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장금은 억울했다. 고기를 씹을 때 그냥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한 것인데 "왜 홍시라고 생각하냐"는 최고상궁의 추궁(?)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일반인이었던 최고상궁은 절대 미각을 가진 대장금을 이해할 수 없기에 던진 질문이겠지만 대장금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 홍길동은 답답했다. 생모가 비록 천민 출신이지만 엄연히 홍 판서가 생부인데 그를 아버지 대신 '대감'이라 불러야 했기 때문이다. 우연히 뒤뜰에서 만난 홍 판서에게 부친을 부친이라고 못 부른다고 하소연해 봤지만 홍 판서는 "왜 이렇게 방자하냐"고 다그칠 뿐이었다. 신분제도를 지키기 위해 천륜도 가뿐히 무시했던 당시 사회의 모순이었다.
우선 그 유명한 대장금의 '홍시 장면'은 어려운 시기 자신들의 배만 불린다는 비판을 받는 은행권을 보면서 떠올랐다. 정치권이 은행권을 때리는 이유야 예나 지금이나 손쉬운 이자 장사를 한다는 것이었지만, 이번 정부 들어서는 '독과점'이라는 다소 신선한 비판 논거를 들이댔다.
독과점으로 대출 시장을 장악한 은행들이 대출금리 등을 비슷하게 책정해 더 큰 이득을 올리고 있다는 논리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은행권 대출 담합 의혹을 조사한 뒤 KB국민·우리·신한·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에 ‘정보 교환 담합’을 했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 격)를 보낸 것도 비슷한 결이다.
하지만 은행들은 장금이처럼 억울했을 것이다. 정부의 라이선스(면허)를 받아야 하는 은행업의 특성상 독과점은 피할 수 없는 귀결인데, 정부가 이를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전 세계 은행 산업 역시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독과점 형태를 취하고 있다.
모든 은행들이 담합해 기준금리 변동을 무시하고 고금리를 책정했다는 증거가 있으면 모를까, 독과점이라는 사실만으로 은행을 비판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얘기다. 정부가 비판하는 최근 은행들의 고금리 이자 장사는 사실 전 세계적인 금리 인상에 따른 것이지 독과점과는 직접적 연관이 없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정부가 은행업을 독과점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정부 스스로 깐 판을 깨는 모순적 행태다. 독과점을 깨기 위해 은행을 더 늘리겠다는 정부 방침 역시 궁색해 보인다.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 대비 은행 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은행들이 장금이 말을 빌려 "독과점을 하라고 해서 한 것인데···"라고 하소연하면 사실 정부로서도 딱히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홍길동의 호부호형 불허 얘기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태와 오버랩된다.
도급 순위 16위인 중견 건설사 태영건설이 기업재무구조 개선작업(워크아웃)에 돌입한 가운데 증권가에는 4월에는 다수 건설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할 것이라는 지라시(사설 정보지)까지 돌고 있다. 하지만 당국을 비롯해 해당 건설사들은 '문제가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위기의 '위' 자도 못 꺼내게 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다수의 기업 재무팀과 증권가는 4월 위기설을 심상치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 금융당국이 PF 옥석 가리기에 돌입한 가운데 4월 총선이 끝나면 구조조정 작업에 더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근거로 활용된다. 태영건설 역시 워크아웃 돌입 직전까지 문제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 정황도 의구심을 높이고 있다. 경제주체 일각에서는 위기 가능성조차 언급하지 못하게 하는 현 상황을 답답해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PF 사태가 경제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불안감을 조성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진짜 위기가 코앞에 닥쳤는데도 이를 위기로 인식조차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는 것이다.
애초에 홍길동에게 호부호형을 허락했다면 그가 사회 통념을 통째로 부정하는 율도국을 세우는 대신 나라의 큰 일꾼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예견된 위기는 위기가 아니라고 한다. 총선에 악재라는 이유로 경제위기 가능성조차 언급하지 못하게 하는 현재의 경직된 분위기도 변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