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금싸라기 땅에 노인시설이 말이 됩니까?"
최근 여의도 시범아파트에 기부채납 시설로 '데이케어센터(치매노인 돌봄시설)'가 포함됐다는 사실이 퍼지면서 시범아파트 소유주들 사이에서 원성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기피시설 건립을 결사반대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단지 곳곳에 걸기 위해 수백만원이 모일 정도였다고 한다. 시범아파트의 한 소유주는 "데이케어센터가 들어오면 밤낮으로 치매환자와 그 가족들이 단지를 드나들어 우리 주민들이 위험에 노출될 수 있고, 시범 주민이 아닌 주변 동네 저소득층 주민들이 센터를 주로 이용하면서 단지 내 프라이빗한 공간이 침범당하지 않겠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밖에 소유주들은 밤늦은 시간대 환자들 사고로 구급차, 순찰차 등이 출동하며 소란이 발생할 수 있고, 환자들이 단지 내 시설에서 사고를 일으킬 경우 시범아파트 주민들이 관리 미비로 인한 손해배상을 떠안아야 할 것이라는 점 등을 들어 반대하고 있다.
한국자산신탁이 데이케어센터 계획을 철회하고 문화시설을 건립하겠다고 소유주들에게 전달했지만 서울시는 확정된 사항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노인 시설 외에 임대주택, 공공보행통로 등도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데 갈등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기부채납 시설로 분류된다. 지난해 여름 압구정 재건축 단지에서는 단지를 관통해 한강까지 연결되는 공공보행통로와 임대주택을 아예 빼놓은 설계 계획안이 제시돼 조합과 건축사무소가 서울시로부터 혼쭐이 났다. 압구정과 같은 부촌일수록 용적률과 맞바꾼 임대주택 건립을 두고 서울시와 조합이 충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갈등은 ‘사익’과 ‘공익’의 충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도 첨예하게 부딪힐 가능성이 높은 부분이기도 하다. 주민들로서는 프라이버시와 고급단지로서 재산권을 지키길 바라고, 서울시는 민간개발과 동시에 공공에 필요한 기반시설 등을 조성하기 위해 기부채납을 활용한다.
한강변 고급 주거단지로 조성될 한 정비사업장 조합 관계자는 "차라리 인센티브를 안 받고 임대주택을 안 들이고 싶은데, 그런 사례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한다고 하면 서울시에 찍히지(?) 않겠냐는 우려가 크다"며 "(기부채납 시설은) 조합원들이 이용하는 게 아니라 외부에서 이용하는 시설이 대다수인데 왜 결정권이 없는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에 서울시 관계자는 "공공기여는 서울시가 판단했을 때 해당 지역에 필요한 시설을 설치하는 것"이라며 "주민들 선호도가 낮은 시설이 들어온다고 이건 빼고 저걸로 해 달라는 건 공공기여 제도 운영 방침과 전혀 맞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데이케어센터 논란은 시범아파트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노령인구 증가로 노인시설이 늘어나게 되는 건 피할 수 없는 길이다. 단지 내 공원, 공공보행로, 임대주택 등도 마찬가지다. 공공에 필요한 시설을 짓는 것이므로 소유주들 입맛대로 기부채납 시설을 만들 순 없다는 게 서울시 원칙이다.
하지만 기부채납을 두고 서울시가 논란이 된 사업장에 강제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정비사업 단지를 대상으로 기부채납의 필요성과 기본 원칙을 제대로 설득하는 과정을 꾸준히 이어가야 한다. 서로의 입장 차를 소통을 통해 좁혀가면서 ‘충돌’과 ‘갈등’, ‘강제’가 아닌 좋은 선례들을 하나둘씩 만들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