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가자지구의 참극 …'평화'라는 미명 아래 외면해온 '폭력'

2023-11-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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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타 요시히로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오가타 요시히로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일본 언론에서는 요즘 팔레스타인의 정세가 연일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가자지구의 참극을 직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음악 축제를 습격한 하마스가 무고한 이들의 일상을 한순간에 빼앗는 영상들은 처참하고 충격적이어서 하마스의 잔인함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켰다.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일본과 한국 모두 팔레스타인 정세에 대한 시각은 비슷할 것이다. 중동지역의 사건을 충분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것 또한 일본과 한국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하마스의 첫 공격 이후 한 달여가 지나며 가자지구의 참상이 연일 전해지는 가운데, 특히 학교나 병원, 그리고 구급차에 대한 무차별 공격이 보도되면서 이스라엘의 책임을 묻는 보도도 늘어나 단순하지 않은 팔레스타인 정세를 더욱 신중하게 전달하려는 보도가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며칠간 일본 언론에서는 가자지구에서 ‘국경 없는 의사회’ 활동을 마치고 일본으로 귀국한 민간인에 대한 인터뷰를 다루거나 팔레스타인 언론인의 생생한 현지 보고를 전달하기도 했다. 가자지구에 직접 들어가지는 못하더라도, 예루살렘으로 들어가 현지 분위기와 함께 이스라엘 정부를 직접 인터뷰하는 등,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서 살아 있는 정보를 전달하려는 듯한 보도도 이어지고 있다. 가자지구의 사망자는 1만명을 넘었는데, 그중 4000명이 아이들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숫자나 “이스라엘이”, “하마스가”라고 하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국가나 조직이 주어가 된 정보뿐만 아니라, 거기에 사는 사람들과 전쟁에 의해 빼앗긴 그들의 일상에 대해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성 있는 보도를 하려는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이나 일본에 있는 우리에게 팔레스타인 정세가 먼 나라 이야기인 것은 틀림없는 현실이다. 팔레스타인 정세가 우리 일상에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는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참상에 대해 상상력을 동원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팔레스타인 자치구의 일부를 이루는 가자지구는 ‘천장 없는 감옥’이나 ‘지상 최대 감옥’으로도 불린다. ‘자치구’의 일부라고 하지만 육지와 바다, 그리고 하늘까지 이스라엘에 의해 봉쇄되고, 거대한 장벽으로 둘러싸인 채 감시되어 온 땅이기 때문이다. 그 역사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때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 등으로 박해받던 유대인들에 의해 이스라엘이 건국되자 주변 아랍 국가들의 반발이 일어났고, 팔레스타인 분쟁이 시작됐다. 그리고 1993년 팔레스타인 분쟁을 끝내기 위해 ‘오슬로 합의’가 이뤄지면서 팔레스타인 자치구가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이후 애초 이스라엘 건국 자체를 부당하다고 생각해 오슬로 합의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했던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자치구 선거를 통해 팔레스타인인들의 지지를 얻는다. 그러자 오슬로 합의를 맺을 당시 자치정부였던 파타와 하마스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고, 팔레스타인 자치구는 내전 상태에 돌입한다. 그 결과 지지를 얻은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자치구 중 가자지구만을 통치하는 형태가 되었고, 요르단강 서안지구는 자치정부인 파타가 통치를 계속하는 분단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파타 정부를 지지했고, 이스라엘과 긴밀한 관계인 미국은 하마스를 적대시해 온 것이다. 가자지구로 내몰린 하마스 입장에서는 애초 팔레스타인에 존재하지 않았던 이스라엘이 서방 국가들의 정치적 의도와 군사적 지원에 의해 갑자기 출현해 수많은 난민을 낳는 상황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 지극히 부당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하마스는 가자지구를 부당하게 지배하는 ‘무장단체’에 불과하고, 파타 정부는 교섭 상대가 될 수 있는 ‘온건파’인 것이다. 

미국이나 그를 따르는 한국이나 일본에서도 같은 인식으로 팔레스타인 정세를 바라보고 있다. 물론 이스라엘의 건국과 하마스의 가자지구 지배를 둘러싸고 여러 입장과 시각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복잡한 역사적 배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스라엘이라는 ‘국가’ 측의 일방적 시각에서만 팔레스타인 정세를 판단하고 있지 않은가. 사실 국제사회 또한 복잡한 팔레스타인 문제를 한쪽으로 기울어진 시각으로 단순화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팔레스타인인들의 증오를 낳았고, 그들의 증오는 반유대주의 폭력을 만들어냈으며, 그것이 오히려 팔레스타인에 대한 증오라는 화살이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참극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번 팔레스타인 사태를 접하면서 2021년에 출간된 <나머지의 목소리를 듣다(残余の声を聴く)>라는 일본 책을 다시 들었다. 이 책은 ‘오키나와(沖縄)·한국·팔레스타인’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일본 오키나와에 사는 문학연구자 오세정(呉世宗), 한국에 사는 역사사회학자 조경희(趙慶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 전문가 하야오 다카노리(早尾貴紀) 세 사람이 집필한 논고집이다. 원래는 한국에 대한 관심에서 입수한 책이었지만, 팔레스타인 사태를 보며 다시 이 책을 들고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금의 비극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고민했다. 

