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이란 화두가 사회적이고도 학문적인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꽤 오래전 일이다. 2009년부터 대학마다 각종 융합기술원이 설립되면서 융합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융합을 해서 얻은 실효는 없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융합이 우리의 살길이라며 우리도 15년 전부터 줄기차게 외쳐왔으나 실상은 난상토론만 하다 실익을 거두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 예를 들면 어느 두 기술을 융합했더니 자동차가 갑자기 하늘을 날기 시작했단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단독 기술에 의한 창조적 파괴가 벽에 부딪히자 고안해낸 발상이었으나 쉬지 않았다. 그러던 사이에 4차산업혁명이란 개념이 불쑥 등장했다. 2016년 초 일이다. 1차부터 3차까지 산업혁명은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난 후 나중에 붙여진 이름이다. 2차산업혁명 돌입 후 1차산업 시대란 정의가 비로소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2차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4차는 시작부터 달랐다. 3차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4차를 먼저 들고 나온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 뜻을 이해하려면 융합의 핵심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4차 개념의 중심에는 빅데이터, 블록체인, 인공지능이라는 셋이 꼭 등장한다. 사실상 그 셋은 소프트웨어(SW)라는 단어 하나로 축약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SW가 융합의 핵심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를 증명해 준 것이 2024년 벽두에 펼쳐진 최대 정보가전 전시회 CES였다. 거기서는 인공지능으로 도배된 자동차 기술이 등장했다. 인공지능은 SW 범주에 확연히 속하는 기술임은 누구나 주지하는 사실이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는 기계공학 분야와 SW 분야 간 융합을 통해서만 실현 가능한 것이다. 이를 CES 현장에서 보고도 융합의 위력을 실감하지 못하는 이는 없을 줄 안다. 실은 이래서 SW가 4차산업혁명의 중추라는 이야기가 8년 전부터 나왔던 것이다.
하드웨어(HW) 위주였던 3차산업 시대를 넘어 SW 중심으로 가자고 선언했던 것이다. 산업 각 분야에서는 그 단어의 의미를 자체적으로 도입하여 살려 볼 길을 모색하기 시작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런 시도가 먼저 나타난 곳은 제조업이다. 산업의 기초는 제조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융합이 거기서 먼저 시도된 것은 필연이었다. 제조업에서 즉시 생산 및 오작동률 축소가 최대 관건이다. 따라서 공정 자동화가 요구된다. 이런 자동화에는 HW도 필요하지만 대부분은 SW로 해결해야 하는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SW는 원래 컴퓨터 하드웨어, 즉 컴퓨터 내 기억장치와 계산장치를 구동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컴맹이 아니라면 두 장치가 HW의 대표 주종이란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두 장치의 사용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두 장치를 교신 및 작동 수순을 제어하는 일이 필요한데 그런 일은 HW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육법전서 같은 프로토콜(법률 체계)을 정해서 해야 한다. 그 육법전서 프로토콜이 바로 SW인 것이다. SW를 그 자체로 완벽한 법학 혹은 인문학이라고 하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내일신문 2011년 10월 24일자).
