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따라 변하는 뮤지엄
미술관과 박물관은 시대가 바뀌면서 새로운 시대에 흐름에 적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관이 속한 사회의 요구를 수용하는 한편, 동시에 전통적인 미술관 박물관의 조사, 수집, 보존, 해석 및 전시하는 공간으로서 기능해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시대가 변한다 해도 특히 “수집과 기억의 장치로서의 역할”은 변함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지난 2019년 교토에서 열린 국제박물관협의회(International Council of Museums, ICOM)에서 2007년 개정된 “뮤지엄은 교육과 연구, 향유를 목적으로 인류와 그 환경의 유형 및 무형의 유산을 수집, 보존, 연구, 소통, 전시해 사회와 사회발전에 이바지하고, 공중에게 개방되는 비영리의 항구적 기관이다”라는 정의의 개정을 시도해 “뮤지엄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비판적 대화를 위한 민주적이고 포용적이며 다성적인 공간이다. 현재의 갈등과 도전을 인정하고 다루면서 뮤지엄은 사회를 위해 신탁받은 유물과 표본을 소장하고, 미래 세대를 위해 다양한 기억을 보호하며, 유산에 대한 모든 사람의 공평한 권리와 접근을 보장한다.
하지만 ICOM 산하 여러 위원회에서 박물관의 원칙을 지키고자 다소 정치적이며 진보적이라는 이유로 반대해 개정되지 않았다. 그후 2022년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ICOM 총회에서 새롭게 시대의 변화를 반영해 ‘다양성’과 ‘즐거움’ 그리고 ‘지속가능성’을 추가하면서 “뮤지엄은 사회에 봉사하는 ‘비영리 목적’(not for profit)의 영구적인 기관으로 유형 및 무형 유산을 연구, 수집, 보존, 해석 및 전시하는 기관이다. 대중에게 개방되어 접근성과 포용성을 갖춘 뮤지엄은 다양성과 지속가능성을 촉진한다. 뮤지엄은 윤리적으로, 전문적으로, 지역사회의 참여를 통해 운영되고 소통하며 교육, 즐거움, 성찰, 지식의 공유를 위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기관이라는 점을 명시한 정의를 통과시켰다.
이런 뮤지엄 즉 미술관 박물관 정의의 변화 중 매우 중요한 것은 종래의 ‘비영리(non profit)’란 표현이 ‘비영리 목적’(not for profit)으로 변경되었다는 점이다. ‘비영리’와 ‘비영리목적’이라는 용어는 종종 같은 의미로 쓰이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두 유형의 조직 모두 소유주나 주주에게 이익을 분배하지 않지만, 그러나 ‘비영리 목적’이란 의미는 조직의 주요 목표가 수익 창출이 아니라 공공 서비스를 지향적 성격의 기관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란 의미다. 특히 2022년 정의의 변화는 사회에서 뮤지엄의 진화하는 역할과 공익을 위한 뮤지엄의 헌신을 반영한 것으로 이러한 표현의 변화는 뮤지엄의 서비스 지향적 성격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개정 과정은 전 세계 126개 국가위원회에서 수백 명의 박물관 전문가가 참여한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뭐니 뭐니해도 머니가 문제
대부분의 뮤지엄 관장들은 재정에 관해서 언제나 “위태롭다”고 말한다. 미국의 뮤지엄은 대부분 법인의 형태로 사립미술관에 속한다. 다만 비영리기관으로 주로 연방정부와 지방정부, 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으며 미국 법에 따라 상당한 재산세 등의 세금을 면제받고 있다. 하지만 뮤지엄은 지속 가능한 수익을 유지하려고 영리를 목적으로 한 기업보다 더 노력한다.