언뜻 보기에 아무런 관련이 없는 오키나와, 한국, 팔레스타인 세 곳이지만 각 지역이 안고 있는 문제를 파고들다 보면 공통된 문제를 찾을 수 있고, 다양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1948년에 건국된 이스라엘에서 ‘국민’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국민국가’를 둘러싼 내적 문제는 한국에서도 오키나와에서도 무관하지 않은 이야기다. 역시 1948년에 정부를 수립한 한국 또한 냉전 속 분단국가로 지금에 이르렀다. 1945년 패전으로 식민지를 잃은 일본은 주일미군기지의 대부분을 오키나와에 둠으로써 ‘평화국가’로 있을 수 있었고, 오키나와는 1972년까지 일본이 아닌 미국의 통치하에 있었다. 

가자지구를 둘러싼 폭력은 이스라엘 점령의 문제인 동시에 팔레스타인인들에 의한 ‘저항운동’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슬람에 의한 부당한 ‘테러행위’로만 해석하는 일방적인 여론을 주로 접한다. 이는 동아시아 식민주의 문제가 탈냉전의 시대임에도 냉전시대의 사고에 따라 ‘적’을 만들고, 폭력의 장치인 군사력을 정당화하는 것과 비슷한 구도라고 하겠다. 평택의 미군기지 확대와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그리고 오키나와 헤노코(辺野古)의 미군기지 이전 문제가 현지 사람들을 외면한 채 진행되었고, 기지 주변에서 일어난 불상사와 사건들이 은폐되고 정당화되어 온 한국과 일본의 역사이기도 하다. 팔레스타인 정세를 언론에서 말하는 외교 문제로만 치부해서는 안 되는 부분도 있음을 상기시켜줄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은 미국의 입장을 따르지만 이스라엘과의 관계가 깊은 서방 국가들과는 다소 다른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란이나 다른 아랍 국가들과도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언론에서 일본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몇몇 대학교와 연구기관 등에서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루는 긴급 학술회의 등을 개최하고 있고, 도쿄에 위치한 이스라엘 대사관 주변에서는 시민 등 약 1600명이 모여 가자지구 공격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내가 살고 있는 후쿠오카 등 일본 각지에서도 수백명이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보도를 통해 세계 상황도 엿볼 수 있는데,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도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가자지구 공격으로 인한 피해에 관심을 갖고 분노하며 울부짖고 있다. 동시에 대항하듯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집회도 적지 않게 열리고 있는 모양인데, 안타까운 것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에 촉발된 상호 증오가 팔레스타인에서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미국 시카고 근교에서 한 팔레스타인계 모자가 집주인 남자에게 습격당해 6세 소년이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범행 당시 남자는 “이슬람 신도는 죽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시위 행진이 한창일 때 발포 사건도 벌어졌다.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또 다른 집회에서는 유대계 남성이 습격당해 숨지는 사건도 벌어졌는데, 반유대주의 증오 범죄(hate crime)일 가능성이 지적되고 있다. 

곳곳에서 ‘반이슬람’, ‘반유대’의 증오가 분출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참사가 가자지구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문제는 역사적으로도 복잡하게 얽힌 차별과 편견의 문제이자 폭력의 문제다. 강대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질서라는 미명 아래 외면해 왔던 차별과 폭력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조장해 온 이 폭력과 증오의 문제를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 우리는 끊임 없이 고민해야 한다. 

팔레스타인 정세가 주목을 받는 가운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끝난 것이 아님에도 관련 보도는 보기 힘들어졌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강력 비판하던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가자지구를
공격하는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지지 입장을 밝혔다. 이를 두고 ‘이중 잣대’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국이나 일본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는 비판이다. 

세계 정세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명심해야 할 것이다. 연일 계속되는 보도를 보며 가슴 아파하면서도 멀리 떨어진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극을 막기 위해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하지만 세계 정세를 둘러싼 편향된 보도나 입장이 아닌 스스로 생각하는 자세와 최소한의 관심이라도 가지려는 노력은 필요하지 않을까?

 
오가타 요시히로(緒方義広) 주요 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박사  ▷전 홍익대 조교수 ▷전 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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