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총선 이후다. 물가 안정은 물론 의과대학 정원 증원 지원, 이상기후에 따른 재난 대비 등 나랏돈으로 때워야 할 돌발 이슈가 산적한 상황이라 추가경정예산 편성 없이 예비비로만 대응 가능할지 의구심이 제기된다.
3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농산물 가격 안정을 위한 할인 지원을 강조하면서 재정당국이 예비비 활용 검토에 나섰다.
전날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국민이 체감하는 물가는 여전히 높다"며 "정부는 장바구니 물가가 안정되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을 때까지 긴급 농축산물 가격 안정 자금을 무제한, 무기한으로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3%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이어지고 사과·배 등 과일 가격이 역대 최대 폭으로 급등하며 악화한 민심을 달래기 위한 조치로 읽힌다.
계획에 없던 지출은 결국 예비비로 때울 수밖에 없다. 올해 예비비 편성액은 4조2000억원으로 코로나19 팬데믹(2020~2023년) 시기를 제외하면 최대 규모다. 팬데믹 직전인 2019년에는 3조원 안팎이었다.
물가 안정용 지출 규모가 얼마나 커질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예비비 투입이 불가피한 여타 과제도 산적한 상태다. 여름철 호우·태풍에 따른 재난 대비와 추석 등 명절 성수품 가격 안정, 김장철 가격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이라는 돌발 변수까지 터졌다. 정부는 전공의 사직 행렬에 따른 의료 공백 대응에 이미 예비비 1285억원을 썼다. 공백이 장기화하면 금액은 더 늘어난다. 의대 증원 작업에 나선 각 대학에 대한 지원도 상당 부분을 예비비에 의존해야 하는 구조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추경에 부정적인 현 정부 기류를 감안하면 예비비를 너무 일찍 소진하는 것 같다"며 "예산을 적게 쓰고도 실효를 높일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데 유통구조 개선 등 본질적 대책 없이 재정 투입으로 농산물 가격 상승에 대응하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