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바햐흐로 '슈퍼 선거'의 해 …지정학적 쓰나미 공습 대비할 때

2024-01-0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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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출마 제동 걸린 트럼프 전 美 대통령
    워털루美아이오와주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공화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아이오와주 워털루에서 유세하고 있다 콜로라도주 대법원은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내란 선동 혐의를 인정해 주州의 공화당 대선 경선 투표용지에서 그를 제외하도록 명령하는 판결을 했다 202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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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털루[美아이오와주]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공화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2월 19일(현지시간) 아이오와주 워털루에서 유세하고 있다.






'폴리코노미'(politics+economy)

2024년은 지구촌 '슈퍼 선거'의 해이다. 당장 이번 달에만 방글라데시와 대만에서 선거가 있다. 다음 달에는 파키스탄과 인도네시아에서 총선과 대선이 실시된다. 3월에는 러시아 대선과 이란 총선이 있고 우리나라도 4월 10일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다. 곧바로 세계 1위 인구대국 인도의 총선이 이어진다. 빽빽한 선거 일정은 11월 5일의 미국 대선이라는 정점에 다다른다. 공화당은 오는 7월 중순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민주당은 8월 중순 일리오이주 시카고에서 각각 전당대회를 열고 당 대선 후보를 최종 선출한다. 예상대로 민주당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공화당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각각 후보로 확정된다면 2020년에 이어 두 사람의 '리턴 매치'가 열린다. 올 한해 동안 총선이나 대통령을 뽑는 전국 단위의 투표가 40여 개 국가에서 실시된다. 전례없이 연쇄적으로 실시되는 지구촌의 선거는 그 결과에 따라 세계 권력 지형도는 물론 외교·안보·무역 등 정책의 기조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의 수석애널리스트 제니퍼 웰치의 분석처럼 2024년은 "지정학적 관점에서 100년 만에 가장 역동적인 해"이다. 

지난해 3년 넘게 전 세계를 공포로 옭아 맨 팬데믹의 종식선언이 있었다. 하지만 국제 정세가 신냉전 체제로 재편되면서 군비경쟁과 지정학적 위험 요소가 확대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다음 달 24일이면 2년을 넘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완전히 격퇴할 때까지 전쟁을 이어갈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다.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중동의 위기까지 장기화 되면서 국제사회의 갈등과 충돌은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이 줄어들며 유럽의 전쟁은 기로에 서있다. 지난 3년간 인플레이션과 전쟁을 치른 세계 경제는 아직 정상궤도에 오르지 못한 가운데 미·중 무역 갈등이 심화되고 배타적 공급망 체제가 공고히 구축되고 있다. 이렇게 급변하는 환경에서 치러지게 되는 선거와 정치적 후폭풍은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더욱 키울 수밖에 없다. 올해는 정치가 경제를 지배하는 '폴리코노미'(politics+economy) 현상이 두드러진 한 해가 될 전망이다.  

선거 달력을 펼쳐보자. 우선 이번 달 7일 실시되는 방글라데시 총선은 올해 지구촌 첫 선거로 주목받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야당 정치인이 대거 투옥되고 반정부 시위가 유혈사태로 이어지면서 정국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제1야당 방글라데시민족주의당(BNP)의 선거 보이콧 선언으로 집권 아와미 연맹의 셰이크 하시나 총리의 재집권이 점쳐진다. 하시나 총리는 방글라데시 초대 대통령 세이크 무지부르 라흐만의 딸로 1990년대 한 차례 총리를 지냈고 2009년부터 다시 집권해 지금까지 19년째 집권하고 있다.  

