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목 칼럼] 영어와 베트남어 …두 개의 날개를 달자

2024-02-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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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베트남을 말할 시간

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영어학과 교수
[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영어학과 교수]



우리가 386세대라고 부르는 지금의 50대와 60대들은 아마도 약칭 ‘보카(VOCA) 22000’이라는 영어책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아카데미 토플’이라는 책도 기억할는지 모르겠다. ‘보카 22000’이라는 책은 온라인 서점을 검색해 보니 요즘에도 팔린다. 아마 당시 대학생들은 영어 공부를 한다 치면 열에 아홉은 토플(TOEFL) 책과 약칭 ‘보카 책’을 공부했을 것이다. 이 ‘Vocabulary 22000’이라는 책은 영어 단어의 유래와 어근을 다루는데, 단어의 어원이 고대 그리스어인지 라틴어인지, 아니면 순수 게르만어인지, 하여튼 어원을 공부함으로써 단어를 쉽게 이해하고 암기하기 위한 책이었다. 가령 ‘scope’는 그리스어 ‘skopein(보다)’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tele’ 역시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접두어로 ‘멀리 떨어진’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telescope’는 멀리 보는 것이라 망원경이다. 또 ‘tele’에다 ‘소리’라는 ‘phone’을 붙이면 ‘telephone’, 멀리 가는 소리라서 ‘전화기’가 되고, ‘graph’는 ‘글자’이니 ‘telegraph’는 ‘멀리 가는 글자’라서 ‘전보’가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말이 나온다.
동아시아는 한자문화권이다. 한자문화권은 말 그대로 한자를 중심으로 한 문화권임과 동시에 유교문화권과 일치한다. 사람들은 한국, 중국, 일본을 일컬어 한자문화권이라고 하지만 여기에 베트남이 추가된다. 흔히 사람들은 베트남이 동남아시아에 위치해서 동남아시아권으로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언어와 문화, 그리고 문자를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베트남은 한국과 같이 분명 한자문화권이면서 유교문화권에 속하는 국가이다.
언어학에는 보존의 법칙이 있다. 다른 나라로 이동하여 전해진 것은 원래의 발음을 지키려고 한다. 중국 당나라 시대의 한자는 오늘날 한국어와 베트남어에서 대체로 유사한 발음을 지닌다. 그래서 한국어와 베트남어는 서로 비슷한 발음이 많아 배우기가 쉽다고 한다. 학생(學生)을 중국어로는 ‘쉐성’, 한국어로는 ‘학생’, 베트남어로는 ‘혹싱’이다. 학교, 문학, 공학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학(學)’은 베트남어 ‘trường học(학교)’ ‘văn học(문학)’ ‘cùng học(공학)’에 그대로 ‘학(學·học)’이 다 들어간다. ‘대학생’은 ‘생원(sinh viên·生員)’이다. ‘박사’는 ‘진사(進士·tiến sĩ)’이다. ‘서생원’ ‘맹진사’ 할 때의 바로 그 ‘생원’ ‘진사’이다. 놀랍고 신기할 따름이다. ‘인공지능(人工智能)’은 ‘지혜인조(智慧人造·trí tuệ nhân tạo)’라고 한다. ‘사람 인(人)’은 베트남어로 ‘nhân’이므로 ‘인류(人類)’는 ‘nhân loại’이다. 다시 인류의 ‘류(類·loại)’를 끌어와서 ‘종류(種類·chủng loại)’와 ‘유형(類型·loại hình)’이라는 단어도 쉽게 이해하고 암기하게 된다. 이는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의 어원에서 영어 단어의 의미를 유추하는 방식과 같은 원리이다. 이렇게 한국어와 베트남어의 발음변환 공식을 익히면 그냥 베트남어 단어들을 줍는다. 하나의 언어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음성, 음운, 어휘, 문법 등이라 어휘가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영어를 공부한 사람이면 베트남어 문법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한국어는 알타이어족에 속한다. 베트남어는 오스트로아시아어족에 속한다. 