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거주 의무 폐지를 담은 주택법 개정안이 여야 간 이견으로 국회 임기 내 통과가 불투명하다. 실거주 의무 폐지가 무산되면 자금 조달 계획을 다시 짜야 하고 입주 후 최소 2년간 실거주를 해야 하는 만큼 당첨자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내년 초부터 개정안 적용 대상 단지가 줄줄이 나오는 가운데 법안 통과가 최종 무산되면 시장에 혼란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3일 국토교통부와 국회에 따르면 국토위 국토법안소위는 지난달 29일 '재건축초과이익환수에 대한 법률'(재초환법) 개정안과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1기 신도시 특별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지만 실거주 의무 폐지를 담은 주택법 개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실거주 의무를 적용받는 아파트는 총 66개 단지, 4만3000여 가구에 달한다. 그러나 이들 단지는 실거주 의무 폐지 법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분양권을 팔더라도 실거주를 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현행법상 2021년 2월 19일 이후 분양된 수도권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 일반분양 청약에 당첨되면 최초 입주일로부터 2~5년간 실거주해야 한다. 그전에 전세를 놓아 잔금을 치르거나 집을 팔면 최대 징역 1년 혹은 1000만원 벌금 처분을 받을 수 있다.
당장 △서울 강동구 e편한세상 강일 어반브릿지 △강동구 강동헤리티지 자이 △은평구 센트레빌아스테리움시그니처 등이 내년부터 차례로 입주를 앞두고 있으나 실거주 의무가 걸려 있어 분양권 거래는 물론 전세 매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 또 이달부터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 △성북구 장위자이레디언트 등도 전매제한이 풀리지만 실거주는 그대로 해야 한다.
문제는 연내에 남은 소위 일정이 오는 6일 한 차례뿐이라는 점이다. 실거주 의무 폐지 법안이 끝내 처리되지 못하면 내년 5월 국회 회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된다.
국회 통과가 최종 무산되면 당장 청약 당첨자들은 자금 조달에 비상이 걸릴 전망이다. 대개 자금 여력이 크지 않은 당첨자들은 새로 입주할 아파트를 전세로 주고 그 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르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실거주를 하게 되면 대출 등 자금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한다.
분양·입주권 시장도 위축될 전망이다. 실거주 의무 기간을 채우지 않으면 사실상 전매가 불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3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6월 88건에 달하던 서울 아파트 분양권·입주권 전매 건수는 10월 19건, 12월 12건까지 쪼그라들었다.
업계에서는 실거주 의무 제도가 적용되는 아파트 입주가 코앞으로 다가온 만큼 최종 무산 땐 시장에 혼란이 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미 법안 통과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하면서 입주권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중순 올림픽파크 포레온 전용 84㎡A(29층) 입주권은 17억9490만원에 매매됐다. 같은 타입 21층이 10월 초 19억5405만원에 팔렸던 것에 비하면 1억5000만원 가까이 하락한 것이다. 앞서 올림픽파크 포레온 84㎡A 입주권 매매가는 △지난 7월 33층이 18억3000만여 원에 매매된 이후 △8월 18억9000만원(24층) △10월 19억5000만원으로 상승세를 보였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실거주 의무 폐지가 무산되면 시장에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막기 위한 절충안, 추가 대책 등 정부와 여당의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