미국 미술관장협회(Association of Art Museum Directors)가 코로나19 이전인 2018년 조사한 결과를 보면 210개 회원관 중 39%(81개관)는 연간 예산이 500만 달러(약 68억원) 미만, 21%(44개관)는 500만~1000만 달러(약 68억원~136억원), 21%(44개관)는 1000만~2000만 달러(약136억원~272억원), 12%(24개관)는 2000만~4500만 달러(약 270억원~613억원), 8%(17개관)는 운영 예산이 4500만 달러 이상(약 613억원 이상)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예산의 용처를 보면 31%는 뮤지엄의 핵심활동 활동 즉 전시, 큐레이션, 소장품 관리 및 보존, 교육에 사용했고, 23%는 수익을 내는 영업활동 즉 서점과 기념품 가게, 멤버십, 회원혜택부여, 레스토랑운영과 마케팅, 모금 활동에 사용했으며 시설관리 즉 건물 유지 관리, 보안, 전기 수도, 가스에 20%, 관리에 15%, 기타 비용이 10%의 비율로 지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뮤지엄 수입은 주로 정부 보조금, 개인 기부금, 사업수입 그리고 투자 수입으로 구성된다.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미술관은 2017년 자금의 약 15%를 정부로부터 지원받았으며, 이중 약 6%는 연방정부, 2%는 주정부, 3%는 카운티 자금이었다. 또 4%는 도시, 0.5%는 지방정부의 기타예산으로 충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미술관의 연간 예산의 약 33%는 민간기부 그리고 27%는 자체 입장료를 포함한 사업소득 즉 기념품 가게운영이나 판매 등에서, 22%는 기부금을 투자한 투자소득, 3%는 인근 대학이나 지역사회와의 협업을 통해 충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부금에 의한 의존도가 높지만 실은 미술관 박물관의 기부금의 특징은 특정 전시 또는 교육프로그램 등을 지정해 기부하는 경우가 많아 사용하는데 제약이 있는 어려움이 있다. 특히 대부분 기부금은 교육프로그램에 사용하도록 지정된 경우가 많다. 다음 미술관 박물관의 수입으로는 운영수익이 있다. 미술관 박물관의 전시, 프로그램, 기념품 샵의 소매 또는 대여에서 직접 발생하는 수익에 입장료가 포함되는 수익이다. 입장료는 뮤지엄 수익에서 평균 약 5%를 차지한다. 평균 입장료는 2018년경에는 평균 7달러 불과했고 미국의 뮤지엄 37%가 무료로 운영되었다.
이외의 수익으로는 서점 및 레스토랑의 수입이 포함된다. 미국의 대형 뮤지엄은 유명 셰프가 운영하는 최고급 레스토랑을 갖고 있다. 이는 고객을 유인하는 한편 뮤지엄에 대한 추가적인 커뮤니티를 연결하는 고리가 된다. 한편 장소임대사업도 일반적이다. 독특한 건축물을 자랑하는 뮤지엄은 이를 기반으로 기업 모임, 기념식, 심지어 결혼식을 위한 공간을 대여한다. 이런 수익이 전체의 27%를 차지한다. 다음으로는 투자수익이 있다. 미국의 대형 미술관 박물관은 많은 기부금으로 조성된 기금을 가지고 있다. 기금은 주로 컬렉션을 위한 새로운 작품을 구입하는 데 사용되는데 기부금의 5%는 매년 지출이 가능하며 나머지 95%는 다양한 증권, 채권 및 기타 금융 상품에 투자한다, 물론 경기가 어렵고 금리가 내려가면 수입이 줄어든다.
1989년 영국의 ‘박물관 및 갤러리 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미술관 박물관의 예산 현황과 지출 비율은 일반적으로 미국과 유사하다. 평균적으로 지출의 60% 이상을 컬렉션의 직간접 관리비로 사용한다. 영국은 미국보다 정부 자금을 더 많이 받지만,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해 정부 지원이 상당히 적다. 따라서 영국의 일부 국립미술관 박물관의 재무제표를 보면 정부의 지원 자금이 총예산의 25~65%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8~2019년 회계연도에 테이트의 4개 관 총수입 중 정부 자금이 26%, 영국박물관은 49%, 스코틀랜드 국립미술박물관은 69%, V&A는 39%로 나타났다. 또 정부의 지원금이 영국뮤지엄의 자금 조달에 중요한 요소지만 지역이나 연도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경우가 많아 중장기 계획을 수립 실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예를 들어, 2018~2019연도의 영국박물관은 총예산 1억 570만 파운드(약 1843억원) 중 약 5250만 파운드(약 915억 원)의 보조금을 지원받았다. 이는 수입의 49% 이상이 정부 보조금이란 점을 의미하며 이외의 수입으로는 기부 및 유산(17%), 자선(20%), 판매 등 영리활동(12.3%), 투자(1%)에서 나왔다.
◆자력갱생의 가능성
외국의 미술관들의 재정 현황과 비교해보면 한국의 미술관 박물관의 재정자립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한국미술관 박물관의 새로운 가능성을 말해준다. 그 일례로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을 살펴보자.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있는 미술관으로 유화가 장욱진(1917~1990)의 작품을 중심으로 그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는 미술관이다. 여타의 공립미술관의 기본입장료가 공짜인데 반 해 이곳은 어른 5000원, 어린이, 청소년, 군인은 1000원의 입장료를 징수한다. 시설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대지면적 6204m²와 연 면적 1852m²(600여평)으로 전시실과 영상실, 강의실, 아카이브 라운지 등이 자리한다.
장욱진 미술관의 입장객 수는 연평균 7만7000명에 달한다. 따라서 장욱진 미술관의 연간 입장료 수입을 산술적으로 계산해보면 평균 입장객×5,000원(입장료)=3억8820만원에 달한다. 이는 연간 소요되는 예산 6억5000만원의 약 60%에 달한다. 세상 어느 나라, 어느 미술관 박물관보다 높은 재정자립도를 올리고 있다.
