종했다고 보고 있거든요."
캐릭터에 대한 명확한 이해는 디테일로 이어졌다. 강동원은 '영일'의 집안 내부 등을 설계할 때도 머릿속에 구상한 명확한 그림들을 제안했고 디테일들을 채웠다.
"제가 생각한 '영일'의 모습들이 명확했어요. 그래서 감독님과도 이견을 조율할 때 편했고요. 극 중 '영일'의 집이 잠시 등장하는데 그때도 (제가 생각한 그림들을) 설명하며 캐릭터의 성향에 관해 이야기 나눴어요."
강동원은 '짝눈'(이종석 분)이 죽은 뒤 '영일'의 집이 피폐하게 표현된 데 의아함을 느꼈고 그런 디테일들을 감독과 상의했다.
"'영일'이 폐인 같이 지낸 것처럼 (미술) 세팅이 되었더라고요. 먹던 컵라면도 그대로 방치되어 있고 지저분한 느낌으로 그려졌었어요. 집을 둘러보다가 '조금 더 미니멀한 게 좋을 것 같은데요?'하고 제안해 드렸어요. 제가 생각한 영일은 소시오패스에 가까운데 그런 사람이 '짝눈'의 죽음 뒤 집도 안 치우고 폐인처럼 살고 있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영일과 안 어울린다'고 판단했고 감독님께서도 바로 받아들여 주셨어요."
영화 '설계자'는 러닝타임 내내 관객들을 '혼란'하게 만든다. '영일'이 겪는 일들이 실제인지, 환상인지, 우연인지, 필연인지 끊임없이 의심하도록 만들었다.
"영화 결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영일'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시겠죠? 영일이 미쳐서 꾸며낸 이야기일 수도 있고, 실제로 삼광 보안 팀보다 더욱 거대한 존재가 있을 수도 있고요. '짝눈'이 존재하는 인물일 수도, 아닐 수도 있죠. 이러한 의문과 혼란을 계속해서 이끌어가는 점이 중요했어요."
이런 혼란 속 '영일'의 코어는 무엇이었을까? 관객들이 극장 밖으로 나설 때까지 '혼란'을 안고 가기 위해서, 강동원 역시도 스크린 안에서 내내 '혼란'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시나리오 그대로 움직였어요. 마지막이 되어서야 '내가 정말 미친 걸까?' 의문을 가지게 되는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려고 한 거죠. '양경진' 형사(김신록 분)가 '너 같은 애가 많다. 방금도 모든 일을 자신이 꾸민 것이라는 사람이 취조를 받다 갔다'는 말을 하고 '영일'은 '진짜일까?' '내가 미친 걸까?' '청소부는 없는 걸까?' 의심하는데 그 감정을 온전히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영일'이 자신이 겪은 일마저 혼란스럽게 느끼게 만들고 표현하는 거죠."
그는 삼광보안 식구들인 '재키'(이미숙 분), '월천'(이현욱 분), '점만'(탕준상 분)을 언급하며 그들과의 호흡이 "편안하고 즐거웠다"고 회상했다.
"다들 정말 사이가 좋아요. 당시 (탕)준상이는 '설계자'를 찍으면서 성인이 되었는데요. 쉬는 시간마다 '형, 성인이 되면 무슨 차를 사야 할까요' '술은 뭘 먹어야 할까요' 고민이 많았어요. 성인이 되자마자 같이 맥주 마시러 갔던 기억이 나요. 이미숙 선배님은 현장 분위기를 정말 편안하게 만들어주시는데요. (이)현욱이가 얼마나 편했으면 지금까지 '언니' '언니' 해요. 극 중 캐릭터 때문에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건데 아직까지도 그렇게 부르더라고요. '선배님' 하다가도 '언니'라고 해버리기도 하고. 하하."
강동원은 신인 감독과의 협업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우기도 하다. 그의 도전 정신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영화 '검은 사제들' '검사외전' '가려진 시간'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계자' 등 많은 작품을 신예 감독과 함께 했다. "시나리오만 재밌으면 된다"라는 강동원은 자신과 함께했던 신예 감독들이 어느새 '천만 감독'이 되었다는 사실에 뭉클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검은 사제들' 장재현 감독님이 '파묘'로 천만 하시는 걸 보고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가려진 시간' 엄태화 감독님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도 정말 잘 됐잖아요. 이요섭 감독님도 다다음 작품쯤에는 '천만' 하실 것 같은데요? 하하. 신인 감독님들과 작품을 하면 정말 좋아요. 의욕적이고 욕심도 많으시고요. 이제는 (신인 감독들이) 저보다 어려졌지만 대체로 제 또래였었거든요. 작업할 때 재밌기도 하고요."
강동원은 이요섭 감독을 두고 "'범죄의 여왕' 같은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이 감독의 전작 '범죄의 여왕'은 범죄 스릴러와 코미디를 오가는 키치한 매력으로 씨네필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다.
"소녀 같은 면이 있고 아기자기해요. 전작 '범죄의 여왕'에서 그런 인상을 받았거든요. 실제로 같이 작품을 찍을 때도 그런 점들을 느꼈어요. 순수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면들이 있어서 좋은 감독님이에요."
많은 배우가 그렇겠지만 강동원의 '영화' 사랑은 남다르다. 영화 기획·제작에도 참여하고 실제 시나리오를 쓰고 있기도 하다. 영화와 OTT 시리즈의 경계가 무너지고 극장이 위기를 맞은 상황 속에서도 강동원은 극장에서 관객들을 기다리겠다는 입장이다.
"영화관의 경계가 많이 무너졌어요. '뭐든 할 수 있다'로 열려 있는 것 같아요. 부정적으로 보는 건 아니지만 '사람들이 극장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걱정하고 있어요. 좋은 작품을 보여드릴 수 있다면 플랫폼이 늘어나는 것도 나쁘지는 않죠. 시장은 바뀌고 있으니까요. 다만 극장이 없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강동원은 "'설계자'는 시네마틱한 작품"이라며 극장에서 봐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미장센과 음악이 중요한 작품이라서 TV보다는 극장에서 관람하는 게 좋은 경험을 줄 거라 생각해요. 영화를 보니 빛이 들어가는 신들이 참 멋지더라고요. 그런 장면들은 큰 스크린으로 보시면 좋을 거라고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