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한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금융통화위원 전부가 하반기 금리 인하 가능성을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지금 농산물 가격과 유가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고 밝혔다.
금통위원들은 이날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준금리를 3.5%로 동결하기로 했다. 금통위원 6명 가운데 5명은 3개월 후에도 3.5% 기준금리를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했으며 나머지 1명은 금리를 3.5%보다 낮은 수준으로 인하하는 방향도 열어놓아야 한다는 소수 의견을 냈다.
이 총재는 "5명은 근원물가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2%)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긴축기조를 지속해야 할 필요성을 말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머지 1명은 공급 측 요인의 불확실성에도 기조적인 물가 둔화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내수 부진이 지속될 경우 이에 대한 대응도 필요하다는 이유로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두자고 했다"고 덧붙였다.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두기는 했지만 고물가·고금리·고환율 상황이 지속되면서 한은의 셈법은 한층 복잡해졌다. 통화 정책의 제1 목표인 물가 안정 측면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두 달 연속 3%대에 이르고 농산물 가격뿐 아니라 국제 유가까지 배럴당 90달러를 넘기며 들썩이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날 원·달러 환율은 장중 1375원까지 오르며 1년 5개월 만에 최고점을 기록했다.
이 총재는 5월 경제 상황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연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3%까지 갈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유가가 다시 안정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연말까지 2.3% 정도까지 갈 것 같으면 하반기에는 금리 인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2.3%로 가는 경로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높아지면 하반기 금리 인하가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주행 중 차선 변경 비유를 꺼내들며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선을 그었다. 이 총재는 "깜빡이를 켰다는 건 차선을 바꾸려고 준비하고 있다는 것인데 아직 깜빡이를 켠 상황이 아니다"라면서 "깜빡이를 켤까 말까 자료를 보면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연준의 금리 인하 전망도 불투명하다. 물가상승률이 3개월 연속 예상치를 웃도는데 경제 상황은 여전히 뜨거운 것으로 나타나면서 인플레이션 고착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시장은 금리 인하 예상 시점을 9월까지 미루고 횟수도 3회에서 1∼2회로 축소하는 분위기다.
환율이 안정된 상황에서는 한은이 우리 경제 상황에 맞게 금리를 인하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넓어지지만 외국인 자금 유출과 환율 불안으로 연준보다 앞서 금리를 낮추긴 사실상 어렵다. 일단 이 총재는 선제적 금리 인하도 아직은 열어놓는 분위기다.
이 총재는 "미국이 피벗(pivot·통화정책 전환)을 하긴 할 텐데 시점이 문제"라면서 "전 세계적으로 금리 정책에 대해 탈동조화가 되고 있는 만큼 미국 자료보다는 국내 소비자물가를 보면서 피벗 시점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론 두 번 정도 데이터를 더 보고 확신을 갖는 게 좋을 것 같다"면서 "섣불리 금리를 움직였다가 물가가 다시 오르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