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업계에 따르면 정신아 대표 내정자는 내년 3월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카카오의 신임 대표로 선임될 예정이다. 카카오에 여성 대표가 들어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카카오는 창립 이후 줄곧 창업자인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이 대표를 맡다가 2014년 다음과 합병한 이후에는 김 위원장과 개인적 인연이 있는 남성 경영인들을 그간 대표로 선임해 왔다. 현재 홍은택 대표도 마찬가지 사례다.
1975년생인 정신아(48) 내정자는 보스턴컨설팅그룹과 네이버 등을 거쳐 2014년 카카오벤처스 상무로 처음 카카오에 발을 들였다. 이후 2018년 카카오벤처스 대표직에 올라 5년여간 다양한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성장 등을 이끌어 왔다. 올해 3월 카카오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돼 이사회에 합류한 그는 9월부터는 카카오 계열사 경영전략을 조율·지원하는 CA협의체 사업 부문 총괄을 맡고 있다. 정보기술(IT) 생태계는 물론 카카오가 영위하는 사업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네이버에 이어 카카오가 현재 처한 위기를 헤쳐나갈 사령탑으로 상대적으로 젊은 여성 대표를 택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현재 네이버의 수장인 최수연(42) 대표는 1981년생이다. 지난 2022년 3월 네이버 내부의 고질적인 '직장 내 괴롭힘' 문제 등으로 대내외적인 비난을 받고 기업문화 변화에 대한 요구를 받던 시기 신임 대표로 선임된 바 있다.
당시 최수연 대표는 전임인 한성숙 대표에 이은 네이버의 두 번째 여성 대표라는 점, 1980년대생으로 젊은 나이라는 점, 네이버 외부에서도 오랫동안 사회 생활을 했다는 점 등이 강조돼 네이버의 '쇄신'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꼽혔다. 여기에 법무법인 율촌에서 M&A와 기업법 분야를 담당했고, 이후 네이버로 돌아와 글로벌사업지원부 책임리더를 맡은 경력으로 인해 투자를 통한 네이버의 미래 먹거리 마련에도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내년 3월 취임 2주년을 맞는 최 대표는 이러한 기대에 어느 정도 부합했다는 평가다. 취임 이후 임직원들과의 소통을 강화했고, 직장 내 괴롭힘 전담 기구도 내부에 설치했다. 또 직원들에게 친화적인 새로운 근무형식인 '커넥티드 워크'를 도입하고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경영적 측면에서도 올해 초 네이버 창사 최대 M&A인 포시마크 인수를 이끌었고, 제2사옥인 '1784'를 매개로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 등과 지속적으로 교류한 끝에 지난 10월 사우디에 1억달러(약 1350억원) 규모의 디지털 트윈 플랫폼 구축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생성 인공지능(AI) 시장에도 상대적으로 빠르게 진출하며 네이버의 성장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키웠다.
정 내정자가 앞으로 이끌어야 할 카카오의 현 상황 역시 녹록지 않다.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인위적인 '주가 부양'을 했다는 의혹으로 카카오의 주요 투자와 인수합병 등을 이끌어 온 배재현 투자총괄대표가 구속됐다. 복수 임원들의 도덕적 해이로 인한 구설수 속 김정호 CA협의체 경영총괄의 폭로로 카카오의 여러 내부 문제들이 외부에 드러났다. 여기에 주요 사업인 광고·커머스 등의 시장 위축 여파 속 영업이익도 전년 대비 둔화되는 흐름을 보였다. 신성장 동력으로 AI를 낙점했지만 해외 빅테크는 물론 네이버와 비교해서도 아직 보여준 것이 없다. 이렇듯 전체적으로 조직 자체가 흔들리고 분위기가 어수선한 상황에서 새로운 리더십을 통해 이를 수습하고 안정화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김범수 위원장은 쇄신을 통해 카카오가 처한 위기를 원활하게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기존 리더십과 차별화되는 새로움을 주면서도 역량까지 갖춘 인물을 내세워야 한다고 판단했고, 이에 카카오벤처스 등에서 장기간 경험을 쌓은 정 대표를 낙점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지난 12일 정신아 대표 내정 후 사내 공지에서 "시나(정 내정자 영어 이름)는 커머스·핀테크·인공지능(AI) 등 기술 중심의 투자를 성공적으로 진행하며 다양한 경험을 축적해 왔다"며 "이를 바탕으로 카카오의 내실을 다지면서도 AI 중심의 미래 성장동력 확보 또한 함께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간 계열사 '자율경영'을 보장하며 돈이 되는 사업이라면 어디든 뛰어들었던 카카오는 앞으로 기술 중심의 핵심 사업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 만큼 벤처캐피털 경험을 통해 IT업계 생태계 전반을 고루 들여다 보고 옥석을 꼼꼼하게 가려 온 정 내정자의 경험을 믿은 것으로 풀이된다. 정 내정자는 "사회의 기대와 눈높이에 맞출 수 있도록 성장만을 위한 자율경영이 아닌 적극적인 책임 경영을 실행하고, 미래 핵심사업 분야에 더욱 집중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