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와 아프리카 산유국들이 원유 감산을 둘러싸고 불협화음을 빚고 있다. 국제 유가 사수에 사활을 걸며 올해 감산을 주도한 사우디는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 회원국들과 부담 분산을 원하는 반면 앙골라와 나이지리아 등 일부 회원국들은 생산 할당량에 불만을 제기하고 나섰다.
22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23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OPEC+는 이날 성명을 내고 OPEC+ 장관급 회의를 애초 예정됐던 26일에서 오는 30일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이 회의는 내년 OPEC+의 원유 생산량을 확정 짓는 자리여서 세계 금융 및 원자재 시장의 관심이 크다.
시장은 OPEC+가 유가 하락을 막기 위해 전 기구 차원에서 내년 감산 규모를 크게 늘릴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사우디와 러시아가 각각 하루 100만, 30만 배럴의 자발적인 추가 감산을 통해 유가를 간신히 지지한 만큼, 내년부터는 회원국 전반이 감산 부담을 나눌 것이란 관측이었다.
그러나 회의 연기 소식에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장중 5% 넘게 폭락한 배럴당 73.79달러까지 밀리는 등 출렁였다. WTI 가격은 장중 낙폭을 크게 줄여 0.86% 밀린 배럴당 77.10달러에 마감했지만, OPEC+가 감산 결의에 실패한다면 유가는 바닥을 칠 것이란 비관론이 증폭됐다.
사우디와 아프리카 회원국 간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6월 사우디는 앙골라, 콩고 등이 2024년 감산 목표를 수용하도록 압박했고, 이들은 새 할당량을 묵인했다. 그러나 사우디 등 일부 회원국이 추가 감산 카드를 꺼내면서 갈등이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지난 6월 생산 여력이 있는 아랍에미리트(UAE)의 할당량은 올해 하루 294만 배럴에서 내년 308만 배럴로 끌어 올렸는데, 이번 회의에서 UAE에 추가 증산분을 포기하라는 압박이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문제는 사실상 OPEC+를 주도하는 사우디가 국운을 건 네옴시티 건설과 월드컵 및 엑스포 유치 등에 성공하려면 고유가가 필수라는 점이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는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유지해야 사우디가 주요 프로젝트를 위한 비용을 원활히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전문가들은 OPEC+가 내년 대대적인 감산에 나서지 않는다면 국제 유가가 크게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의 활발한 원유 생산과 중국의 경기 둔화로 유가는 9월 최고치 대비 약 18% 하락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내년에 원유 시장이 공급 과잉에 진입할 것으로 봤다. 세계 원유 수요 감소, 미국과 가이아나의 생산량 증가, 미국 제재 완화에 따른 이란 공급 회복 등으로 공급이 수요를 웃돌 것이란 분석이다.
석유 중개업체 PVM의 존 에반스는 “유가를 지지하기 위해 OPEC+는 감산을 연장할 뿐만 아니라 감산량도 늘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OPEC이 원유 거래 관련 주요 기업들을 초대해서 진행한 비공개 회의에서도 유가 하락 전망이 대세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회의에 참여했던 오닉스 캐피털 그룹 측은 "시장 심리가 올해 상당 기간 동안 파편화되었으나, 연말을 앞두고는 최근 심리가 전체적으로 (유가) 약세 쪽으로 기우는 모습이다"라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