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유족에 따르면, 김 전 아나운서실장은 이날 오후 1시께 작고했다.
고인은 1937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교사였던 부친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신문과 교과서를 낭독하며 자랐다. 부친이 중풍으로 쓰러진 뒤 담양농고를 졸업한 뒤 국민학교(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1963년 서울중앙방송국(KBS) 아나운서 시험에 합격했다.
고인은 입사 3년 차인 1965년부터 장기범(1927∼1988) KBS 방송과장의 지시로 TV가 도입되기 전 영향력이 가장 컸던 KBS 라디오 정오뉴스와 '대한뉴스' 진행을 맡았다. 고인은 1985년 부장으로 진급한 후부터 스스로 물러날 때까지 꼬박 20년간 뉴스에 등장했다.
1983년 10월 아웅산묘역 폭파사건 직후 희생자 시신이 김포공항에 도착했을 때 중계방송을 진행한 것도 고인이었고, 1988년 서울올림픽 행사 내레이션도 고인이 맡았다.
고인은 1988년 KBS 아나운서실장이 되자마자 아나운서실 칠판에 '아나운서의 탤런트화 - 변해야 산다!'고 썼다. 이후 1990년에 입사한 17기 김병찬, 손범수, 정은아 등 신입사원의 교육 방식을 바꿨다고 회상한 바 있다.
고인이 아나운서실장으로 있는 동안 1990년 김상준 아나운서의 공로로 KBS 한국어연구회가 세종문화상을 받았다. 또 서울에서 옌벤(延邊)과 헤이룽장(黑龍江)성 방송국 아나운서를 교육하기도 했다. 1994년 KBS를 떠난 고인은 1998년까지 불교방송에서 방송위원으로 일했다.
고인은 '세월이 흘러서 보니 방송은 무엇이던가요'라는 후배의 질문에 "노력이다. 사람이 방송이고 방송이 사람이다"며 "'내가 누군데, 이까짓 5분 뉴스…' 운운하는 사람은 좋은 방송을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일부러 멋 부리고 맛 내면 사람들이 금방 싫증낸다"며 "자연스럽게 해야 한다. 저는 뉴스건 내레이션이건 1분에 350∼370자 정도를 읽었다. 그게 제가 제 억양으로 숨차지 않고 자연스럽게 낭독할 수 있는 글자 수였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유족은 부인 이봉자씨와 2남2녀를 두고 있다. 각각 김지동(아들)·김수미(딸)·김경희(딸)·김태완(아들)씨다. 며느리로는 김해화씨, 사위로는 이택상씨 등이 있다. 빈소는 인하대병원 장례식장 3호실이며, 발인은 오는 17일 낮 12시다. 장지는 인천가족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