그리고 한국어는 교착어인 반면 베트남어는 고립어에 속한다. 서로 어족은 달리하지만 그 어휘 구성에 있어서 한국어나 베트남어는 한자 어휘와 단어들이 60~70%를 차지한다. 그래서 지구상에서 한국인들이 배우기에 쉬운 언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한국어는 장단의 언어이기도 하지만, 과거 한국어는 훈민정음에 성조를 나타내는 점들이 있어 성조어였음을 알 수 있고 오늘날 그 흔적은 경상도에 남아 있다. 한국어가 장단의 언어이지만 아마 성조의 특성도 있지 않을까 한다. 필자의 수업에서 경상도 출신 학생들과 경상도를 제외한 서울·경기·강원·충청·전라 지역 학생들에게 2e 내지 e2를 발음하라고 하면 이 둘의 발음을 달리 구별해서 성조를 실어서 발음하는 학생은 경상도 출신 학생들이다. 그래서 경상도 사람들은 베트남어를 배우는 데 성조의 어려움은 비교적 적다고 할 수 있다. 좌우지간, 그리스·로마에 바탕을 둔 어휘, 단어, 그리고 문화를 영어, 독일어 등 게르만어 계열과 스페인, 프랑스 등 로망스어 계열의 언어들이 공유하듯이,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한국어와 베트남어도 어휘, 단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한국인이 베트남어를 학습하거나 베트남인이 한국어를 학습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수 있다. 베트남어를 공부하는 데에는 한자를 암기할 필요가 없다. 베트남어에는 과거 한국이 이두를 사용한 것처럼 ‘쯔놈’이라는 문자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17세기 프랑스 선교사 알렉상드르 드 로드(Alexandre de Rhodes)가 로마자에 기반해서 문자 표기법을 정립하였다. 마치 한국의 세종대왕 같은 존재이다.
1980년대 후반 이후 베트남 정부가 개혁·개방을 위한 도이머이(Đổi Mới) 정책을 추진하여 경제 전반을 자본주의 기반 정책으로 고쳐나가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한국은 특히 경제, 무역, 투자 분야에서 베트남의 1위 외국직접투자국, 2위 공적개발원조(ODA) 후원국, 3대 무역국이다. 요즘 홈쇼핑에는 다양한 의류 제품 광고가 나온다. 제품이 좋아 보여 유심히 보면 베트남 제조라는 문구가 어김없이 보인다. 삼성전자는 베트남을 주요 제조 중심지로 집중 육성하였고, 베트남 수출에서 20%를 차지하는 베트남의 국민기업이 된 지 오래이다. 그리고 한국 내에도 사드 이후 중국인 유학생들이 물러난 그 자리를 베트남인 유학생들이 채우고 있다.
한국과 베트남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의 교류가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는 이때에 국내 대학에 베트남 및 베트남어 관련 전공의 공급이 매우 필요하다. 베트남 전역에 걸쳐 60여 개 대학 내 한국어과에서 2만5000여 명이 한국어를 전공하고 있다. 반면 국내 대학에 베트남 관련 학과는 대학원대학교에 1개, 서울·부산·충남 지역 등 4개 대학교에 개설되어 있다. 한 대학교에 200명을 잡아도 4개 대학이면 800명에 불과하다. 한국과 베트남 두 나라의 상대국 언어에 대한 열기는 심한 비대칭이다. 본디 대학은 학문의 중심으로서, 상아탑으로서 세속의 인기에 영합하지 않아야 하는 것도 사실이고, 그 속에서 다양한 전공은 살아 있는 생물처럼 사회의 필요와 문제 해결을 위한 알고리즘을 제공하기 위해 합종연횡하는 팔색조가 될 필요도 있다. 당장 베트남어, 베트남학과와 같은 전공을 개설하는 것은 어렵다 할지라도 요즘 대학에는 기존의 복수전공이나 부전공보다는 작지만 신축성 있는 ‘소단위 전공’이라는 것으로 대신하면 될 것이다. 언어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경제 등 베트남과 관련된 분과학도 제공하여 시대적인 필요에 부응하고 나아가 시대적인 흐름을 주도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주지하다시피 영어는 제1의 국제어로서 그 위치는 부동의 1위이다. 국제어로서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 필수 언어이다. 필자는 영어학과 교수이기도 하려니와 학생들에게 영어와 베트남어, 이렇게 두 개의 날개를 달아주고 싶다. 언어는 두 개, 경쟁력은 두 배 이상!



필자 주요 이력 

△부산대 번역학박사 △미국 University of Dayton School of Law 졸업  △대구가톨릭대학교 영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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