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부는 ‘3월의 6·25전쟁영웅’으로 한문식 해군 대령을 선정했다고 29일 밝혔다.
한 대령은 6·25전쟁 중 기뢰 제거함인 김해정(YMS-505) 정장으로 1950년 8월 서울봉쇄 작전에서 적의 무장병력과 군수물자 수송 차단에 기여했다.
또 1952년 7월 금강산함(PC-702) 함장으로 서북해역의 전략 도서인 황해남도 옹진에 위치한 창린도 탈환작전에서 큰 역할을 수행했다.
1950년 8월 6∼7일 서해안 봉쇄작전에 참전해 적 발동선 2척, 화물선 2척, 다수의 범선을 격침함으로써 서해안을 통한 적의 무장병력과 군수물자 수송을 차단하는데 기여했다. 이후 금강산함장으로 해상 일선에서 작전 임무를 수행했다.
1952년 7월 15일 적 300여명의 기습공격으로 창린도가 점령당하자 금강산함, 영국 순양함(벨파스트함), 호위함(PF-116함), 아군 유격대는 연합작전회의를 열고 미 해군 전투기의 지원을 받아 창린도 재탈환을 결정했다.
한 대령은 아군 함정들과 전투기들의 피아식별을 위해 상륙군인 유격대에게 흰 천 한 장씩을 소유하고 임무를 수행하는 ‘백포작전(白布作戰)’을 제안했다. 1952년 7월 16일 새벽 140여명의 유격대가 탑승한 범선, 발동선을 창린도 남단으로 호송해 성공적으로 상륙시켰다.
이후 영국 순양함, 호위함, 미 해군 전투기 4대와 연합작전으로 포격 및 폭격을 개시했다. 이에 힘입은 유격대는 적의 반격이 가장 치열했던 창린도 81고지를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이 작전의 성공으로 적군 70명 사살, 27명 생포, 무기 다수 노획 등 큰 전과를 거뒀다.
백포작전을 통해 창린도 탈환에 기여한 한 대령은 휴전회담을 이용해 서해안 일대에 포대를 구축하고 해안경비요원을 증강시켜 해안으로 진출하려는 적의 기도를 좌절시켰다.
정부는 한 대령의 공훈에 따라 충무무공훈장(1951년, 1953년), 을지무공훈장(1952년)을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