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을 향한 베트남의 '꺾이지 않는 의지'

2023-11-08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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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 삼성 등 세계 유수 기업들 베트남에 투자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베트남과 반도체 협력 추진키로

생산보다는 패키징, 테스트 등 부가가치 낮은 부분 비중 높아

반도체 전문 인력 육성도 시급

호찌민시 국립대학교 직속 회로설계연구 및 교육센터 연구실 사진베트남통신사
호찌민시 국립대학교 직속 회로설계연구 및 교육센터 연구실 [사진=베트남통신사]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는 세계 경제에서 그 가치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반도체는 IT 및 전자, 통신, 자율주행 자동차 등 각 첨단 산업에 없어서는 안 되는 구성 요소로 전 세계 산업을 좌우하다시피 하고 있다.

지난 8월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커스텀 마켓 인사이트가 발표한 시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규모는 2022년 약 5800억 달러(약 756조원)로 평가되며, 2023년에는 6345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2032년에는 1조1240억 달러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베트남 내 반도체 산업은 아직 한국, 대만 등과 같은 주요 반도체 강국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빠르게 성장하는 반도체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공급망에서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베트남의 대 미국 반도체 제품 수출액은 2022년 2월 3억1270만 달러이던 것이 1년 후인 올해 2월에는 5억6250만 달러로 75%나 급증했다. 블룸버그는 이러한 인상적인 수치를 인용해 베트남을 반도체 분야에서 아시아 내 가장 많이 성장하는 시장 중 하나로 평가했다.

지난 9월 조 바이든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하고 양국 간 외교 관계를 포괄적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격상한 가운데 미국은 베트남이 반도체 산업의 핵심 국가가 될 수 있는 큰 잠재력을 인식했다. 이에 따라 베트남과 미국은 반도체 분야 인적 자원 개발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 계획에는 미국 정부가 베트남 정부와 민간 부문의 향후 지원과 함께 200만 달러 상당의 초기 보조금을 제공하는 방안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베트남이 수천억 달러 규모의 세계 반도체 시장에 내디딘 첫 걸음이라는 평가이다.
 

베트남 박장성 하나마이크론비나 생산공장 내부 사진베트남통신사
베트남 박장성 하나마이크론비나 생산공장 내부 [사진=베트남통신사]

 

베트남, 반도체 사업에 수십억 달러 유치

베트남의 반도체 산업은 수억에서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공장 건설, 생산 확대, 조립 등 프로젝트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인텔, 삼성 등 세계 유수 기업들의 프로젝트를 통해 이목을 끌면서 많은 반도체 제조업체들의 목적지로 떠오르고 있다. 

대표적으로 인텔의 경우, 현재 호찌민시 하이테크단지에 세계 최대 패키징 및 테스트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이 공장은 전 세계 인텔 제품의 50% 이상을 처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 역시 베트남에서 반도체 부품을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삼성전기는 베트남 타이응우옌 공장에서 2023년 말부터 관련 제품을 양산할 예정이다. 이밖에도 인피니온, 한미반도체, 하나마이크론비나, 앰코테크놀로지 등 많은 반도체 기업들이 베트남에 투자를 발표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을 고려할 때 베트남이 차지하는 부분은 주로 패키징으로, 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반도체 공정은 크게 설계, 제조, 패키징의 단계를 거친다. 

패키징은 공급망에서 가장 낮은 가치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이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에 따르면 패키징은 반도체 가치의 약 6%를 차지하고, 설계는 53% 이상, 생산(파운드리)은 24%를 차지한다.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 리서치의 이반 람(Ivan Lam) 애널리스트는 베트남 매체 Vn익스프레스에 "베트남은 현재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주로 조립, 테스트 및 패키징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월 11일 열린 베트남-미국 투자 회의에 참석한 조 바이든 대통령과 팜 민 찐 총리 사진베트남통신사
지난 9월 11일 열린 베트남·미국 투자 회의에 참석한 조 바이든 대통령과 팜 민 찐 총리 [사진=베트남통신사]

 

베트남 반도체 산업, 40 이상의 우여곡절

이반 람 애널리스트는 베트남의 단점 중 하나는 자체 반도체를 생산할 수 없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베트남에도 반도체 공장이 있었다. 1979년에 설립된 베트남 반도체 공장(Z181 공장)이 그것이다. 이 공장은 재료 연구 및 생산 장비, 트랜지스터, 다이오드, 사이리스터, 반도체 센서 및 기타 반도체 부품 등을 생산했다. 

