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대선의 공화당 후보로 확정되면서 한때 우리나라 경제를 궁지로 몰았던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구호의 볼륨이 다시 증폭되고 있다.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로 상징되는 '트럼피즘(트럼프주의)'의 귀환은 한국 경제에 초대형 악재다. 올해 최대 화두인 기준금리 인하 시점은 물론 물가·통상·에너지 등 정책 향방이 모두 '시계 제로'에 갇힐 수 있다.
핵심 어젠다 중 하나가 보호무역주의 확대다. 보편적 기본관세 도입, 상호무역법 제정, 대중국 규제 강화 등이 대표적이다. 보편적 관세란 미국과 교역하는 모든 국가의 모든 상품에 대해 기존 관세율에 10%를 더한 세율을 일괄 부과하는 것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보편적 관세가 도입되면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이 연간 173억8000만 달러(약 23조원) 줄어들고, 실질 국내총생산(GDP)도 최대 0.308%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실제 트럼프 집권 전인 2016년 232억 달러였던 대미 무역흑자는 집권 후인 2017~2020년 연평균 150억 달러 수준으로 36%가량 축소된 바 있다.
중국 견제를 노골화하는 '트럼프발 무역전쟁'에 따른 충격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중국은 우리 수출에서 20%를 차지하는 최대 교역국이다. 중국 상품의 대미 수출길이 막히면 한국산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수출도 타격을 받게 된다.
유가 등 에너지 가격 불확실성도 확대될 수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명분으로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사실상 방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유가가 오르고 공급망 분절화가 심화하면 우리나라처럼 대외 의존도가 높은 경제 체제부터 타격을 입는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대목은 물가와 금리 정책의 엇박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세 때마다 빼먹지 않는 구호가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이다. 석유 시추를 늘리고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신재생에너지 관련 법안을 폐기하는 식으로 물가를 낮추겠다는 의미다. 그러면서도 대외 관세는 높이겠다고 공언한다. 관세율 인상은 물가 상승 요인이다.
현재 5.50% 수준인 미국 기준금리는 취임 후 1%대로 떨어뜨리겠다고 강조한다. 점진적 금리 인하를 주도하는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교체도 공공연히 주장한다. 미국 내 물가와 금리 향방이 불투명해질수록 한국은행 통화정책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금리 인하를 통한 금융비용 부담 완화와 내수 회복 등을 기대해 온 서민 가계에는 청천벽력 같은 상황이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재집권은 수출 성장력을 낮추고 지정학적 리스크를 높여 물가 불안을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며 "점진적 금리 인하라는 기본 전망을 훼손하고 금리 변동성을 높이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승석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국내 대기업들이 미국에 자동차·배터리·반도체 공장을 설립하는 등 활발히 진출했는데 트럼프가 뒤집으면 무용지물"이라며 "바이든의 재선을 염두에 둔 투자는 지금이라도 재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