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 연미복에 흰색 나비넥타이를 맨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8시 40분쯤 찰스 3세와 나란히 만찬장인 버킹엄궁 볼룸(Ball Room)으로 걸어들어왔다. 검은색 원피스 차림의 김건희 여사, 붉은색 원피스를 입은 카밀라 왕비와 그 뒤엔 앤 공주를 비롯해 영국 왕실 인사들이 뒤따랐다.
찰스 3세는 한국어로 "영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만찬사를 시작했다. 이어 찰스 3세는 "예술적인 창조성이 영국 문화계에서 대한민국이 차지하는 위치를 가장 극적으로 바꾸어 놓지 않았나 사료된다"고 밝혔다.
이어 "영국에 대니 보일이 있다면 한국에는 봉준호가 있고, 제임스 본드에는 오징어 게임이 있으며, 비틀즈의 렛잇비에는 BTS의 다이나마이트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행히도 저는 세종대왕의 뒤를 따라 완전히 새로운 알파벳을 만들어 낼 수는 없을 것 같다"는 말도 했다.
찰스 3세는 "한국이 어리둥절할 정도로 빠른 변화를 겪고 있는 그 와중에도 자아감을 보존하고 있음은 한국의 해방 직전에 불행히도 작고하신 시인 윤동주가 예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며 윤동주의 '바람이 불어' 중 네 구절을 인용했다.
"While the wind keeps blowing, My feet stand upon a rock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 While the river keeps flowing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 My feet stand upon a hill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찰스 3세는 한국어로 "위하여"를 외치며 만찬사를 마쳤다.
윤 대통령은 "대관식 이후 영국 방문하는 최초의 국빈으로 저희 부부와 대표단을 초청해 주시고 이렇게 성대한 만찬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는 말로 만찬사를 시작했다.
윤 대통령은 영국이 한국전쟁 때 8만1000여 명을 파병한 점과 관련, "군인은 늘 자기가 싸웠던 곳을 생각한다. 죽으면 꼭 한국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면서 2019년 2월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영면한 고(故) 윌리엄 스피크먼 병장 등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영국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 피를 나눈 혈맹의 동지다. 우리가 미래를 위해 함께 하지 못할 일이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첨단 과학기술과 디지털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비틀즈와 퀸, 그리고 엘튼 존에 열광했다"며 "지금 해리포터는 수많은 한국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한국의 BTS와 영국의 콜드플레이가 함께 부른 'My Universe(마이 유니버스)'는 전 세계 청년들의 공감과 사랑을 받았다"며 "대한민국은 자유, 인권, 법치의 보편적 가치에 기반해 영국과 함께 전 세계의 자유 평화 번영 미래를 향해 굳건하게 협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영어로 "친구여, 영국이여, 당신은 절대 늙을 수 없다(To me, fair friend, the United Kingdom, you never can be old)"는 말로 건배사를 마쳤다.
이날 만찬 메뉴는 수란과 시금치 퓌레로 만든 타르트렛, 셀레리악 크로켓과 칼바도스 소스를 곁들인 꿩 가슴살, 샐러드, 망고 아이스크림이었다. 만찬 때 사용된 접시는 1761년 조지 3세 대관식 때 제작된 것으로 금과 은으로 도금됐고, 테두리는 조개껍데기와 구슬 무늬로 장식했다. 디저트 때 제공된 접시는 빅토리아 여왕 시절인 1877년에 만들었다.
만찬에는 한국 측에선 추경호 부총리 등 공식 수행원 10명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대기업 총수 뿐 아니라 중견 기업인들도 다수 참석했다. 특히 가수 블랙핑크(로제, 제니, 지수, 리사) 멤버 전원과 토트넘 홋스퍼 FC 위민에서 뛰는 조소현 선수, 영국 남자 유튜버로 유명한 올리버 켄달 등이 참석했다. 영국에선 윌리엄 왕세자 부부와 앤 공주 등 왕실 인사들 외에 리시 수낵 총리 부부 등 초청 인사 140여 명이 함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