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라미란은 소시민 '덕희'가 겪는 보이스피싱 피해를 사실감 있게 표현하며 관객들을 영화 한가운데로 끌고 온다. 우리 이웃의 얼굴을 한 라미란은 아주 일상적인 면면부터 공포와 두려움까지 섬세하게 톺아내며 관객들의 몰입감을 높인다.
"영화를 보고 '코미디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무게감이 있었다'라고들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색다른 매력이 있다고 하시는데 저 역시도 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시민덕희'를 시작할 때 '덕희'라는 인물이 참 마음에 들었고 존경스러웠거든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거라 와닿는 게 (무게감이) 다르더라고요."
영화 '시민덕희'는 지난 2016년 보이스피싱 범죄의 피해자 김성자씨의 이야기를 극화했다. 실제 사건과 실제 인물을 극화하는 과정은 라미란에게 큰 책임감을 느끼게 했다.
영화를 준비하며 보이스피싱 피해 사례를 접한 라미란은 큰 충격에 빠졌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이 오히려 피해를 숨긴다"는 점이 가슴 아팠다는 부연이었다.
"보이스피싱 피해 사례들을 보았는데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말도 안 되는 일을 당했다'며 부끄러워하시고 창피해하시더라고요. 결국에는 숨어버리셔서 (피해가) 많이 드러나지도 않는 모양이었어요. 이 영화를 찍고 (피해자들에게) 꼭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요. '당신들이 바보 같아서 당한 게 아니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덕희'라는 인물을 단단하게 만들고 싶었다. 보이스피싱 범죄에 피해를 본 이들에 대한 일종의 응원이기도 했다.
"영화 말미 총책을 잡기 위해 맨몸으로 뛰어든 '덕희'의 모습을 찍고 가슴이 뭉클했어요. 엉망이 된 얼굴로 화장실을 빠져나오던 덕희가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있는 모습이 짜릿하더라고요. '내가 고개를 왜 숙여?' 자존감과 존엄성 그리고 스스로 창피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느껴졌어요. '덕희'에게도, 제게도 의미 깊고 짜릿한 장면이었죠."
영화 '시민덕희'는 여성들이 주체가 되고 이들이 똘똘 뭉쳐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작품이다. 박영주 감독을 필두로 라미란, 염혜란, 장윤주, 안은진 등 주요 배우들도 여성들로 꾸려졌다.
"'걸캅스'부터 '시민덕희'까지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작품에 많이 출연하게 됐네요. 하하. 사실 전 하늘하늘하고 가녀린 캐릭터를 맡고 싶은데 말이에요! 하하. 박영주 감독님도 저를 두고 '덕희'를 쓰셨다던데. 저에게 어떤 (주체적인) 에너지가 있고 그런 점들을 감독님들께서 봐주시는 게 아닐까요?"
현장 분위기는 그야말로 화기애애했다. 라미란은 박영주 감독을 두고 "소녀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처음엔 학생인 줄 알았어요. 어찌나 소녀 같은지. '현장을 끌고 가야 하는데 괜찮은 걸까?' 싶은 정도였어요. 하지만 현장을 겪어보니 역시 다르더라고요. 야무져요. 또 우리 현장에는 모난 사람이 없어서 화기애애하게 찍을 수 있었어요."
라미란은 영화 '시민덕희'를 찍으며 더욱 단단해졌다고 말했다. 극 중 '덕희'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하며 보다 더욱 강인해진 부분이 생겨났다는 부연이었다.
"스스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덕희'를 만나면서 놀랄 때가 많았어요. '내가 덕희라면 이렇게 해낼 수 있을까?' 자꾸 비겁해지더라고요. (실제 저라면) 울고, 좌절하고, 제보를 받더라도 경찰의 도움을 바랐을 거 같아요. 스스로 강인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도요!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덕희'가 그래서 더욱 존경스러웠던 거죠."
연기 경력으로는 남부럽지 않은 베테랑이지만 여전히 라미란은 작품과 캐릭터를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 그는 매 작품 "용기를 가지고 임한다"며 마음을 비우고 온전히 현장에서 영감을 채우려 한다고 설녕했다.
"현장에 가기 전까지는 고민이 엄청 많아요. 머리가 터질 지경이죠. 고민과 걱정이 너무 많으니까 오히려 현장에 가면 '아 모르겠다!'하고 모든 걸 내려놓게 되더라고요. 텅 비워놔요. '현장에서 채워야지' 그렇게 마음먹는 것도 저의 용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