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범·신제윤·성윤모… 재계, 관료출신 사외이사로 모시기 붐

2024-02-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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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직 전 산업·서승환 전 국토도

검찰 등 규제당국 출신 중용서 선회

ESG 정보공시·타이어 규제 등 대응

주요 기업들이 고위 관료 출신을 잇달아 사외이사로 영입하고 있다. 기존에는 법조, 공정거래위원회 등 기업 현안과 관련된 인사들을 주로 영입해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영입 범위를 점차 늘려가고 있는 추세다. 금융·외교 등 불확실한 대외 경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관료 출신을 선임하는 것이 큰 특징이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에쓰오일은 고승범 전 금융위원장을 신임 사외이사 후보로 올렸다. 고 전 위원장은 2026년 법정공시로 확대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정보 공시 대응 수립에 자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금융위가 ESG 공시 제도를 만들고 있는 주무부처로, 에쓰오일의 대관 역량이 구체적인 공시 이행 수립에 막대한 영향을 주게 됐다.

특히 에쓰오일은 정유 4사 중 탄소 배출량이 가장 많아 ESG 공시 제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ESG 공시에는 협력사의 온실가스 배출량까지 집계하도록 하고 있어 탄소 배출량이 많은 정유 업계가 대책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ESG 관련 허위 공시를 할 경우엔 자본시장법 위반을 근거로 제재를 받을 수 있어 선제 대응이 필요해졌다. 고 전 위원장을 영입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에쓰오일은 2021년에는 한덕수 국무총리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등 권력 기관 출신 영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는 회사의 신성장동력인 수소·폐플라스틱 사업이 정부의 육성 전략과 맞닿아 있는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전까지는 유류세 증가에 직격탄을 맞는 정유 업계 특성상 에너지 정책을 관장하는 산업통상자원부 관료들의 사외이사 진입이 활발했다. 그러나 탈탄소 정책 등 업계 내 사업 다각화 추세에 사외이사 구성도 다양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 사외이사 신규선임안을 상정하는 주주총회를 소집한다고 공시했다. 과거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삼성전자 사외이사로 선임된 적이 있지만 신 전 위원장 같은 정통 금융관료가 사외이사로 합류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삼성생명 법'이라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의식해 금융 관료를 영입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법 통과 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의결권을 상당 부분 잃게 되고, 삼성 지배구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경제·통상 전문가들의 역할도 커질 전망이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 11월 미국 대선까지 등 거듭 늘고 있는 글로벌 변화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목적이 크다. 

효성첨단소재가 정만기 무역협회 상근부회장을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하게 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최근 유럽에서 타이어 미세입자 규제 도입 움직임이 일자 이에 대응할 전문가가 필요해졌다.

정 부회장은 지식경제부와 산업부에서 산업기반실장, 산업통상기획관, 무역정책관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인사다. 특히 그는 IRA 발효 이후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 자격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현지 정·관계 인사들과 접촉하며 국제 무역·통상 전문가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HD한국조선해양은 김성한 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을 자사 사외이사 후보로 선정했다. 김 전 실장은 윤석열 정부에서 초대 국가안보실장을 맡았다가 지난해 3월 사퇴했다. HD한국조선해양은 "회사 전체 매출의 약 90%가 해외에서 이뤄지고 각국 보호무역 기조가 점차 강화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김 후보자가 가진 외교·통상 분야의 풍부한 지식과 경험은 회사 경쟁력 제고에 기여할 수 있다"고 영입 배경을 설명했다. 

이외 다수 기업도 산업·경제통 인사들을 사외이사 자리에 앉힐 계획이다.

HD현대인프라코어는 내달 주총에서 성윤모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석좌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한다. 그는 특허청장과 산업부 장관을 지낸 인물로, 현재 효성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윤상직 전 산업부 장관과 이원재 전 국토교통부 제1차관을 사외이사로 영입하기로 했다. HD현대는 신임 사외이사에 서승환 전 국토부 장관을 선임하기로 했다. 수주 경쟁이 치열한 중공업 업계에서 해외 수주 지원 역할을 하는 국토부 인사들의 역량이 필요한 배경이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이 고위 관료를 활용해 정부와의 관계에서 그들이 갖는 넓은 인맥을 두루 활용하려는 목적이 크다"면서 "최근 급변하는 대외 환경에 전문성을 갖춘 관료 출신 인사 영입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아주경제DB
[사진=아주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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