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영 칼럼] 대만 대선 결과…친미 vs 친중 구도에 휘말리지 말자

2024-01-14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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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


올해 지구촌 70여 개 국가에서 벌어지는 선거의 전초전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대만 총통 선거가 막을 내렸다. 치열한 3파전으로 치러진 이번 선거는 현 집권당인 민진당의 라이칭더(賴淸德) 후보가 40% 득표율로 총통에 당선됐다. 절치부심 8년 만에 정권 탈환을 노리던 국민당의 허우유이(候友宜) 후보는 33.5%로 2위를, 돌풍의 핵으로 민중당을 이끌면서 중도 실용노선을 표방했던 커원저(柯文哲) 후보는 26.5%로 3위에 그쳤다. 이로써 민진당은 대만이 직선제 선거를 채택한 이후 처음으로 12년 연속 집권에 성공하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이번 선거가 세계적 주목을 끈 이유는 대만 문제가 격화하는 미·중 관계의 핵심 의제로 떠오르면서 대만 내 반중과 친중 세력 간 대결로 각인됐기 때문이다. 또한 2000년 이후 8년씩 집권해 온 대만식 정권교체가 과연 이번에도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민주정치의 구현에 정상적 보통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는 민주정치의 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번 선거는 과거의 민진당 대 국민당 구도에서 벗어나 비록 개인적 성향이 강하지만 민중당이라는 새로운 정치 세력의 등장으로 삼파전으로 전개되는 초유의 선거이기도 했다.

민진당은 이번 선거를 중국에 맞서 대만을 수호해야 민주가 유지될 수 있다는 ‘항중보대(抗中保臺)'를 내세우면서 ‘민주와 독재’의 대항으로 규정했다. 국민당은 민진당 후보의 당선은 양안 긴장을 고조시켜 중국으로부터의 안전 확보나 향후 발전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전쟁과 평화’의 선택 선거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민중당은 상대적으로 양당 정치의 이념화를 극복하고자 실용주의 노선을 강조하는 중도 노선을 표방했다. 그러나 구체적 정책이 제시되지 않고 흠집 내기와 언쟁이 지속되자 선거는 지지자들만의 리그로 이어졌다.

라이 후보의 당선은 사실 예견된 결과였다. 집권당 프리미엄에 대항해 정권교체를 내세우면서 진행된 국민당과 민중당 간 후보 단일화 실패로 민진당이 고정표만으로도 승리하는 어부지리적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양당 정치 관점에서 대만은 민진당이 약 30%, 국민당이 약 25%의 확고한 정치적 지지층을 갖고 있다고 한다. 늘 45% 정도의 부동층을 대상으로 승부를 보던 선거 행태는 민중당 커원저 후보의 출현으로 새 국면을 맞았지만 신기하게도 라이 후보 30% 중반, 허우 후보 30% 초반, 커 후보 20% 후반의 지지율이 끝까지 이어졌다.

이는 민중당 커원저 후보의 약진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당초 커후보는 갈수록 동력을 상실해 투표 당일쯤 되면 지지율이 10% 중반대를 보일 것으로 예측됐다. 하지만 민진당과 국민당 후보가 더 이상 이슈를 만들지 못하고 이전투구성 비방전으로 선거전이 흘러가자 양당 정치에 염증을 느낀 중도 성향 지지자들이 오히려 더욱 결속했기 때문이다. 이는 사표(死票) 방지 심리를 기대하면서 이탈 중도표를 끌어들이려던 민진당과 국민당의 득표 전략에 차질을 안겨 줬다. 실제로 20~40대 젊은 유권자들은 커원저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이러한 결과를 앞두고 세 당의 분석은 제각각이다. 라이칭더 당선인은 국제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승리는 중국의 집요한 선거 간여와 간섭을 물리치고 대만을 지켜낸 것임을 강조했다. 대만의 안정을 강조했지만, 입법위원 선거에서 제1당을 뺏기는 아픔도 맛봤다. 국민당 허우 후보는 국민당이 얻은 정당 득표 수가 총통 후보 득표를 초과하자 전략 부재를 인정했다. 민중당 커원저는 대만에 민진당과 국민당만이 아닌 분명한 제3세력이 확고히 존재함을 증명했다면서 고무된 분위기다. 결국 대만 유권자들은 총통은 민진당, 의회는 국민당을 선택하고 민중당의 실용주의 노선을 지지하는 견제와 균형을 실천했다.

총통 선거와 입법위원 선거는 무사히 끝났지만 대만을 둘러싼 국내외 정세는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다. 중국은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만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민진당 후보가 다시 당선되자 말을 아끼고 있다. 중국과 대만 간에 대화와 협상의 채널이 단절되고 대만이 미국 편승 전략을 취하고 있는 상황은 양안 관계의 경색과 더불어 미·중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는 요인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대만 선거 결과를 보고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낸 것 역시 11월 대선을 앞두고 미·중 관계 관리를 의식한 발언이다.

반면 대만의 전략적 가치에 주목하는 미국과 달리 중국은 주권 보존과 대만 통일의 당위성을 역사 사명의 차원에서 인식한다. 이는 ‘그레이트 차이나’를 위한 중국 지도자의 핵심 덕목이기도 하다. 특히 대만의 독자성과 독립성에 있어 차이잉원 현 총통보다 급진적이어서 중국의 관점에서 보면 ‘트러블 메이커’인 라이칭더를 보는 중국의 시선은 매우 곱지 않다. ‘하나의 중국’ 자체를 부정하면서도 현상 유지를 언급하는 라이 당선인의 향후 행보, 특히 5월 20일 총통 취임사와 11월 미국 대선이 중국의 대 대만 정책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또 한 가지 문제는 대만 내부 정국의 불안정성이다. 라이칭더 총통은 40%에 불과한 득표율로 당선되었고, 의회 1당 지위를 잃었다. 국민당은 지난 회기보다 10석을 더 획득해 제1당이 되었고, 민중당은 지역선거에서는 당선자를 배출하지 못했지만 비례대표 8석을 얻어 분명한 캐스팅 보드가 되었다. 물론 민중당은 성향적으로 국민당보다는 민진당에 편향돼 실질적으로는 민중당과의 연대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지만, 입법원장을 국민당 의원이 맡는 상황에서 원활한 행정부와 입법부 간 정책 협력이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사실 대만 선거는 친중 대 친미 구도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국민당이 강조하는 친중도 ‘일국양제’는 분명히 반대하면서 협력 관계 구축을 통한 안정적 관계 유지를 강조하는 상대적 친중이다. 이유야 어찌 됐든 양안의 갈등 증폭은 미·중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또 북핵 위협에 노출된 한국에 미·중 관계의 악화는 반가운 일이 아니며, 그렇지 않아도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한·중 관계에도 긍정적이지 않다. 친미·친중 구도에 우리 스스로 휘말릴 필요는 전혀 없다. 그래서 양안 문제를 바라보는 객관적 인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강준영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대 교수 ▷대만국립정치대 동아연구소 중국 정치경제학 박사 ▷한중사회과학학회 명예회장 ▷HK+국가전략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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