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교 칼럼] 이제 찐 농업인을 가려낼 때다

2024-05-29 07:00
  • 글자크기 설정
서진교 GSJ 인스티튜트 원장
[서진교 GS&J 인스티튜트 원장]


한국 농업이 풀어야 할 난제가 산적해 있지만 그중 대표적인 난제로 농업인의 정의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무슨 소리인가 하고 다소 의아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경제성장 과정에서 우리의 농업과 농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에 흔히 우리가 머릿속으로 막연히 생각하는 농촌에 거주하면서 농사를 짓는 전통적인 가족농 개념의 농업경영체는 오늘날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우선 농업을 영위하는 농가가 다양한 형태로 분화되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농업 생산에만 전념하는 전업농과 농업 수입이 전체 수입의 50% 이상인 1종 겸업농이 아직 우리 농업의 근간이기는 하다(전체 농가의 68%). 그러나 전체 농가 중 32%는 농업 이외 다른 일을 병행하여 농업 수입이 총수입의 50% 이하인 소위 부업농이다. 부업농에는 도시에서 은퇴하여 연금 생활을 하면서 300평 정도의 농사를 짓는 취미농이나 체험농이 포함되어 있다. 문제는 현행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의 농업인 정의에 따르면 이러한 취미농이나 체험농도 모두 농업인으로 보아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지급하는 직불금의 수혜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귀농한 도시 은퇴자가 텃밭(303평)에서 상추나 쑥갓을 재배하면 농업인이 되고, 정부 보조금의 수혜 대상이 되어 직불금을 받는 것이 과연 한국 농업의 발전을 위해 맞는 방향인지, 재정만 투입되고 성과는 없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없다.
 
한편 같은 농가 안에서도 가구주는 쉽게 농업인으로 인정받지만 그 구성원은 실제 농업 활동에 전적으로 종사하고 있음에도 농업인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농업인 정의가 ①1000㎡(약 330평) 이상의 농지를 경영 또는 경작하는 사람 ②농업 경영을 통하여 연간 판매액이 120만원 이상인 사람 ③1년 중 90일 이상을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 등을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구주는 통상 농지가 본인 소유여서 농지 이용 증명이 쉽다. 농산물 판매도 대개 가구주 명의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판매액 기준에서도 자연스럽게 농업인 기준을 충족한다. 하지만 가구 구성원은 본인 명의의 농지가 없는 이상 농지 이용 증명이 쉽지 않고, 본인 명의로 농산물을 판매하지 않은 이상 판매액 증명도 어렵다. 그렇다고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했다는 객관적 증명도 쉽지 않다. 이는 가족 내에서 근로계약서 등과 같은 객관적이고 신뢰성 높은 자료를 작성하는 것이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구주의 자녀가 실제 부모님을 도와 농업에 전적으로 종사하고 있음에도 농업인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 발생한다. 특히 농업에 새롭게 진입하는 예비 농업인이나 신규 농업인은 영농 초기이다 보니 농산물 매출액이나 또는 농업 종사 일수 등과 같은 농업인 기준 충족이 쉽지 않다. 농업인의 기준이 귀농이나 영농 창업 희망자에게 일종의 진입장벽이 되고 있다.
 
그렇다고 농가들이 가만히 두고 보지도 않는다. 정부의 직불금이나 농협 조합원의 혜택 등을 받기 위하여 농가는 기존 농지를 나누어 농가 쪼개기로 대응한다. 실제 2020년 30만6000농가까지 감소하였던 부업농이 2022년 32만9000농가로 다시 증가한 데는 이러한 영향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소규모 부업농의 중가가 농업 생산성을 높이려는 구조조정 및 규모화 노력에 역행함은 물론이다.

외국의 경우는 농업인을 특별히 따로 정의하고 있지는 않다. 프랑스는 농업보조금 수령 자격이 있는 농업인을 별도로 규정하고, 산업으로서 농업을 육성할 목적의 보조 수혜 대상자와 단순히 사회보장 성격의 보조 수혜 대상자를 구분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보조 대상을 일반 기업과 동일하게 사업자등록을 한 농업인으로 제한하고 있다. 사업자등록을 함으로써 매출과 비용이 잡히고 소득이 파악되어 농가별 소득 상황에 맞는 맞춤형 보조 정책이 가능하다. 소득 기준으로 보조 대상을 명확히 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일본도 상당히 엄격한 인정농업인 제도를 운용한다. 인정농업인 제도의 목적은 의욕과 능력 있는 농업인을 중점 육성하여 이들이 일본 농업 생산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주도 세력으로 키우기 위한 것이다. 인정농업인은 5년 후의 경영개선계획을 제시하고, 그 계획이 승인되면 직불금과 함께 융자, 보조, 세제 혜택, 연금 등 다양한 지원이 집중된다. 인정농업인이 되기 위해서는 농업소득이 350만~600만엔이 되고, 노동시간 1800~2000시간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가구당 농업소득이 170만엔인 점과 일일 8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225일 이상 농업 활동을 해야 1800시간을 채울 수 있음을 생각하면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이 아닐 수 없다.
 
한국 농업은 급격한 고령화 속에서 세계적인 탈탄소화에 맞추어 생산성 높은 산업으로 탈바꿈하지 않으면 농업 생산 자체가 축소될 기로에 서 있다. 이에 식량안보를 확보함은 물론 첨단 과학과 디지털 기술이 접목된 지속 가능한 농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러한 혁신을 담당할 주도 세력을 육성해야 한다. 정부의 산업정책으로서의 지원은 이들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이제 직불금도 2조4000억원에서 조만간 5조원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늘어난 직불금의 혜택이 우리 농업을 이끌어 갈 열정있는 '찐' 농업인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농업인과 농업경영체의 정의를 시급히 재정립해야 한다. 이제는 아마추어 농업인과 프로 농업인을 구분해야 할 때다.
 



서진교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농업경제학과 △미국 메릴랜드대 자원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