이를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적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입장료 수입 외에 미국이나 유럽의 미술관 박물관처럼 기부나 자선, 후원이나 영업활동, 장소대여 등 영업활동을 통해 수입을 올린다면 충분히 홀로서기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비교적 규모가 적은 광역시 또는 도립미술관의 경우를 대입해 보면 예상 재정자립도는 다음과 같다.
이 표에 따르면 지방 광역단체가 설립 주체인 미술관 박물관의 경우 입장료를 5000원만 받아도 평균 재정자립도가 17.4%에 이르고 입장료를 1만원으로 할 경우 34.8%까지 재정자립도를 끌어 올릴 수 있다. 특히 지금처럼 시도 등 지방정부에서 지원하면서 입장 수입을 별도 수입으로 인정해 미술관 박물관의 운영자금으로 활용하도록 하고 향후 10여 년간 기간을 주어 우리나라 미술관 박물관이 가징 취약한 소장품을 확보할 있도록 해주는 것도 질적인 성장을 견인 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그림의 떡, 입장료와 기부금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꿈 또는 가정에 불과하다.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을 받다 보니 열악하기 짝이 없는 것이 국공립미술관 박물관의 경제적 상황이다. 물론 사립미술관 박물관 처지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국민의 문화향수욕구가 기꺼이 미술관 박물관 재정의 30~50%를 담당할 만큼 높은 데도 이런 절호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 누구도 즉 문화예술계의 예술경영을 논하는 이들이나 정부의 재정을 담당하는 공무원들 누구도 ‘정부지원’에 안주해 검토조차 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며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의 문화예술제도와 지원이 여전히 민간을 배제하고, 국가가 지원하고 이끌며 이를 따라가야 하는 1960~70년대 계몽주의적 개발도상국가의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공립미술관, 박물관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에 소속된 관계로 모든 수입은 국가에서 지원하는 것에 한한다. 혹시 입장료나 기타 수입이 발생하면 국고나 지방 금고에 즉시 여입 즉 반납해야 한다. 즉 벌어들인 돈은 ‘환불’ 된 것으로 취급한다. 따라서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입장료를 받아 수십억 원이 들어와도 임의로 미술관의 전시나 박물관의 교육사업에 사용할 수 없다. 일단 수익이 발생하면 즉시 국고나 지방 금고에 여입하고, 추후 추가경정예산을 세워 그 수익을 국회 또는 지방자치단체 의회를 거쳐 예산으로 편성, 배정받은 후에나 쓸 수 있다. 따라서 제아무리 많은 입장 수입을 올려도 사용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사실 1990년 말에는 잠시 연초 예산 편성 당시 입장료 등 사업수익을 추정해 예산에 반영해 두면 추가경정예산 편성 없이, 기편성된 예산안에 따라 수익금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제도도 슬그머니 사라졌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외국의 미술관처럼 기부금을 받을 수도 없다. 많은 이들이 뮤지엄의 경영 마인드 도입 또는 책임운영기관으로서의 뮤지엄의 모금(Funding)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이는 하나는 물론 둘도 모르는 이야기다. 국가 또는 지방정부에 배속된 국공립미술관은 ‘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이하 기부금품법)에 의해 기부를 받을 수 없도록 법이 정하고 있다. 따라서 기부금를 받으면 불법이다. 즉 “기부금품법”의 제5조 제2항 제1호는 “국가 및 그 소속 기관·공무원과 국가에서 출자·출연하여 설립된 법인·단체는 자발적으로 기탁하는 금품이라도 법령에 다른 규정이 있는 외에는 원칙적으로 이를 접수할 수 없으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사용 용도와 목적을 지정하여 자발적으로 기탁하는 경우로서 기부 심사 위원회의 심의를 거친 경우에는 이를 접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기부를 받으려면 정부 또는 지자체의 기부심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기부를 받을 수 있어 실질적인 기부로 이어질 수 없도록 법이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국가가 출자해 설립된 법인이 경우 국가 소속 기관에 자발적으로 금품 등을 기탁하는 경우, 국가 소속 기관은 기부금품법에 따라 금품 등을 접수할 수 있다”는 법제처의 해석에 따라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을 법인화하면 얼마든지 기부금 모집이 가능하다. 다만 ‘자발적’이란 단서조항이 좀 걸리지만 말이다. 물론 이 법을 호의적으로 해석한다면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을 법인화하면 바로 기부의 권유와 수증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만약 현행법상 입장료를 받아 미술관 박물관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사용하거나 기부금을 받아 미술관 박물관의 전시나 교육사업에 사용할 경우, 문제는 그 이듬해에 생긴다. 즉 올해 징수해 추경을 편성해 사용한 입장료나 기부금만큼 다음 해 예산에서 추경에 편성했던 입장료나 기부금만큼의 액수를 제하기 때문이다. 이는 올해 벌어서 추경을 세워 쓴 만큼 내년 예산에서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이다. 필자도 미술관에 근무하면서, 일부 시급한 사업비를 기부받아 써 봤지만, 그만큼 내년 예산이 줄어들 것을 걱정하는 동료의 볼멘소리를 들어야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한민국의 예술경영은 말뿐이다. 벌어도 못 쓰는 돈, 국가 또는 지방정부 소속 기관이란 기부금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바라볼 곳은 정부, 기획예산처 외에는 대안이 없는 것이 대한민국 문화예술기관의 예술경영 현장이다. 그러면서도 미술괁 관장은 경영마인드가 있는 이가 맡아야 한다고 헛소리를 한다.
