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그덕거리는 중국 경제가 국제 유가를 짓누르고 있다. 두 자릿수 성장세로 세계 원유 소비를 지탱했던 중국 경제의 추락은 원유 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 중국 경기둔화와 함께 미국의 원유 소비 감소, 지구 온난화 등이 중동 긴장발(發) 유가 급등 우려를 지웠다. 다만, 월가 기관들은 최근의 하락 폭이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경제 불확실성과 지정학적 긴장 등으로 인해 변동성이 커질 것이란 전망이다.
8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2월 인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장보다 2.04달러(2.64%) 하락한 배럴당 75.33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이날 종가는 지난 7월 17일 이후 근 4개월래 최저 수준이다. 브렌트유 선물은 2.54%(2.07달러) 하락한 배럴당 79.54달러에 마감했다. 두 벤치마크는 전날 4% 하락한 데 이어 이날도 큰 폭으로 가격이 밀렸다.
세계 최대 석유 소비국 중국의 경제가 개선될 조짐이 안 보이면서 수요 위축 우려가 커졌다. 중동 긴장이 아닌 중국의 경기침체가 유가의 방향성을 결정한 것이다. 중국의 10월 수출액이 전년 동월 대비 6.4% 쪼그라드는 등 6개월 연속 전년을 하회한 점이 결정타가 됐다. 이날 발표된 중국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도 전년 동월 대비 0.2% 하락한 가운데, 인플레이션이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디플레이션(경기 둔화 속 물가 하락) 우려를 키우고 있다.
피치 솔루션의 수석 애널리스트인 엠마 리차드는 “글로벌 원유 수요 성장 엔진으로써의 중국 입지가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며 향후 10년간 신흥 시장 석유 증가분에서 중국의 점유율은 기존 50%에서 15%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인도 점유율은 기존의 두 배인 24%로 껑충 뛸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의 원유 소비량이 줄어들 것이란 전망도 유가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올해 미국 내 총 원유 소비량이 하루 30만 배럴씩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하루 10만 배럴씩 증가할 것이란 기존 예상치를 뒤집은 것이다. 또한 EIA는 내년 1인당 휘발유 소비가 1% 감소해 20년 만에 최저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인플레이션 및 원격 근무, 자동차 연비 향상 등으로 휘발유 소비량이 줄어들 것이란 예측이다. 지난주 미국 원유 재고가 약 1200만 배럴 증가했다는 미국석유협회의 자료도 국제 유가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일각에서는 지구 온난화로 올겨울 에너지 소비량이 줄어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올해가 12만5000년 만에 가장 뜨거운 해가 될 것이란 전망 속에서 미국의 올겨울 북부 기온이 평균보다 따뜻할 것이란 관측이다.
월가 전망은 제각각이다. 바클레이스는 수요 전망이 불안정하고 미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점에 근거해 내년 브렌트유 선물 가격 전망치를 기존보다 4달러 낮춘 배럴당 93달러로 제시했다. 그러면서도 바클레이스는 “최근 수요 우려가 다시 나타났지만, 우리의 평가에 따르면 이는 잘못된 것일 수 있다”면서 글로벌 유가 급락이 지나친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S&P글로벌 코모디티 인사이츠는 브렌트유의 월 평균 가격이 10월 배럴당 93달러에서 내년 3월에는 배럴당 81달러로 하락할 것으로 제시했다. 다만, 이 애널리스트들은 “전쟁과 경제 불확실성으로 인해 변동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내년 1분기 이후 유가가 상승해 연간 평균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85달러가 될 것으로 분석했다.
반면 골드만삭스는 브렌트유 선물이 내년 6월까지 배럴당 100달러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