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칼럼] 공천의 실패는 선거의 실패, 정당의 실패다

2024-02-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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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제22대 총선을 40여 일 앞두고 공천 갈등이 날카롭다. 돌이켜보면 공천과 관련한 갈등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에도 공천 학살이라는 비판이 여러 차례 있었고, 박타령 등 특정 계파를 중심으로 한 공천의 후유증이 컸던 사례도 적지 않았다.
왜 선거 때마다 이처럼 공천 갈등이 되풀이되는 것이며, 이런 갈등을 잠재울 수 있는 올바른 공천은 어떤 것일까? 공천의 성격상 이러한 갈등은 불가피한 것일까?
공천의 의미와 기능은 현대 민주국가에서 선거가 갖는 의미와 비중, 역할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만 제대로 확인될 수 있다.
대의제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는 현대 민주국가에서 선거는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에 따라 국가기관을 구성하는 첫 단추이다. 따라서 선거가 제대로 되어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될 수 있으며, 이러한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국민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는 선거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국민 대다수는 후보자 개개인에 대한 평가와 판단보다 그가 소속된 정당을 보고 투표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이른바 정당민주주의가 불가피한 현실 속에서 무소속 후보자가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어떤 정당의 공천을 받았는지가 당선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양대 정당의 공천을 받는 것은 사실상 절반의 당선이라고도 평가될 수 있고, 특정 정당의 지지가 뚜렷한 지역에서는 공천이 사실상의 당선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천 경쟁이 치열한 것은 불가피하며, 그 과정에서 갈등과 대립, 나아가 각종 지표 왜곡 등을 둘러싼 잡음도 계속되었다. 그러면 이러한 공천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방법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점은 올바른 공천의 기준이다. 공천은 선거의 일부이며, 정당이 국민들에게 후보자를 책임 있게 추천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천의 실패는 선거의 실패일 뿐만 아니라 정당의 실패이기도 하다.
정당의 공천은 민주성과 책임성을 갖춰야 한다. 공천의 민주성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준에 따라 검토될 수 있다.
첫째, 정당의 공천 과정이 객관성과 공정성을 갖춰야 한다. 공천을 원하는 여러 (예비)후보자들 사이에서 어떤 기준과 절차에 따라서 공천이 결정되었는지, 그 기준과 절차는 합리적인지를 국민들이 확인하고,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공천의 결정에서 당원들의 의사가 중요한 비중을 가져야 한다. 당 지도부의 의사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공천이라면 민주적 공천이라 말하기 어렵다. 계몽전제군주의 통치라 하더라도 민주적인 것은 아닌 것처럼 당 지도부의 일방적 결정에 따른 공천이라면 민주적인 것일 수 없다.
셋째,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공천이어야 한다. 물론 국민들이 지지하는 정당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모든 국민들이 모든 정당의 공천에 대해 납득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공천의 룰에 대해 그리고 이를 통한 선거의 시스템에 대해 국민들이 납득하지 못할 경우에는 민주적 선거 자체에 심각한 불안 요인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현재 양대 정당의 공천은 이러한 기준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을까? 만일 그랬다면 공천 갈등이 지금처럼 심각하게 불거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 민주당의 공천 갈등에 대해서는 지지층에서조차 그로 인해 선거에서 패배할 것을 우려하게 만들 정도로 계속 심각한 상태로 진행되고 있다.
양대 정당 모두가 공천의 기준과 절차가 충분히 투명하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공천하는 과정에서 기준과 절차가 계속 바뀌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는 특히 민주당의 경우에는 공천 탈락자들의 날카로운 반응을 통해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만일 선거의 당선자 확정 방식을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 변경한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현재 공천과 관련한 기준과 절차의 공정성 문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공천에 관한 당 지도부의 영향력도 심각한 문제라는 점에서도 양대 정당 모두 개선이 필요하다. 물론 그 문제가 표면상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친명 vs 비명의 갈등이 심각한 민주당 쪽이다. 그러나 국민의힘도 지도부의 영향력이 배제된 시스템 공천이라고 말하기에는 개선되어야 할 점들이 적지 않다.
특히 비례대표 후보자의 선정 및 순위의 결정과 관련해서는 양대 정당 모두가 뚜렷한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것이 대한민국에서 선거의 비례성 강화를 위해 비례대표 의석 확대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이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라는 점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위성 정당 문제에 대해 여야가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무시한 채 상대방 탓만 하고 있는 것을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런 상태에서 위성 정당에 대한 공천이 이루어지고, 이들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됐을 때 대한민국의 정치 불신은 더욱 심각한 상태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여야 모두 이런 점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공천이 파행으로 치닫고, 위성 정당이 다시 만들어지는 것은 ‘민주적 공천’보다 ‘이기는 공천’을, 자신의 정당 또는 당 지도부에 유리한 공천을 우선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민주적 공천은 지는 공천이고, 비민주적 공천은 이기는 공천일까? 국민이 원하는 공천이 민주적 공천인데, 왜 민주적 공천은 이기는 공천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할까? 국민들의 의사를 수용함으로써 지지를 얻는 것보다 각종 꼼수로 공천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것이 사실일까?
이런 생각들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수준을 너무 낮게 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어쩌면 이기는 공천을 이유로 정당 전체가 아닌 당 지도부에게만 유리한 공천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선거의 참패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때로는 전략적 공천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국민의 의사에 맞는 공천이 되고자 함이지,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는 공천일 수는 없다. 이기는 공천은 국민의 뜻을 확인하고 존중하는, 그럼으로써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민주적 공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비상임위원 △ 경찰청 인권위원회 위원장 △전 국회 개헌특위·정개특위 등 자문위원 △전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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