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대표 '기술 중시' 기업인,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29일 향년 89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조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뛰던 당시, 우리나라는 내·외부 여건이 좋지 않아 조 명예회장에게 딴지를 거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조 회장은 그럴 때마다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부분을 강조하며 사업을 밀어붙였다.
"고인, 공학도 출신…치밀한 분석 후 사업 전개"
조 명예회장은 이같은 주위의 만류에도 도전 정신을 강조하며 '안되는 이유 백 가지' 보다 '되는 이유 한 가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 정도의 어려움은 도전 정신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폴리프로필렌 사업'이다. 당시엔 선발 업체들이 폴리프로필렌의 원료인 나프타를 선점한 상황이라 일본에서도 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고인은 수소문 끝에 미국의 한 회사에서 가스에서 수소를 추출해 프로필렌을 만드는 탈수소공법을 적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직 개발 중인 신공법인데다 이를 상업화할 기술이 없었으나 고인의 용단으로 탈수소공법을 적용해 시작한 폴리프로필렌 사업은 큰 성공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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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서도 이어진 '기술 사랑'
고인은 직원들과 기술연수를 함께 받기 위해 신혼여행을 포를리로 갈 정도로 기술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
송재달 전 동양나이론 부회장은 "고인께선 기술에 대한 열정과 집념이 대단히 강했다"며 "영위하고 있는 사업 분야에 대한 이해도 역시 높았다"고 전했다.
실제로 조 명예회장은 일본 와세다 공대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공대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할 정도로 전문성이 높았다. 과거엔 이른바 '부잣집 아들'이 공학을 배우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 명예회장의 기술 사랑은 젊을 적부터 그 조짐이 보인 셈이다.
허례허식과 거리가 멀었던 사람
정철 전 효성물산 전무는 홍콩 주재원으로 근무하던 당시 경비실에서 "미스터 조라는 분이 찾아왔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정 전 전무가 내려가보니 그 곳엔 조 명예회장이 가방을 들고 혼자 서 있었다고 한다. 정 전 전무는 이때를 두고 "깜짝 놀랐지만 정말 소탈한 분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고 회상했다.
허례허식을 싫어한 사례는 또 있다. 과거 일본 출장 자리에선 자동차보다 전철을 이용하는 편이었다고 한다. 비싸고 멋들어진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며 폼 잡는 것보다는 시간 약속에 맞춰 다니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전철을 더 자주 이용했다고 한다.
조 명예회장은 타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기도 했다. 실무진과 토론도 많이 했고, 임원들도 생각이 다르면 조 명예회장에게 "그건 틀린 것 같다"며 건의하기도 했다.
고인은 아무리 부하 직원이라도 전문 지식과 확신을 갖고 이야기하면 받아들였다. 반대로 잘못이나 약점을 감추려는 사람은 질타하길 주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