1월 13일에는 양안(兩岸·중국과 대만)의 운명을 좌우할 대만 선거가 있다. 총통과 부총통, 그리고 의회인 입법원 위원들을 뽑는 선거가 같이 실시된다. 대만과의 일국양제 통일을 강조하는 중국과 대만의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는 미국과의 대리전이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는 집권당인 친미 성향 라이칭더(민진당)가 선두에 나서 친중 성향인 야권의 허우유이(국민당)의 추격을 뿌리치고 있다. 선거에서 누가 승리하느냐에 따라 향후 양안 관계는 물론 미·중 관계, 동북아 정세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민진당이 재집권에 성공한다면 중국은 군사력을 포함해 막강한 힘을 과시하는 방식으로 대만의 새 정부 길들이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2월에는 회교 국가인 파키스탄과 인도네시아에서 일주일 간격으로 선거가 실시된다. 파키스탄은 '크리켓 스타' 출신 야당 지도자인 임란 칸 전 총리가 지난해 5월 자산은닉 혐의로 투옥되고 이번 총선에 출마하지 못하면서 정국 불안이 커지고 있다. 2억여 명의  유권자가 있는 인도네시아는 지지도가 높은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3선 연임 제한으로 2월 14일 실시되는 대선에 출마를 못한다. 인도네시아는 1990년대 후반 수하르토 군사독재정권이 축출된 후 숱한 우여곡절을 넘기며 민주주의를 정착시켜 왔다. 이번 대선에서는 민주항쟁당의 간자르 프라노워 후보와 2014, 2019년 위도도 대통령과의 양자대결에서 연속 패배했던 프라보워 수비안토 국방장관이 접전을 벌이고 있다. 특이한 것은 위도도 대통령의 장남 기브란 하카부밍 라카가 수비안토 후보의 러닝 메이트로 출마한다. 조코위의 라이벌이었으나 국방장관에 임명되면서 파트너로 변한 프라보워 수비안토 후보는 수하르토 정권 시절의 인물이다. 인도네시아 민주화의 수혜자이자 상징적 인물인 조코위 대통령이 아들을 슬그머니 수비안토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들이밀었다 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푸틴과 모디 

3월의 러시아 대선도 국제정세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 2020년 개헌 국민투표로 ‘재집권 정당성’을 획득했다. 현재로서는 5번째 대통령 임기에 도전하는 푸틴의 6년 집권 연장이 당연시되는 분위기다. 그가 당선되어 그의 나이 78세가 되는 2030년까지 집권하면 과거 구 소련을 철권 통치했던 스탈린의 장기 집권 기록을 뛰어넘는다. 푸틴의 최대 정적으로 불리는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니발니는 투옥 중이다. 푸틴이 이번 선거에서 압도적 지지율로 당선 된다면 그는 과거 러시아 제국의 영광을 찾기 위한 국가재건 노력에 박차를 가하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의 정면대결을 불사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일각에서는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11월 미국 대선까지는 끌고 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란에서는 2020년 이후 4년 만인 3월 1일 총선이 실시된다. 야당 후보자 중 25% 이상이 이미 자격을 상실했고 많은 유권자가 투표를 보이콧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가장 인구가 많은 국가인 인도는 4월과 5월 한달 반 동안이나 기나긴 총선을 치른다. 지난 2014년 취임한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2019년 재선에 성공했다. 친기업 시장친화적인 정책과 미·중간 줄다리기 외교를 펼친 모디 정권의 인도는 지난 10년 경제규모가 세계 10위에서 5위로 올라섰다. 현재 국정 지지율이 70%를 넘는 그는 자신의 세 번째 임기 내에 독일과 일본을 제치고  세계 3위로 도약시킬 것이라며 표심을 겨냥하고 있다. 힌두국수주의 성향의 집권 인도인민당(BJP)은 지난달 치러진 지방선거 5개 주 가운데 3개 주에서 승리해 3연임을 노리는 모디 총리에게 청신호를 켜주었다. 

5월에는 아프리카 남아공의 선거가 치러진다.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인종 차별 정책) 종식 이후 민주화의 아버지인 넬슨 만델라가 몸담았던 ANC(아프리카민족회의)는 남아공을 30년 동안 집권해왔다. 그러나 장기집권에 대한 피로감과 최악의 경제난과 높은 실업률과 빈부격차로 ANC가 의석의 과반을 차지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ANC는 사상 최악의 전력난과 높은 실업률, 갈수록 커지는 빈부 격차 등으로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 올해 아프리카에서는 알제리, 튀니지, 가나, 르완다, 나미비아, 모잠비크, 세네갈, 토고, 남수단이 선거를 치른다.