미술관 박물관에 개인이나 법인이 현금 또는 작품이나 유물을 기부할 경우 법정 기부금으로 인정받아 세금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근거 규정이 복잡하고 절차가 불투명해 적용받는 사례도 거의 없다. 세금 감면을 위한 기증작품의 시가 감정 등 비용도 기증자가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미술관 박물관은 현물의 기부와 기증을 모집하는 것에 관한 관계 법령이 모호하다. 기부금품법 제5조 2항 및 박물관 미술관 진흥법 제8조에 따르면, 기증자가 ‘자발적’으로 기부 및 기증하겠다는 의사가 있을 때 심사를 거쳐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또 국공립 미술관 기부금품 모집에 대해서는 기부금품법 제3조 및 문화예술진흥법 제7조, 기부금품법 제5조 1항 단서, 제2항 제3호 및 동 법 시행령 제13조, 기부금품법 제 5조 제 2항 및 단서에 해당하는 때에 제한적으로 가능하다는 등 관련 규정이 복잡하고 모호하게 정의되어 있어 기관에서 기부가 가능한 것인지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법령은 모호하지만 기부할 수 있다 하더라도, 국 공립미술관 및 박물관이 기부금품 모집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기부금이 관련 법 및 제도적 모순으로 국가 예산으로만 산입되어 정작 기부를 받아도 미술관은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재정법 제17조, 지방재정법 제34조 및 제15조에 의하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모든 수입은 세입으로 하고, 세출 예산으로 편성해 사용하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국 공립미술관 박물관은 법정 기부금을 받아도 운영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 이를 먼저 반납하고 다시 추가 예산 편성해서 써야 하는 구조라, 이외의 다른 방식으로 쓸 방법이 없기 때문에 필요한 시기에 기부금을 사용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국립중앙박물관의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나 국립현대미술관의 ‘현대미술관회’나 현재의 ‘국립현대미술관 후원회’ 등을 두어 편법으로 협찬이나 기부를 받아 이들 기관과 공동주최 등의 형식으로 소위 ‘세탁’ 해 쓰기도 한다.
그래서 영국의 경우 이런 불합리한 규제를 방지하기 위해 대개의 문화예술기관, 시설의 경우 소위 비 부처공공기관(Non Departmental Public Bodies: NDPB)의 특수법인 형태의 운영되며 집행 기관보다 더 큰 재정적 독립성을 누리고 있다. 특히 이들 기관은 법령에 따라 설립되었으며 정부에 직접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의회에 책임을 진다. 영국박물관이나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테이트 모던 등 테이트 미술관 등이 그것이다. 이들 기관은 기부금 등으로 인한 수입이 발생했을 경우 해당 금액을 정부 금고에 여입하는 것이 아니라 이사회를 통해 미술관 박물관의 운영비로 바로 사용한다.
미술관•박물관 자체적으로 기부나 기증을 모집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지원되지 않는 실정에서, 기부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고, 이에 따라 우리나라 미술관은 정부의 예산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고, 재정은 늘 빈곤할 수밖에 없으며, 나아가 미술관 소장품 수준의 저하로 연결되는 악순환 상태에 놓여 “볼 것 없는 미술관 박물관”으로 존재만 할 뿐이다. 따라서 이를 극복해 문화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분명하고 확실한 길은 영국의 ‘비 부처 공공기관’ 또는 독일의 ‘공법상기관’(Anstalten des öffentlichen Rechts, AöR)이나 프랑스의 루브르가 1992년 거버넌스로 채택한 문화부의 감독을 받는 영국의 비 부처 공공기관의 다른 형태인 ‘공공행정기관’(L’Établissement public du musée du Louvre, EPML)으로 전환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벌었어도 쓰지 못하는 손발이 묶인 처지를 하루빨리 풀어 우리도 경제선진국에서 문화 선진국으로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