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하면서 의·정 간 갈등이 다시 안갯속이다. 총선 결과와 관계없이 정부가 ‘의대 2000명 증원’ 정책을 계속 밀고 나갈 것이라는 관측과, 당정 공동책임론이 불거져 의대 증원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교차하고 있다. 의료계에선 정부의 총선 패배를 계기로 해당 정책을 백지화해야 한다는 압박이 커지는 상황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정부는 총선 민의를 겸허히 받들어, 국민의 기대에 부족함이 없었는지 국정 전반을 되돌아보며 민생경제 회복과 대한민국 미래를 위한 개혁과제 추진에 더욱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한 총리가 ‘개혁과제 매진’을 언급한 것을 두고 의대 증원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의료계는 정부가 무리하게 진행한 의대증원 정책이 총선 패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지목하고 있다. 이들은 “여당 참패는 의대 증원 강행의 결과”라고 입을 모으면서 압박 수위를 높이는 모습이다.
정진행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고 개인 기본권을 침해한 것을 용서하지 않은 국민 심판”이라고 꼬집었다. 주수호 전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여당의) 이번 총선 참패는 14만 의사와 2만 의대생, 그 가족들을 분노하게 한 결과”라고 했다. 이상호 의협 비대위 대외협력위원장 역시 “총선 결과는 절차를 무시하고 비민주적으로 의료정책을 밀어붙인 것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이라고 정부를 저격했다.
일각에선 의료계가 정부와의 대화를 위한 통일안조차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달 대한의사협회(의협) 차기 회장이 임기를 시작하면 의·정 간 대립 구도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재 의협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의대 증원을 1년 유예한 후 대화하자고 정부에 제안하고 있지만, ’강경파’로 불리는 임현택 당선인은 정부를 향해 2000명 증원 백지화와 함께 복지부 장·차관 해임과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 등을 요구하고 있다. 또 윤 대통령과 단독 면담을 가진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을 향해서는 ‘내부의 적’이라고 표현하면서 갈등을 표출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예고됐던 의료계 합동 기자회견도 연기되면서 정부와 의료계의 협상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정부가 의료개혁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있어, 물러날 분위기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만 이번에 의사 출신 의원이 8명이나 나왔다. 제 22대 국회가 개원하고 나면 국회 내에서 의대 증원 정책 변경 요구안이 나올 것으로 보이고, 이에 따라 조정을 하는 그림을 예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