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10 대책을 내놓은 이후 주택 공급 확대와 건설경기 활성화를 위한 보완 입법 방향을 주제로 26일 진행된 '2024 부동산 입법포럼'에서 전문가들은 국내 주택 시장이 '제2의 금융위기'를 맞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급격한 공사비 상승 등으로 착공이 지연되고 신규 수주는 급감해 지방 중심으로 미분양이 쌓이는 등 주택 시장 한파 속에서 건설 경기 침체와 고금리 등 영향으로 정부의 대대적인 규제 완화와 정책 지원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지적이다.
◆주택·건설시장 위기설 현실화···부동산 PF 우려 해소해야
이날 토론에는 좌장인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를 비롯해 이동주 한국주택협회 산업본부장, 이동훈 한국리모델링협회 정책법규위원장, 한성수 국토교통부 주택정책과장, 김효선 NH농협은행 NH ALL100자문센터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등이 참석해 건설경기 활성화와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한 보완 입법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동주 본부장은 "최근 건설 시장 악화를 나타내는 여러 지표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면서 "물가 상승에 따른 공사비 인상으로 현재 공사비 미수금이 쌓여 있는 상황이다. 공사비 인상에 따라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 금융 경색으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건설사에 대해 유동성 지원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 본부장은 부동산 PF 부실화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의 추가적인 정책·금융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해결 방안으로 △불합리한 PF 조항 개선을 위한 책임준공 표준약정안 마련 △연장 협의 시 과도한 수수료 등에 대한 요구 개선을 위한 금융당국의 지도·감독 필요 △회사채를 발행하기 어려운 중견 이하 건설사 대상으로 자금 지원 확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을 통해 저렴한 금리 지원 등 세 가지를 큰 틀에서 제시했다.
이 본부장은 "미분양 우려가 커지면서 공공택지를 확보한 업체 44곳이 주택사업을 추진하지 못해 작년 8월까지 택지대금 1조2000억원을 연체하고 있다"면서 "LH도 악화된 주택사업 여건을 감안해 미매각 토지를 대상으로 토지리턴제를 시행 중이지만 PF 우발부채 확산 가능성을 감안할 때 하반기에도 추가적인 유동성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한성수 과장은 "정부도 공사비 갈등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공사비 관련 표준계약서를 배포했고 현장에 갈등 전문가를 파견해 주민과 시공사 간 갈등을 해소하고 있다”면서 “부동산 PF와 관련해서도 관계 부처와 깊이 있게 대책을 논의하고 있으며, 과도한 수수료도 금융당국에 실태조사 등 지속적으로 지도·감독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부동산 규제 풀었으나···갭투자·청약 양극화 '역효과' 우려도
정부가 규제를 풀었으나 시장 반응은 신통치 않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효선 수석전문위원은 "정부가 수요 진작 측면에서 주택 공급 확대 등 여러 대책을 내놨으나 시장 반응은 크지 않았다"면서 "수요 진작을 위한 정부 정책이 시장에 먹히지 않는 것은 고금리 영향이 크다.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평균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4% 후반대였고 최근엔 3%대까지 내려왔음에도 매매 거래량이 3만건에 그쳤다. 평년 대비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규제 완화에 따른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어 정책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은 "최근 들어 많지는 않으나 갭 투자 문의가 늘고 있다. 5000만원이나 1억원대 갭 투자처를 찾는 사람들"이라면서 "또 작년 서울 분양가가 3.3㎡당 3500만원으로 책정됐으나 올 1~2월엔 7000만원을 넘어섰다. 아직까지 일부 지역에 남은 '로또 청약'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은 "과거 종합부동산세 개선과 실거주 의무 폐지 불발 등으로 정책 불확실성이 높아져 있는 만큼 실질적인 추진이 가장 중요하다"며 "2027년까지 97만가구가 정비사업에 착수하려면 도시정비법, 주택법 등 개정과 수요 활성화를 위한 세법 개정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주거용 오피스텔 대신 기업형 장기임대주택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은형 연구위원은 "주거형 오피스텔 대신 기업형 장기임대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소비자로서는 대기업 임대주택에 대한 시각이 좋지 않지만 대기업들은 자본력이 튼튼하기 때문에 부실 가능성이 낮다. 일본에서는 임대만 전문으로 하는 기업들도 있다. 현재 설계와 시공을 겸업하는 것이 국내에서 금지돼 있는데 기업을 유인할 수 있게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좌장을 맡은 권대중 교수는 "미분양 주택을 구입할 때 DSR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기업형 장기임대주택 규제도 완화해야 한다"며 "임대주택을 활성화하려면 기업들이 건물을 짓고 난 뒤 수익을 거둬들이는 게 10년 걸린다. 2년, 4년 등 짝수 단위로 임대주택을 운영할 수 있게 하고 세제 혜택을 준다면 기업들이 임대주택 사업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