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재미로 보는 유명인사의 새해 운세”라는 제목의 유튜브가 올라와서 열어보니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올해 조용한 곳에서 쉬면서 취미생활도 하고 독서도 하고 명상도 할 여유가 생기는 팔자라고 한다. 이재명 대표가 한가롭게 서예 삼매경에 취해있거나 명상에 침잠한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를 반대하고 비난하는 세력이 이재명 대표에게 선사하고 싶은 운명이다. 비록 교도소가 세팅이 되어야 한다 해도.
역사상 참으로 많은 유명인, 정치인들이 오랜 구금기간을 통해서 진정한 거물로 탄생했다. 넬슨 만델라를 비롯한 수많은 세계적 리더들이, 그리고 우리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감옥에서 자신의 인간적 그릇을 넓히고 강인한 정신력을 길렀다. 물론 부자유와 열악한 생존조건에 기가 꺾이고 쉽게 타협하는 약한 인간이 되어버린 케이스가 더 많기는 할 것이다. 아무튼, 이재명이 현재의 위치와 생활조건에서 인간적으로 성장하고 인격적으로 도약할 가능성은 거의 없고 교도소 같은 속세와 단절된 환경에서 자신의 참모습과 독대를 해야만 의미있는 변화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떤 사람이 극도로 빈한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다면 사회에 대해서 복수심을 갖고 보상심리가 강할 것이라는 것이 심리학적 상식이다. 심한 역경에서 성장하고 부대꼈기 때문에 모든 인간에 대한 무한한 연민을 갖고 그들의 벗이 되는 경우는 존재하지만 예외이다. 과문한 탓인지 나는 이재명 대표가 누구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거나 대의(大義)를 위해서 소아(小我)를 희생한 사례를 알지 못한다. 반대로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측근’은 무척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가 유동규씨, 김문기씨 등을 자기의 절대 충복으로 기른 방법은 몹시 알고 싶은데 그들의 이용가치가 다하면 태도를 모질게 바꾼 것일까? 형수에게 그런 흉악한 욕설을 하는 인간에게 순수하게 의리로 맺어진, 오래 가는 측근이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요즘 민주당 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분열을 보면 그 아닌 다른 사람이 당대표라도 뾰족 수는 없었을 것 같다. 163명 모두 각기 자신의 이익이 최우선인 집단을 누구라서 한 덩어리로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이재명이 대표라서 더 험악하고 살벌할 것 같기는 하다. 그는 당의 공동체 구성원의 양보를 요구하거나 유도하면 내일 더 큰 이익으로 보상한다는 믿음을 주고 실제로 보상하기 위해 고심하는 리더와는 거리가 매우 멀어 보인다.
이재명 피습의 전모는 좀 더 수사가 진전되어야 알 수 있겠지만 그 피습을 정교하게 기획된 위장 가해로 볼 정황도 상당하다. 짚어보자면 1) 당일의 영상이 명백히 보여주듯 상처에서 피가 별로 나지 않았으니, 상당한 무술실력이 있는 가격범이 일부러 얕은 상처만 낼 정도의 세기로 가격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가격 직후에 지혈을 위해 누군가가(그런 사고를 예상하고 지참한?) 거즈로 상처를 눌렀지만 거즈도 많이 젖지 않았다. 2) 피습당일에 입었던 이재명의 와이셔츠는 이재명의 비서실 사람이 경찰에게 버려도 된다고 해서 병원 측이 버렸는데 후에 언론, 유튜브 등에서 출혈 기타 이슈가 제기되니 이재명 측이 경찰에 와이셔츠의 행방을 묻고, 경찰은 병원 측을 압박해서 ‘그’ 와이셔츠를 사건발생 일주일 후에 의료폐기물 더미에서 찾아냈다는데, 원래 흰색 또는 거의 흰색이던 그 와이셔츠는 놀랍게도 (이재명의 피로 물들어서?) 완전히 검붉게 염색이 되어 있었다. 흰 와이셔츠가 완전히 검붉게 물들려면 피가 몇 리터나 흘렀을지, 그만큼 출혈이 있었다면 생명유지를 위해 수혈을 몇 시간이나 했어야 할텐데 이제껏 이재명이 부산대외상센터에서나 서울대병원에서나 수혈을 받았다는 보도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 와이셔츠가 피습 당일 이재명이 입었던 셔츠라는 증거는 전무하다. 그 두 개가 같은 셔츠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셔츠의 사이즈, 직물의 제조사, 기성복제작사, 셔츠에 물든 혈액의 유전자 등에 대한 면밀한 분석, 검토가 있어야 한다.
3) 그리고 이재명은 지난 1월 12일에는 상처부위에 상당히 큰 일회용밴드를 붙이고 카메라 앞에 나타났는데 밴드는 가로로 붙어있었다. 그러나 그 후 일회용밴드를 뗀 모습을 보였을 때는 비스듬히 세로로 난 상처가 셔츠 깃 안쪽으로 보였다. 그리고 문재인의 양산 사저를 방문한 2월 4일에는 문재인에게 상처를 보여주면서 상처와 수술자국이 합쳐져서 십(十)자의 흉터가 남았다고 했다. 수술은 상처를 봉합한 것이 아니었는지? 어떻게 상처와 직각으로 수술을 할 수 있는지 이해불가하다.
이재명은 특정인이나 단체를 지목하지는 않으면서 사건의 배후에 음모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여당에는 정치생명을 완전히 내놓아야 할 그런 위험천만한 음모를 꾸밀 만한 인물도 없고 당 차원에서도 이득보다 부작용이 훨씬 심할 그런 어설픈 일을 꾸밀 만큼 어리석지도 않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 사건의 인물별 손익계산서는 어찌되는지 모르겠는데 2000만원의 국고손실만은 확실하다.
설날을 맞아서 이재명은 ‘최근에 생사의 문턱을 잠시 헤맸기 때문에’ 명절의 의미가 새삼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상상만 해도 두려움과 비애를 느끼는 모양인데 자신의 생명에 그토록 애착이 크다면 그와 연관되었기에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추도해야 되는 것 아닌가?
이재명이 올해 어느 곳이든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에서 명상도 하고 독서도 하면서 이처럼 덧없는 세상을 그처럼 무한히 분투하면서, 그처럼 막대한 공적자금 횡령 의혹을 받으면서, 그리고 그처럼 수많은 사람을 이용하고 버리면서 산 그의 삶의 궤적을 엄숙히 돌아보기 바란다. 그래서 ‘피습’에서 얻지 못한 깨달음을 얻어서 삶의 새로운 장(章)을 열어 갈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서지문 필자 주요 이력
▶이화여대 영문학과 학사 ▶미국 웨스트조지아대학 영문학 석사 ▶뉴욕 주립대학 영문학 박사 ▶1974년 이래 고려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