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는 28일 의료법 20조 2항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에서 재판관 6대 3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선고했다.
헌재는 "태아의 성별 고지를 제한하는 것은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적합하지 않고, 부모가 태아의 성별 정보에 대한 접근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를 필요 이상으로 제약해 침해의 최소성에 반한다"고 밝혔다.
이 조항은 '의료인은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나 임부를 진찰하거나 검사하면서 알게 된 태아의 성(性)을 임부, 임부의 가족, 그 밖의 다른 사람이 알게 해서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후 헌재는 지난 2008년 임신 기간 내내 성별 고지를 금지한 의료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듬해 국회는 헌재 결정 취지를 반영해 임신 32주가 지나면 성별을 고지할 수 있도록 대체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저출산이 심해지고 남아 선호가 거의 사라진 최근에는 부모의 알 권리를 위해 태아의 성별 고지를 더 폭넓게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A씨 등 3명은 해당 조항이 헌법 10조로 보호되는 부모의 태아 성별 정보 접근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면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심판 대상 조항은 태아의 생명 보호란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적합하지 않고, 부모가 태아의 성별 정보에 대한 접근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를 필요 이상으로 제약해 침해의 최소성에 반한다"며 "이에 따라 법익의 균형성도 상실했고, 결국 과잉금지 원칙을 위반해 부모가 태아의 성별 정보에 대한 접근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심판 대상 조항으로 개정된 이후 15년이 지난 현재 우리나라는 국민의 가치관과 의식의 변화로 전통 유교 사회의 영향인 남아 선호 사상이 확연히 쇠퇴하고 있다"며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고려할 때 임신 32주 이전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는 행위를 태아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행위로 보고, 태아의 생명을 박탈하는 낙태 행위의 전 단계로 취급해 이를 제한하는 것은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의료인의 임신 32주 이전 태아의 성별 고지 행위로 인해 태아의 성별을 알게 된 부모가 성별을 이유로 낙태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있더라도 이 경우 태아의 생명을 박탈하는 행위는 성별 고지 행위가 아니라 성별을 이유로 한 낙태 행위이므로 국가가 개입하고 규제해야 할 단계는 낙태 행위가 발생하는 단계"라고 지적했다.
다만 이종석·이은애·김형두 재판관은 이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의견을 냈다. 이들 재판관은 "단순 위헌 결정을 하는 것은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수단을 대안 없이 일거에 폐지하는 결과가 되므로 타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입법자가 낙태죄에 관한 형법 개정안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해 태아의 성별 고지 제한 시기를 앞당기는 것으로 개선 입법을 하도록 해 태아의 부모에 대한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하면서도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수단에 관해 법적 공백이 없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