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일본 정부는 3월 한 달 동안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이 약 308만명이라고 발표했다. 코로나19 유행 전인 2019년 7월의 299만명을 넘어서며 한 달간 300만명 돌파라는 역대 최고 기록을 냈다. 1~3월 동안 이들이 일본에서 숙박과 쇼핑을 하며 쓴 금액도 1조7505억엔(약 15조6230억원)으로 사상 최고액을 달성했다.
이토록 방일 여행객이 넘쳐나는 데는 역사적 수준의 엔저가 크게 기여하고 있다. 달러당 엔화 환율은 올해 1월 2일만 해도 140엔대였으나 엔저가 지속되면서 23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선 장중 155엔대에 육박하며 엔화 가치가 34년 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이 장관인 시즌 요인도 한몫했다.
3월 일본 방문 관광객을 국가 및 지역별로 보면 한국이 2019년 동기 대비 13.2% 증가한 66만3100명으로 부동의 1위를 차지했고, 대만이 20.4% 증가한 48만4400명으로 둘째로 많았다. 중국은 34.6% 감소한 45만2400명으로 3위였고, 미국이 64.3% 증가한 29만100명으로 4위였다. 특히 미국을 비롯해 베트남(6만7400명), 캐나다(5만7800명), 이탈리아(2만4400명) 등은 한 달 방문자 수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이들이 도쿄를 방문하면 반드시 ‘찍고’ 가는 곳이 있다. 바로 대형 백화점의 면세품 매장과 긴자 명품 거리 등이다. '일본에서 명품을 사면 비행기삯 건진다'는 말과 함께 세계 각국의 원정 쇼핑 행렬이 명품 매장으로 향하면서 이곳들은 방일 여행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1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도 “도쿄 내 명품 쇼핑지구인 긴자에서는 최근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가 끊임없이 들린다”면서 “팬데믹 이전에는 부유한 중국인 관광객이 일본 내 명품 쇼핑을 주도했다면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고 보도했다.
방일객 증가로 일본 대형 백화점들은 연간 결산에서 연신 ‘사상 최고’ 실적을 내며 기록을 경신 중이다. 일본 대형 백화점 3곳 모두 2024년 2월기(2023년 3월~2024년 2월) 결산에서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지난해를 크게 웃돌았다.
대형 백화점 3곳이 15일까지 발표한 2024년 2월기 결산을 보면 모두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작년을 뛰어넘었다. 방일객 및 일본 내 부유층들의 명품 등 고가품 구입이 늘어난 것이 큰 요인이었다.
‘다카시마야’ 백화점은 매출액이 전년 대비 8.0% 증가한 9521억엔(약 8조4728억원)이고,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41.3% 늘어난 459억엔(약 4085억원)으로 1990년 이후 33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도쿄 긴자와 아사쿠사에 있는 ‘마쓰야’ 백화점 역시 매출액이 전년 대비 31.2% 증가한 1149억엔(약 1조226억원)으로 사상 최고액을 기록했다. 이 중 면세점 매출이 전년 대비 4배 이상 증가한 337억엔(약 2999억원)으로 크게 늘어 전체 매출을 끌어올렸다. 특히 마쓰야 긴자점의 매출은 전년 대비 35.5% 늘어난 1018억엔(약 9059억원)을 기록해 1991년 이후 32년 만에 최고액을 달성했다. 후루야 다케히코 사장은 “긴자 매장은 해외 손님들의 명확한 목적지가 되어가고 있다”면서 마쓰야 긴자점에 대한 확신을 드러냈다.
‘다이마루’ 백화점과 ‘마쓰자카야’ 백화점을 운영하는 ‘제이프런트리테일링’은 2024년 2월기 결산 매출액이 전년 대비 15.3% 증가한 2조1519억엔(약 19조1500억원), 영업이익은 125.9% 증가한 430억엔(약 3827억원)이었다. 오노 게이치 사장은 지난 15일 기자회견에서 “환율 영향이 매우 큰 것 같다”고 말해 방일객 소비 증가 덕분임을 인정했다.
중고 명품을 찾는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최근 일본에서는 정가의 3배에 가까운 에르메스 중고 ‘버킨백’까지 등장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정규품 생산량이 준 데다 엔저로 방일객이 쇄도하면서 일본의 중고 명품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 미사용 중고 버킨백의 판매 가격이 2019년 약 200만엔(약 1780만원)이었던 것이 2023년에는 약 360만엔(약 3204만원)으로 1.8배로 올랐다. ‘버킨백’의 일본 판매 정가가 약 134만엔(약 1192만원)임을 감안하면 정가 대비 약 3배에 달하는 가격이다.
한편 기시다 총리는 ‘관광입국(立國) 추진각료회의’에서 “이 추세라면 2024년에 방일객 수도, 소비액도 사상 최고 달성이 가능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작년 일본 정부는 ‘관광입국추진기본계획’을 세우고 2025년까지 관광 지표 역대치를 경신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연간 방일객이 가장 많았던 해는 2019년으로 총 3188만명이 일본을 찾았고, 소비액은 2023년 약 5조3000억엔(약 47조1652억원)이 최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