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하하그룹은 이날 소셜미디어 웨이보 계정을 통해 "쭝 회장이 현지시간 25일 오전 10시 30분 세상을 떠났다"면서 추모식은 28일 저장성 항저우시 샤사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中 개혁개방이 없었다면 와하하도 없다"
쭝 회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면서 저장성 항저우 상청구의 와하하그룹 본사 옛 건물 앞에는 꽃다발과 함께 와하하의 주력상품인 AD 칼슘음료를 놓고 쭝칭허우 회장의 사망을 애도하는 중국인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중국 펑파이신문은 보도했다.
중국 기업인들도 쭝 회장의 사망에 애도의 뜻을 표했다. 레이쥔 샤오미 회장은 이날 웨이보에 "방금 책장에서 '비범한 마케팅 와하하: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실전 학습법' 책을 찾았다. 20여년간 그에 관해 쓴 책을 보았는데 깊은 인상과 감명을 받았다. 한 시대의 전설이여, 안녕히 가세요"라고 적었다.
마윈 알리바바 창업주도 "40대 나이에도 분투하는 것은 개척자 정신이고, 어렵게 창업해 밤낮으로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기업가 정신"이라며 고인을 애도했다.
저우훙웨이 360그룹 창업주도 "말수는 적었지만 친근했다. 옷차림이 소박해 마치 동네 아저씨 같았다. 쭝칭허우 선생의 정신이 더 많은 중국 기업인을 장려해 함께 노력하길 바란다"고 애도했다.
사실 쭝칭허우 회장은 과거 자서전 서문에 '나는 밑바닥부터 시작한 보통 사람이다. 운이 좋게도 커다란 시대에 태어나 기회를 얻었고 회사를 설립해 중국 최고의 부자가 됐다'고 말했을 정도로 마흔이 넘은 늦깎이 나이에 개혁개방의 물결을 타고 성장한 대표적인 중국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쭝 회장은 살아생전 "개혁개방이 없었다면 지금의 와하하는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쭝 회장은 2010, 2012, 2013년 세 차례에 걸쳐 미국 경제지 포브스 부자 순위에서 중국 최대 갑부에 랭킹됐다. 중국 공산당원으로, 중국 정부가 선정한 2018년 '개혁개방 40년 100인'에 선정된 17명의 민영기업인 중 한 명이기도 하다. 2003년부터 2018년까지 15년간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우리나라 국회 격) 대표로도 왕성하게 활동했다.
염전 막노동꾼에서 中 최고갑부로 '등극'
1945년 11월 항저우 출신인 그는 어렸을 적 가정 형편이 넉넉지 못해 학업을 중단하고 돈 되는 일이면 닥치는 대로 했다. 기차역에서 볶음밥·고구마를 팔고, 농장·차밭·염전 등에서 막노동도 했다.1978년 33세 되던 해 다시 항저우로 돌아온 그는 공장 세일즈맨으로 일하며 중국 개혁개방의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했다. 1987년 42세 나이에 여러 곳에서 빌린 돈 14만 위안으로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당시 유행하던 동요 제목에서 따와 기업 이름을 '와하하'로 짓고 어린이용 영양음료를 출시해 대박을 터뜨렸다.
이후 항저우 대형 국영 통조림공장을 인수한 그는 더욱더 사세를 불리며 중국 현지 음료시장을 휩쓰는 음료기업으로 성장가도를 달렸다. 생수, 탄산수, 단백질 음료, 과즙 음료, 차 음료, 커피 등 음료부터 유제품, 통조림, 의료보건식품 등으로 제품군을 넓히며 2013년 한 해 와하하 매출은 783억 위안으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특히 그는 중국 최대 갑부임에도 근면성실함과 검소한 태도를 유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매일 오전 7시 이전에 출근해 밤 11시에 퇴근하고, 회사에서 밤을 새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고속철 2등석, 항공기 이코노미석을 즐겨 타고, 소박한 점퍼·바지에 헝겊 신을 신고 다닌다 해서 '헝겊 신 부자'라고 불리기도 했다.
다만 와하하그룹도 2015년부터 중국 음료시장 다원화, 전자상거래 발전으로 차츰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5~2020년 매출은 400억 위안대로 최고치의 반토막까지 고꾸라졌을 정도다. 최근 들어서는 다양한 신제품을 출시하며 서서히 재도약을 노려왔다.
한편, 쭝칭허우 회장 사망으로 와하하그룹 경영은 그의 딸 쭝푸리가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1982년생으로 올해 42살인 그는 미국 유학파 출신이다. 미국 현지 고등학교를 나와 서부 명문 페퍼다인대학을 졸업한 그는 2004년 귀국해 20대 초반부터 와하하그룹 생산관리 기층 간부직부터 시작하며 경영 수업을 받았다. 2021년 12월 쭝푸리 부회장 겸 총경리로 올라서며 사실상 그룹 경영을 지휘했다. 쭝칭허우 회장도 그간 수차례 공개석상에서 딸을 언급하며 "나보다 더 훌륭하다"고 칭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