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KDI)은 27일 KDI 포커스 '더 많은 대기업 일자리가 필요하다' 보고서를 통해 "대기업 일자리로 대변되는 좋은 일자리의 부족은 우리 사회의 각종 문제의 원인이 되고 있다"면서 "기업 규모화를 저해하는 정책적 요인들을 파악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KDI에 따르면 청년들은 중소기업 일자리보다 대기업 일자리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 지난 2021년 기준 300인 이상 사업체에서 근무하는 비중은 전체 종사자의 14%, 임금근로자의 18%에 불과했다.
이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매우 낮은 것이다. OECD는 250인을 기준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구분한다. 한국의 250인 이상 기업이 전체 일자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에 그치고 있는데 이는 OECD 국가 중 가장 낮고 평균(32%)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대기업 일자리 비중이 가장 높은 미국(58%)뿐만 아니라 프랑스(47%), 영국(46%), 독일(41%) 등에 비해서도 크게 낮다.
사업체 규모에 따른 근로조건도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 2022년 기준 5~9인 사업체의 임금은 300인 이상 사업체의 54%에 그치고 있다. 100~299인 사업체의 임금도 300인 이상 사업체의 71% 수준이다. 사업체 규모에 따라 임금 외 근로조건도 차이를 나타낸다. 일례로 출산전후휴가·육아휴직 등 모성보호제도 활용을 두고도 소규모 기업 근로자는 대기업 근로자에 비해 상당한 제약을 겪고 있다.
대기업 일자리 부족에 입시경쟁·저출산 등 부작용 심각
대기업 일자리 부족은 여러 문제를 나타내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자 하는 입시경쟁이 여전하다. KDI는 4년제 일반 대학을 수능성적에 따라 5개 분위로 구분한 뒤 각 분위 대학 졸업생의 평균 임금을 연령에 따라 계산했다. 그 결과 상위 20%인 5분위와 하위 20%인 1분위의 40~44세 임금격차는 51%에 달했다. 임금 프리미엄이 높으니 상위권 학에 진학하기 위해 사교육이 늘고 사회이동성도 제약한다는 것이 KDI의 판단이다.저출산 문제도 대기업 일자리 부족과 관계가 있다. 대기업 일자리가 늘어야 여성 근로자가 모성보호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는 의미다. 수도권 집중 역시 비수도권의 대기업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
이에 KDI는 기업의 규모화를 뜻하는 스케일 업(scale up)을 저해하는 정책적 요인을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업체 규모를 정부가 인위적으로 늘리기는 쉽지 않지만 이를 지원하기 위한 정책적인 노력은 진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보고서를 작성한 고영선 KDI 선임연구위원(연구부원장)은 "사업체의 규모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대규모의 자본투자, 기술투자가 필요한 경우에는 커지는 특성이 있다"면서 "경영자의 경영능력이 굉장히 중요하고 지역적 특성,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확산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중소기업이 굳이 규모를 키우지 않으려는 피터팬 신드롬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소기업 중에서도 경쟁력이 검증된 기업은 커져야 하지만 부족한 기업은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라며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를 필요에 따라 개선하는 등 규제개선과 함께 업력이 긴 사업장에 대해서는 신용보증을 줄이는 등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정책을 줄여나가는 부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