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 칼럼] '막말' 쏟아내는 정당 후보들 …필터링은 유권자 몫

2024-03-1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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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 각 정당이 후보들의 ‘막말’ 전력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막말에는 여야 불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서울 강북을 경선에서 현역인 박용진 의원을 제치고 승리한 정봉주 전 의원에 대한 공천을 취소하기로 했다. 박용진 의원은 뛰어난 의정활동의 성과를 인정받았던 의원이었지만 ‘하위 10%’ 통보에 따른 감산 때문에 패한 것으로 알려져 대표적인 ‘비명횡사’ 낙천 의원이었다,
그런데 친명계 팬덤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후보 자리를 거머쥔 정 전 의원 과거 막말 전력이 터져나왔다. 2017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DMZ(비무장지대)에서 발목지뢰를 밟는 사람들한테 목발을 경품으로 주자'는 취지의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졌다. 2015년 8월 경기 파주시 DMZ에서 우리 군 부사관 2명이 목함지뢰로 크게 다치는 사건이 있었음에도 이를 희화화하여 농담거리로 삼았기에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거짓 사과 논란까지 불거졌다. 정 전 의원은 "당사자께 직접 유선상으로 사과드리고 관련영상 등을 즉시 삭제했다"며 "정중히 사과드린다"고 했다. 그러나 피해 당사자들은 사과를 받은 일이 없다고 밝히면서 거짓 사과임이 드러났다.

정 전 의원의 막말은 이뿐이 아니었다. 2013년에는 4·24 재보궐선거 노원병 지역에 출마를 선언했던 안철수 의원(당시 무소속)을 겨냥해 "결점을 공개하지 않아 완벽한 인간으로 주접을 떨다가 '노원병'의 신(神)이 되고자 하는 사람, '노원병신'"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이밖에도 정 전 의원은 과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를 비판한 금태섭 전 의원에게 "이 X만한 XX야! 전국 교도소 조폭이 내 나와바리"라며 "죽여버린다"고 욕설을 하고, 조계종을 북한 김정은 집단에 비유하며 종무원들과 몸싸움을 벌인 전력, 가정폭력 혐의로 벌금 50만원형을 선고받았던 사실까지 연이어 드러나면서 여론이 계속 악화되자 결국 민주당은 그에 대한 공천을 취소했다. 결과적으로 민주당 경선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했던 셈이다. 

그런가 하면 국민의힘에서는 도태우 대구 중남 후보의 공천을 취소했다. 도 후보는 지난 2019년 유튜브 방송에서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굉장히 문제가 있는 부분들이 있고, 특히 거기에는 북한 개입 여부가 문제가 된다는 것이 상식"이라고 했다. 2019년 8월 태극기집회에서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겨냥해 "문재인의 이런 기이한 행동을 볼 때 죽으면 그만 아닌가 그런 상상을 해보게 된다"고 말한 게 뒤늦게 확인됐다. 도 후보는 5·18 폄훼 논란으로 두 차례 사과문을 올렸지만, 이후에도 부적절한 발언이 추가로 드러나서 총선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한 국민의힘은 결국 공천 취소 처분을 내렸다. 국민의힘이 16년 만에 전국 모든 선거구에 공천을 하는 마당에 다시 ‘5·18 망언’에 휩싸이는 사태를 우려했던 것이다. 

국민의힘은 여기에 이어 부산 수영구에서 공천을 받은 국민의힘 장예찬 후보에 대한 공천도 취소했다. 장 후보는 대선 때부터 윤석열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해온 ‘친윤’ 청년 정치인이었기에 국민의힘도 고심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과거 쏟아냈던 막말들이 화수분처럼 터져나왔다. 장 후보는 2013년 무렵 자신의 SNS에 "매일 밤 난교를 즐기고 예쁘장하게 생겼으면 남자든 여자든 가리지 않고 집적대는 사람이라도 맡은 직무에서 전문성과 책임성을 보이면 프로로서 존경받을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지 않을까" 등의 글을 올린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이어서 '동물병원을 폭파하고 싶다', '(서울시민) 교양 수준이 일본인 발톱의 때만큼이라도 따라갈 수 있을까 싶다', '책값 아깝다고 징징거리는 대학생들이 제일 한심하다' 등의 어처구니 없는 게시물 내용들이 속속 공개되었다. 이에 장 후보는 "과거 부적절하고 정제되지 않은 표현이 있어 심려를 끼쳤다. 고개 숙여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며 사과했지만 논란이 쉽게 가라앉을 성질의 내용들이 아니었다. 선거 때면 후보들의 과거 막말들이 문제가 되는 광경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후보들의 막말도 평소 정치인들이 해오던 막말 가운데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여야의 극한 대결 속에서 평소 여야 정치인들이 쏟아낸 막말 사례들을 들자면 한이 없을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되지 않은 정치인들이라고 해서 입이 깨끗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새로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시기이기에 새로 나선 후보들의 막말에 대한 책임성이 어느 때보다도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막말에서 공통적인 것은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들의 입에서는 좀처럼 나올 수가 없는 얘기들이라는 점이다.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평균 수준보다 나은 리더가 아니라 오히려 국민들의 수준을 못 따라가는 저질의 인성을 가졌다는 얘기가 된다. 모든 정치인들에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겠지만, 그동안 지켜본 바로는 적지 않은 정치인들의 경우가 그러했다.

이런 막말 논란이 빚어지면 흔히 정치를 하기 이전, 공인이 되려하기 이전에 했던 말이라고 둘러댄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플라톤의 <국가> 2권에 나오는 ‘기게스의 반지’ 얘기가 떠오른다. 리디아의 목동 기게스는 동굴 속 거인의 시체에서 반지를 빼 들고 나온다. 그 반지를 끼고서 안으로 돌리면 자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되고, 밖으로 돌리면 자신의 모습이 다시 나타난다는 사실을 기게스는 알게 된다. 그래서 기게스는 이 반지를 이용해서 왕비와 간통하고, 칸다우레스왕을 암살하여 왕위를 찬탈한다. 이를 두고 글라우콘은 소크라테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런 경우에 올바름 속에 머무르면서 남의 것을 멀리하고 그것에 손을 대지 않을 정도로 그처럼 철석 같은 마음을 유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이 생각됩니다."

인간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있어서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면, 다들 기게스처럼 나쁜 짓을 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정치인이 아니었던 때라고 해서 그런 막말을 태연히 한 것이라면 기게스의 반지를 끼고서 나쁜 짓을 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국민을 대표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라면 국민이 보는 곳에서만 품격있는 언행을 하고 국민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상식 이하의 막말을 하는 이중 인격의 태도는 적합하지 않다.

언어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는 삶의 문맥에 따라 존재한다”고 했다.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막말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나서는 현실이 너무도 부조리하게 느껴진다. 정치는 어떤 사람들이 해야 하는 것인가. 그래도 국민들 평균 수준보다는 나은 사람들이 국민의 대표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단지 이번에 논란이 된 정치인들만 갖고 하는 말은 아니다. 그보다 더 심한 언행들을 하고서도 버젓이 후보가 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우리 보다 형편없이 못한 후보들을 걸러내는 것은 결국 우리 유권자들의 몫이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대학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 사이버대학교 NGO학과 외래교수 ▷전 한림대 사회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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