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해 세수 부족을 이유로 한국은행으로부터 빌려 간 누적 일시대출금 규모가 117조원대로 추산됐다. 이는 코로나19(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에 따른 재정 지출이 여느 때보다 컸던 2020년(103조원)보다도 큰 액수로 연간 기준 사상 최대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세수 펑크'에 따른 일시대출금 확대 가능성이 일찌감치 제기된 가운데 정부의 잦은 '마통(마이너스 통장)' 이용이 한은의 유동성 관리와 물가 정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지난 11일 정례회의에서 올해 대정부 일시대출금 한도를 지난해와 같은 50조원으로 의결하는 과정에서 일시대출 부대조건을 강화했다. 한은 차입에 앞서 재정증권(국채 등) 발행을 통해 조달하도록 적극 노력해야 한다는 기존 문구에 차입금 평잔이 재정증권 평잔을 상회하지 않을 것과 차입 시기와 규모, 기간 등에 대해 충분히 협의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특히 매주 차입·상환 규모와 기간을 점검한다는 내용도 포함해 실효성을 높였다.
한은이 이처럼 정부 자금 융통에 제동을 건 것은 일시대출금 남용에 대한 부작용을 걱정한 탓이다. 정부의 일시 차입은 결국 한은의 발권력을 통해 이뤄지는 것인 만큼 잦은 대출은 시장 유동성 확대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결국 긴축적 통화정책 유지로 물가를 안정화하겠다는 한은 목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 역시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일시차입금 제도는 단기 유동성을 조절할 때 효율적"이라서 "연속해서 빌리면 기조적으로 될 수 있다"고 문제 제기를 한 바 있다.
한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상향 중인 가계대출 증가세 역시 정부 상생금융 확대와 대출규제 완화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유동성 관리와 관련해 정부의 태도는 다소 무성의하기까지 하다. 결국 고물가·고금리 장기화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이제라도 심각성을 인지하고 세수 결손 최소화와 건전재정에 각별히 관심을 쏟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