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로앤피]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에게 검찰과 함께 ’저승사자’로 불린다. 공정거래법 관련 사건에 대해 공정위 고발이 있는 경우에만 검찰이 공소제기를 할 수 있는 전속고발권을 가진 데다 법 위반 적발시 막대한 과징금을 물릴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어서다. 공정위를 ‘경제 검찰’로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윤석열 정부 들어 한층 거세진 공정위 칼날을 피하기 위해선 더욱 촘촘한 제도 법령에 대한 사전 준비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2024년 새해를 앞두고 변경됐거나 시행을 앞둔 공정거래 관련 법안을 짚어본다.
공공분야 입찰 담합 모니터링 확대
이달 초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지난 21일부터 725개 기관이 공정위에 입찰 관련 정보를 제출해야 한다.종전에는 입찰 관련 자료를 공정위에 제출해야 하는 기관이 기존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공기업에 국한됐다. 하지만 시행령 개정으로 준정부기관과 기타공공기관, 지방공기업까지 공정위에 입찰자료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것으로 대상을 넓힌 것이다.
앞서 공정위는 입찰담합 근절을 2023년 역점 시책 중 하나라고 강조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입찰담합 행위를 제재해 왔다. 법조계는 내년에는 공공분야에서의 입찰담합에 대한 감시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가맹본부 법 위반 자진시정·조사 협력시 과징금 70% 감액
지난달 공정위 과징금 감경 상한을 70%로 확대하는 내용 등을 담은 가맹사업법 시행령 개정령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가맹사업법을 위반한 가맹본부가 법 위반행위를 자진 시정하고,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심의에 협력하면 과징금을 최대 70%까지 감경받을 수 있게 된다.종전에는 대리점 위반 사업자에 대해 과징금을 감경할 때 조사, 심의 협력 등 요건을 모두 충족해도 50%까지만 과징금 감경이 가능했다.
개정안에는 규제 완화의 일환으로 가맹본부가 가맹희망자에게 정보공개서를 문자, 카카오톡 등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법조계는 이번 법 개정으로 위법행위 자진 시정이 활성화돼 가맹점주가 신속히 구제받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도급대금 연동제 본격 시행
내년부터는 납품 대금 연동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지난 10월 도입된 납품 대금 연동제는 하도급 계약 기간 원재료의 가격이 변동할 경우 원도급자가 해당 변동분을 하도급자의 납품 단가에 반영해주는 게 핵심이다. 수탁기업이 수탁·위탁거래 계약을 한 뒤 원재료 가격이 올라 그로 인한 손실을 홀로 부담하고 공급망 불안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하도급계약에서 하도급대금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원재료가 있는 경우에는 원∙수급사업자 간 연동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다만 위탁기업이 소기업이거나 1억원 이하 소액계약, 90일 이내 단기계약은 연동제 적용에서 제외된다.
올해까지는 제도에 대한 교육·홍보와 함께 자진시정을 유도하는 계도기간으로, 2024년부터 본격 시행된다. 위탁기업이 연동에 관한 사항을 적지 않고 약정서를 발급했다가 적발되면 1000만원의 과태료와 제재 처분 종류에 따라 1.5∼3.1점의 벌점이 부과될 수 있다.
위탁기업이 연동제 적용을 부정한 방법으로 회피하는 탈법행위를 했다면 최대 5000만원의 과태료와 5.1점의 벌점을 받을 수 있다.
분쟁조정 사건 수소법원(受訴法院) 소송중지 도입
지난 8월 국회를 통과, 이달 21일부터 시행중인 ‘소비자기본법 및 약관규제법 개정안’도 주목해야 한다.개정안에는 수소(受訴)법원 소송 중지제도의 원활한 시행을 위해 구체적인 통지 절차가 마련됐다.
'수소법원 소송 중지'는 분쟁 조정과 소송 절차가 동시에 진행될 때 분쟁조정 결과가 있을 때까지 소송절차를 중지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기존에는 소송 제기 시 분쟁조정 절차를 중지하도록 하고 있어, 일방이 조정 의사는 여전히 있으나 소송이 제기된 경우에는 조정 절차를 통해 분쟁을 해결할 기회가 차단됐다.
하지만 향후에는 이러한 경우에도 조정으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생겨 분쟁조정 제도 이용이 더 활성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P) 법적 근거 마련
공정위의 공정거래 자율준수 문화 확산 시책 추진 및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ompliance Program, CP) 제도의 법적 근거가 마련돼 내년 시행된다.
CP는 2001년부터 민간 주도로 도입됐는데, 공정위는 CP 활성화 및 내실화를 위해 2006년 CP 등급평가 제도를 도입하고 우수평가 인센티브 제도를 운영해 왔다. 하지만 CP가 공정위 예규에 근거해 운영돼 온 탓에 CP 도입ㆍ운영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위한 유인책 마련과 제도 활성화에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지난 5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 공포 1년 후부터인 내년 시행되면서 공정위가 사업자들의 CP 운영상황을 평가하고, 그 결과 등에 따라 과징금 감경 등 유인을 부여하거나 지원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사업자들이 CP 제도를 이용할 유인이 더 높아진 셈이다.
백광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는 “최근 공정거래 사건과 관련한 검찰과 공정위 간 정보 공유 강화, 인적 교류 확대 등 업무 협력이 확대되고 있고, 검찰 자체 전담조직이 신설·확대되는 등 형사적 제재 기조는 내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공정거래 사건에서 법인 및 임·직원 기소 사례가 증가하고 있고, 법원에서 임직원에 대한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는데, 기업으로서는 공정거래 사건의 형사사건화에 대비한 전반적 대응이 더욱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