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학개론] 29년만에 상장사 간판 내리는 대양제지…주주 원성 잠 재울까

2023-12-20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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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골판지 원지 제조·판매 기업 대양제지가 결국 자진해서 시장을 떠나기로 결정했습니다. 지난 2020년 2월 주식 거래가 정지된 이후 2년 8개월 만인 올해 10월 중순 거래가 재개됐지만 결국 29년에 걸친 상장사 지위를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두고 주주들 사이에서는 이를 두고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대양제지는 시중 주식을 공개매수한 뒤 상장폐지에 나설 계획입니다. 공개매수 가격을 시장가 대비 할증해서 제시했다지만 주주들이 보기에는 염가 수준이라 불만이 나옵니다. 한마디로 공개매수가를 더 올려 달라는 거죠. 회사가 시간표로 내건 내년 1월19일까지 소액주주들의 지분을 다 사들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다트'에 게재된 대양제지의 공개매수 설명서에 따르면 지분 59.29%를 보유한 최대주주인 신대양제지는 주식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대양제지 주식 121만4727주(발행주식총수의 4.52%)를 공개매수하기로 했습니다.

지난달 대양제지가 금감원에 제출한 분기보고서에는 소액주주들이 총 121만4727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날부터 시작해 내년 1월19일까지 총 20거래일 동안 소액주주 보유 주식 전량을 사들이겠다는 것이죠.

대양제지는 공개매수 목적에 대해 '자발적 상장폐지'라고 밝혔습니다. 소액주주들로부터 잔여 주식을 취득해 자발적인 주식시장 퇴출 절차를 밟겠다는 것입니다. 기업들에게 있어 주식시장 진입 문턱은 상당히 높습니다. 유가증권시장(코스피) 뿐 아니라 아우 격인 코스닥시장 상장에도 오랜 시간을 할애해야 하죠. 

상장 준비 과정도 매우 복잡하고 한국거래소의 심사도 까다롭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이 상장을 하려는 이유는 분명하죠. 바로 '자금 조달'과 상장사라는 '간판'입니다. 코스피·코스닥 등 제도권 시장 내에 있어야 유상증자 같은 무이자 자금 수혈이 수월합니다.

이렇게 험난한 여정을 거쳐 주식시장에 입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상장사들은 자발적 상장폐지를 선택, 스스로 시장을 떠나는데요. 올해에는 오스템임플란트, SK렌터카가 대양제지에 앞서 동일한 의사결정을 내렸죠. 

대양제지의 이번 자진 상장폐지는 2020년 10월12일 안산공장에서 발생한 화재에 따른 것으로 분석됩니다. 회사 측에 따르면 당시 화재로 인해 소실된 생산시설 복구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추가 투자도 병행돼야 하지만 전방시장의 불확실성으로 집행 여부를 결정하기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회사는 공시를 통해 "공장 복구 후 생산이 재개되기까지 장기적인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향후 원지시장의 불확실성으로 대규모 복구투자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어 계속기업으로서의 불확실성이 높아짐에 따라 한국거래소로부터 상장폐지 실질 심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즉, 대양제지는 자발적으로 시장에서 나와 외부의 경영 간섭 없이 충분한 시간을 들여 생산시설들을 복구하고 이를 통해 회사의 지속가능성을 회복하겠다는 것입니다. 

최대주주인 신대양제지가 책정한 주당 인수 가격은 4300원. 이는 이사회 결의일 전일인 이달 18일 종가 4050원에서 6.17%를 할증한 가격입니다. 회사는 적당한 프리미엄을 포함시켰다고 하지만 주주들은 정당한 보상가가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공개매수에 응할 경우 거래가 장외에서 이뤄지게 되는 데 이 경우 각종 세금이 수반됩니다. 대표적으로 양도소득세가 22%의 세율로 적용됩니다. 보통 양도소득세는 대주주 요건에 해당하는 주주에게만 부과되지만 공개매수에서는 양도차익의 250만원을 초과한 모든 소득에 대해 적용됩니다. 

소액주주도 예외가 없죠. 만약 대양제지 주식을 매각해 350만원의 차익을 올렸다면 250만원을 뺀 100만원의 22%인 22만원을 과세당국에 내야합니다. 즉 투자자들이 손에 쥐는 돈은 328만원 정도입니다. 양도세에 비하면 미미하지만 거래가액의 0.35%도 증권거래세로 내야 합니다. 

공개매수 당사자인 신대양제지는 충분한 보상액이라고 판단해 4300원을 제시했지만 주주들 입장에서는 해당 가격이 세부담을 상쇄하면서 차익실현의 만족감까지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경우의 수는 두 가지입니다. 이달 18일 공시된 공개매수 설명서 상 당사자인 신대양제지와 특수관계자가 차지하는 지분율은 93.61%입니다. 코스닥시장에는 명확한 자진 상장폐지 기준 지분율이 없지만 유가증권시장 요건인 95%를 잣대로 삼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대양제지가 공개매수 마감일로 못 박은 내년 1월19일까지 1.39% 이상의 소액주주 지분을 확보하지 못 할 경우 또 다시 공개매수를 진행해야 합니다. 95% 이상을 모은다면 당연히 최대주주 의지대로 자진 상장폐지 수순을 밟을 수 있습니다. 

비슷한 사례로 지난 2010년 자발적 상장폐지를 선택한 의료용 진단시약업체인 에스디(SD) 공개매수건을 꼽을 수 있습니다. 당시 SD가 제시한 공개매수가 역시 주주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 두 차례의 공개매수 끝에 간신히 시장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대양제지는 이미 지난 2021년 2월 실시한 공개매수로 소액주주들의 빈축을 산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도 공개매수자가 신대양제지였는데 단순히 주권 매매 거래정지 전 거래일 종가인 3260원을 공개매수 가격으로 제시했기 때문이죠.

과연 대양제지가 이번 공개매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원활하게 시장에서 나갈 수 있을지 아니면 SD처럼 자진 상장폐지 목적 공개매수를 두 차례 진행할지 흥미로운 시선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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