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이후 늘어난 기업대출이 700조원 안팎에 달하는데 고금리 장기화와 경영 부진으로 상환 능력이 악화하면서 대출 부실화 리스크가 심화하는 양상이다. 특히 올 들어 중소기업 연체율과 파산 규모가 급증하는 추세다.
23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ECOS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예금 취급기관의 기업대출(산업별 대출금) 잔액은 1889조원으로 전년 대비 5.1% 늘었다. 2019년 1207조원 수준이던 기업대출 잔액은 코로나 팬데믹 시작과 함께 2020년 1393조원, 2021년 1580조원, 2022년 1797조원 등으로 해마다 급증했다. 지난 5년간 불어난 금액만 682조원 규모다.
올 들어서도 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는 모습이다. 한은 금융시장동향 수치를 보면 지난달 은행권 기업대출은 10조4000억원 증가한 1272조8000억원으로 집계됐다. 동월 기준으로 2020년 3월(18조7000억원) 이후 4년 만에 최대 폭으로 증가했다.
빚잔치로 버티던 기업들에 역대급 고금리와 고환율은 철퇴가 됐다. 국내 은행의 지난해 말 부실채권 규모는 12조5000억원으로 이 가운데 80%(10조원)가 기업여신이다. 기업여신 부실채권 비율은 지난해 1분기 말 0.5%에서 연말 0.59%로 상승했다. 부실채권은 연체 기간이 3개월 넘어 상환 가능성이 낮은 채권을 뜻한다.
연체율 역시 중소기업 대출을 중심으로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다. 지난 1월 말 기준 은행권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0.60%로 전년 동월(0.39%) 대비 0.21%포인트 급등했다. 역대 최대치를 보이는 법인 파산 신청 주체도 대부분 중소기업이다. 코로나19 기간 대출로 버텼던 중소기업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자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고 있다.
문제는 고물가에 고환율까지 겹쳐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 유가와 농산물 가격이 동반 급등하면서 지난달 생산자물가는 4개월 연속 상승했다. 지난주 원·달러 환율은 장중 1400원을 넘나들었다. 미국이 금리를 내리지 않아 한국은행도 선제적으로 금리 인하에 나설 상황이 아니다.
한은은 연일 기업대출 급증과 중소기업 부실 리스크에 대해 주의보를 발령하고 있다. 한은 경제연구원은 지난달 빅토리아 이바시나 미국 하버드대 교수진이 기업부채 확대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 논문을 소개했다. 금융위기 전후 대부분 민간신용 확대·수축은 가계부채보다 기업부채가 견인했고 기업부채 증가가 금융위기 발생 확률을 유의미하게 높였다는 게 핵심이다.
또 한은은 '기업경영분석 분위수 통계의 특징 및 평가' 보고서에서 중소기업은 코로나 충격에 따른 수익성 하락이 대기업보다 두드러지고 회복 속도도 더디다고 분석했다. 이한솔 한은 경제통계국 기업통계팀 과장은 "하위 기업을 중심으로 한 성과 악화와 기업 간 격차 심화는 경제 전반에 걸쳐 생산성, 체감 경기 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한계기업 증가 등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