SW가 물리·전기·전자·소재·부품·장비 중심의 HW와는 판이한 종류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전산학이 공부하기 비교적 어려운 분야라고 하는 이유는 HW와 SW를 모두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하나만 이해하는 수준에서는 컴퓨터 전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이과적 소질과 문과적 소양을 겸비하지 않고는 전산학을 전공해봤자 전체 그림을 그려 볼 수 없다는 뜻이다. 다른 학문은 대부분 이렇지 않다, 대개 이과적 소양이나 문과적 소양 하나만으로 어떻게든 견뎌낼 수 있는 것들이다. 과거 명문대 학부 법학과 출신들이 카이스트 대학원 전산학과에 입학했다가 중도 탈락한 학생들이 다수 있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 준다. 그래서 전산학이 학문 중에서는 난도가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그런 탈락생이 발생한 것이 과연 옳은 일이었을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융합을 내세운 이 시대에 과연 맞는 학과 교과과정이었던지 세심히 짚어봐야 한다는 뜻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나라에서만 가능한 결과였다는 점이 눈여겨볼 점이다. 영국 같으면 교과과정 구조의 유연성으로 이런 탈락 사례는 발생하기 힘들다. 반면 우리는 대학에서 유연성은 물론 확장성에서도 선진국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다. 영국에는 전산학과도 있지만 ‘전산 및 전기전자과’ ‘전산 및 경영학과’ ‘전산 및 수학과’ 식으로 전산 분야를 여러 개 트랙으로 구분하여 트랙별로 학과를 운영하고 있다. 반면 한국 대학은 어느 학과장도 융합 실천에 리더십을 발휘하게 돼 있지 않은 구조로 운영된다. 학과장직을 사이 좋게 돌아가면서 맡는 책임감 부재 풍토가 문제의 근원이다. 선진국은 학과장이 모든 인사권과 재정권을 장악하는 학과장 중심제로 운영된다. 책임과 회계가 어느 선에서 이뤄지는지를 명확히 말해주는 대목이다. 우리는 학과장 권한이 없다 보니 학장 내지 총장 선으로 넘어가는데 윗선에서는 학과별 특성을 고려할 수 없는 입장이라 3~4년 임기 중 일반적인 틀 안에서 별 문제 없이 적당히 넘어가려는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래서야 조직 러더십이 살겠는가.
전산도 대표적 이공계 전공 중 하나지만 이공계 내에서도 전자와 전산처럼 성격이 현격히 다른 분야가 존재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공계 대학교수들이 미적분2를 없애면 장래에 망할 것이라는 의견은 지나친 것이다. 미적분2를 고교에서 가르치며 대학 입학시험에 포함시키는 것이 전 세계적 추세라는 일부 전문가의 의견 역시 다소 과장된 것이다. 그런 증거는 찾기 어렵다. 그동안 우리는 수능으로 인해 교육체계 개편을 수차 시도하였으나 혹시 그 모두가 결국은 미래를 세심히 내다보지 못하는 땜질 처방 수준이 아니었던가 허심탄회하게 돌이켜봐야 한다. 이런 반성이 있다면 수능 문제에 대한 절대 반지 열쇠를 제공해 줄 가능성이 있다. 결론적으로 이번 미적분2에 대한 교육정책은 맞는 방향으로 설정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혹시라도 미적분2 교육에 대한 미진한 부분이 있다면 대학 입학 후 필요 학과에서 바로 수강하게 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이공계 대학교수들이 우려하는 사태는 발생할 리 없을 것이다. 세상은 급변한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자세와 관습이다. 과거 행태를 고수하려는 자세에 대해 대문호 톨스토이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간단한 말로 표현한 바 있다. 그는 걸작 ‘부활’에서 “사람은 흐르는 강물과 같다. 강물은 어디에 있든 언제나 같은 물이다. 다만 강은 어떤 곳은 좁고 물살이 빠르기도 하다. 사람도 마찬가지다”라고 인간 심성에 관해 행동분석학적으로 묘사한 바 있다. 흐르는 강물처럼 시류 변화에 유연하고도 민감하게 적응하라는 뜻 아닐까. 컴퓨터에서 무려 80% 몫을 차지하는 SW라는 소용돌이가 융합이라는 거대한 흐름으로 전 분야를 강타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섬세하게 하고 있는지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나머지 불과 20%가 하드웨어 몫이다. SW 시대에 수능 미적분 문제는 이런 융합의 대세 방향에 걸맞게 새롭게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문송천 필자 이력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미국 일리노이대(어바나 샴페인) 전산학 박사 ▷유럽IT학회 아시아 대표이사 ▷대한적십자사 친선홍보대사 ▷카이스트·케임브리지대·에든버러대 전산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