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칼럼] '장애인의 달' 4월이 다 가기 전에

2024-04-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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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5월 가정의 달이 오기 전에 4월 장애인의 달을 생각해 본다. 가정의 시간이 오기 전에 장애인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음에 감사하다. 각자 가족을 생각하기 전에 우리 사회의 장애인을 생각하자는 취지가 아니었을까, 우리 주위의 장애인을 대하는 시선이 동정과 연민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좀더 가족처럼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이기를 바라는 취지가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 장애인은 얼마나 될까. 필자만 그렇게 느끼는 거는 아닐까 하지만,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정부 통계를 보고 놀랐다. 우리나라 국민의 5%에 해당하는 비중이 등록장애인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등록장애인은 2023년 말 기준으로 264만1896명이다. 작년 한 해 동안 새롭게 등록된 장애인이 8만6287명이었고, 사망 등으로 등록장애인에서 제외된 장애인이 9만2815명으로서 2022년 말 등록장애인보다 6528명이 감소하였다. 전체 인구의 감소로 등록장애인의 비율은 5.1%를 유지하였다. 주위 20명 중 1명은 장애인이라는 셈이었다.

일상생활 가운데 식사하러 들어간 보통 규모의 식당, 테이블 5~8개가 있는 그냥 그런 보통의 식당 중 1~2명은 장애인이어야 하는데 내가 눈치를 채지 못한 것일까. 장애인들은 어디 돌아다니기 힘든 상황이니까, 밖이 아닌 내부 공간 어딘가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장애인들이 밖에서 생활하고 이동하기에 어려울 것이라는 건 이해하지만, 그렇게 물리적인 어려움과 함께 정신적인 고립 또한 힘든 점이다. 장애인이 견디기 힘든 점이 불편함과 소외감일 것이다.

먼저 당연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더 불편하다. 장애인 편의시설이 많이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숫자상으로 몇 퍼센트가 증가했다는 것이 장애인 입장에서 체감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시각장애인이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을 찾아가는 것부터 힘들고, 설령 무사히 정류장에 도착했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버스를 탈 수 있을지도 불안하다. 이제는 많은 정류장에서 “ooo버스가 곧 도착합니다”라는 안내음이 들린다. 그런데, 버스들이 연이어 올 경우 내가 원하는 버스가 첫 번째로 들어오는지 두 번째로 들어오는지 시각장애인은 알 길이 없다.

바로 앞에서 ‘당연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이라고 했는데, 이 점이 문제다. 장애인이 비장애인이라고 해서 불편한 것이 당연한 점은 아니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그로 인한 생활이나 활동이 불편한 점은 우리 사회가 개선해야 하는 점이다. 과거보다 많이 개선되고 있다. 예를 들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바닥 면적이 300㎡ 이상인 경우에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할 의무가 있었지만, 2022년부터는 50㎡​ 이상인 경우에 편의시설을 설치해야 되는 것으로 강화되었다. 그러나 더 세밀하고 더 많은 분야에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마련되고 준비되어야 한다.

편의시설 확대와 확장이라는 제도적 및 인프라 측면의 개선과 함께 병행해야 하는 것이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 및 차별 의식 해소이다. 장애를 장애 그 자체로 보지 않고 도덕적으로 해석하는 것, 예를 들면 뭔가를 잘못해서 그런 장애가 되었다고 추측하거나 판단하는 것이 장애에 대한 대표적인 편견이다. 장애를 치료해야 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바라보는 것이 편견이다. 정신장애인을 바라보면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는 것, 사회적 규범을 무시할 것으로 판단하는 것 등이 편견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며 일시적이거나 장기적 혹은 지속적인가의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는 누구나 장애를 경험할 수 있다.

장애인권익문제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장애인들이 차별받은 분야 중 가장 큰 분야는 노동과 이동권으로 나타났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차이를 차별하지 않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편견과 차별을 버리고 다름을 인정한다는 점은 장애인이 장애인이기 때문에 다르지 않고, 그 사람 자체로 판단하며 개개인의 인격과 특성, 강점·약점이 더 확연히 보인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장애와 비장애로 구분하지 않게 되는 지경으로 우리의 관점이 포용적으로 변한다는 점이다.

장애인의 달인 4월이 끝나가기 전에 장애인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장애인의 불편함을 배려하고, 그들의 다름을 인정하게 되면 차별과 편견의 시선이 줄어들 것이다. 결국에는 다름을 인정하여야 하겠지만, ‘인정’하는 단계로 가기까지는 ‘배려’의 단계를 거쳐야 할 것이다. 장애인은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아 마땅하고 우리 사회가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것이라면,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은 필요해서 설치되어야 한다. 모든 시설 옆에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그렇게 된다면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의 마음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완전히 없어지기를 바란다. 그들도 그냥 우리 주변의 ‘우리’인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농경제학과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 농경제학 박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팀장 ▷고용노동부 고령화정책TF ▷한국장학재단 리스크관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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