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을 이끌어온 '양대 축' 프랑스-독일 엔진에 경고등이 들어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자국 내에서는 물론이고 EU 무대에서도 입지가 좁아지면서, 프-독 추진 동력이 예전만 못한 것이다. 두 정상이 중국, 러-우 전쟁 등 굵직한 사안에서조차 일관된 로드맵을 제시하는 데 실패하면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등 새 리더십이 부상하고 있다고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가 27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내달 6일부터 9일까지 치러지는 유럽의회 선거가 2주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독일을 국빈 방문했다. 프랑스 대통령이 독일을 국빈 방문한 것은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 이후 24년 만으로, 프-독 단결을 보여주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프랑스 정부 관계자는 마크롱 대통령이 이번 방문을 통해 유럽 미래 의제 및 전략적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와 독일 경제는 부진한 성장을 기록하는 데다가 두 나라 모두 극우 정당들이 약진하고 있다. 여론조사를 보면 마리 르펜이 이끄는 극우 국민연합(RN)이 마크롱 대통령의 중도성향 르네상스를 16% 포인트 차이로 따돌리고 있어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국민연합이 압승을 거둘 전망이다. 숄츠 총리가 이끄는 사회민주당(SPD) 역시 극우 정당들의 인기에 밀려 3위 정당으로 전락할 위기다. 유럽의회 선거 이후 마크롱 대통령과 숄츠 총리가 리더십을 완전히 상실할 것이란 관측마저 나온다.
마크롱 대통령은 독일 방문 중 연설을 통해 유럽의 산업, 인공지능(AI), 친환경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 촉진을 위해 EU 예산을 두 배로 늘릴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EU 회원국들의 지지를 받을지는 미지수다.
중국 문제 역시 걸림돌이다. 독일은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반보조금 조사에 반발하는 등 프랑스와 마찰을 빚었다. 마크롱 대통령이 EU 집행위원장으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현 EU 집행위원장이 아닌 이탈리아의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를 지지하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양국 관계가 더욱 악화할 가능성도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현 ECB 총재가 프랑스 출신인 만큼 EU 집행위원장은 독일 후보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게 독일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도날드 투스크 폴란드 총리,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등이 새 리더십으로 부상하고 있다.
멜로니 총리는 전날 한 인터뷰서 “이제 이탈리아는 프랑스와 독일을 따르는 게 아니라 앞장서고 있다”며 “이탈리아인들이 돕는다면, 우리는 유럽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프랑스 국민연합의 르펜이 멜로니 총리에게 새 연대를 맺자고 제안하는 등 멜로니 총리의 입지는 차츰 확대되는 추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