6월이 되면 5년마다 실시되는 유럽의회 선거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처음 실시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피로감과 최근 유럽 극우정당의 약진 기조가 이번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다.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파 분위기가 강해질 경우 유럽 내 무역장벽은 확산될 전망이다. 선거 이후 유럽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과 러시아에 대한 제재, 이민 문제, 기후변화 정책과 대중 관계 등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을 받고 있다. 브렉시트 이후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영국은 늦어도 2025년 1월까지 총선을 치러야 하는데 올가을 총선이 유력해 보인다.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리시 수낵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과 비교해 야당인 노동당의 지지율이 20%p 정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난다. 브렉시트 이후 가중되고 있는 경제적 고통과 정치적 혼란에 지친 젊은 유권자들의 표심이 움직인 결과로 보인다. 수낵 총리는 상속세 폐지를 포함한 대규모 감면책을 고려하고 있다. 

지난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중남미는 올해 멕시코와 베네수엘라에서 선거가 실시된다. 인기가 높은 현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르도 멕시코 대통령은 연임 금지조항에 6월 2일의 대선에 출마를 할 수 없다. 멕시코시티 첫 여성 민선 시장으로  좌파 여당인 국가재건운동(모레나)의 대권 후보가 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이 멕시코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파 야당 연합체인 '광역전선' 후보도 여성이라 멕시코의 차기 대통령은 여성 대통령이 확실하다. 10월에는 베네수엘라 대선이 있다. 미국의 압박과 경제난 속에서도 10년 넘게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또 출마한다. 주요 야권 후보들의 출마가 봉쇄되어 그의 당선이 유력한 상황이다.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막지 못한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이 커지면서 올해 예정되지 않았던 선거가 치러질 수도 있다. 가까운 이웃 일본에서는 올해 집권여당 자민당의 총재선거에 따라 총리가 바뀔 수 있다. 올해 9월까지 임기인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최근 지지율이 급격히 하락하며 퇴진 위기에 몰린 상황이다. 일본과의 관계개선 그리고 한·미·일 3자 안보협력에 기초한 현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정책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주목이 된다. 무엇보다도 미 대선은 그 결과에 따라 미국의 정치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    

트럼프 리스크 

영국의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24년 대전망 보고서에서 세계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기는 ‘트럼프’의 재집권이 될 것이라고 했다. 현재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각종 범죄 혐의로 4건의 형사사건에 기소돼 있다. 11월까지 펼쳐지게 될 선거 기간 내내 ‘사법 리스크’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바이든 대 트럼프. 올해 미국 대선에서 이 구도를 또 보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전 세계는 ‘트럼프 집권 2기’가 몰고 올 정치적 경제적 지각변동의 리스크를 분석하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일방주의에 바이든 대통령이 다시 구축하고 있는 동맹 국가들과의 유대 관계는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 중국을 겨냥한 미국 주도의 경제협력체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나 안보체제인 오커스(AUKUS)는 유명무실해지고 ‘집단 안보’를 핵심으로 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미래도 불투명해진다. 또 바이든의 핵심 경제 정책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백지화 된다면 미국 내 투자를 늘려왔던 우리 기업들은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중국과의 경제적 충돌이 확대되고 보호주의 무역정책이 강화되어 글로벌 경제에도 큰 타격을 입히게 될 것이다. 트럼프의 재집권은 필연적으로 미국과 전 세계에 큰 혼란을 야기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안보도 위태롭게 된다. 유럽과 중동에서 발생한 두 개의 전쟁과 별도로 국지적 안보 불안은 다른 지역으로 전이될 수 있다. 특히 유사시 미국의 대만해협 수호를 위한 의지가 약화될 경우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불안은 심각한 수준으로 커질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올해 각종 세계 선거를 통해 나타날 세계 질서의 변화와 각국의 이해 관계를 면밀히 분석해 대한민국의 국제적 입지 강화와 리스크 관리에 큰 힘을 쏟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우리의 외교·안보·통상 전략을 여러가지 시나리오에 맞춰 일부 또는 전면 수정하는 것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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