1979~1989년 기간 중 Z181 공장의 일부 제품은 체코슬로바키아, 소련,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로 수출됐다. 그러나 전 세계적인 반도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Z181 공장의 전자 반도체 소재 및 부품에 대한 연구 및 생산이 중단됐다.

이후 베트남 반도체 산업은 20세기 후반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 양성 기관이 다수 등장하면서 회복 '조짐'을 보였다. 2000년대 초반에는 외국 기업 RVC, 엑티브 세미(Active Semi) 등이 베트남에 반도체 설계 사무소를 개설하고, 호찌민 국립대학교 직속 회로 설계 연구 및 교육 센터(ICDREC)가 탄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에는 세계 경제 위기를 맞아 다시 반도체 산업이 둔화됐다. 이후 2013~2014년에 반도체 산업이 다시 회복하며 비엣텔(Viettel), FPT 등 다수의 베트남 첨단 기업들이 참여했다.

베트남 반도체 커뮤니티 통계에 따르면 베트남에는 현재 5500명가량의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가 있다. 베트남 국가과학기술정보포털에 따르면 2022년 말까지 베트남은 반도체 산업 관련 국제 출판물 1072개, 마이크로칩 관련 출판물 635개를 보유하고 있다. 호찌민시 인텔 패키징 및 테스트 공장에서는 30억개 이상의 반도체를 출하한다.
 

FPT 세미컨덕터 쩐 당 호아 회장 사진베트남통신사
FPT 세미컨덕터 쩐 당 호아 회장 [사진=베트남통신사]
 
베트남의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진출 전략 

인공지능(AI)이 주도하는 4차 산업 시대를 맞아 반도체 산업은 엄청난 잠재력으로 인해 많은 국가들이 전략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분석에 따르면 어느 나라도 반도체 생산의 전 과정을 거쳐 자체적으로 반도체 칩을 생산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반도체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예시이다. 

기술 컨설팅 회사 액센츄어(Accenture)에 따르면, 칩을 구성하는 구성 요소는 완제품이 소비자에게 전달되기 전 국가 간 약 70회의 이동을 거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베트남과 같은 새로운 시장이 글로벌 공급망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로 간주되지만 5000명이 조금 넘는 엔지니어 인력을 보유한 베트남은 거대한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서의 입지는 여전히 작은 수준이다.

따라서 베트남은 앞으로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해 △생산 확대 △설계 및 패키징 발전 등 두 가지 길이 있다. 이 중 베트남은 초기 비용이 많이 들고 경쟁이 치열한 첫 번째 길보다는 두 번째 길을 우선시하고 있다.

지난 9월 열린 하노이 국립대학교 및 호찌민시 국립대학교 간 실무회의에서 응우옌 마인 훙(Nguyen Manh Hung) 정보통신부 장관은 반도체 산업 발전에 관한 국가 전략을 정부에 제출할 준비를 하고 있다며, "베트남인이 반도체 설계에 매우 적합하며 이는 핵심 강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산업 발전을 위해 투자해야 할 중요한 인프라는 선도적인 테스트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20년간 베트남 반도체 시장을 모니터링해 온 코아시아세미베트남(CoAsia Semi Vietnam)의 응우옌 타인 옌(Nguyen Thanh Yen) 사장은 설계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옌 사장은 "5000명의 엔지니어 수는 많지도 적지도 않다"며 "해당 인력은 차세대 엔지니어를 위한 직업훈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반도체 산업에서 설계 엔지니어는 전체 설계 과정을 이해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베트남이 해당 인력을 강력하게 발전시키는 데 집중한다면 앞으로 5~10년 안에 분명히 달콤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응우옌 타인 옌 사장은 “제조생산이라고 하면 품질과 가격 경쟁이 극도로 치열한 대량생산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라며 “사전 준비 기간이 없으면 매우 위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요 과제는 ‘인적자원’

전문가들은 베트남 반도체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으로 인력 문제를 꼽았다. 인텔 베트남의 김 후엇 우이(Kim Huat Ooi) 총괄 매니저는 “패키징과 테스트의 역할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며 “반도체 생산의 자립은 중요한 목표이지만 인력을 많이 소모한다”고 말했다.

훙 정보통신부 장관 역시 베트남 반도체 산업이 매년 1만명의 엔지니어가 필요하지만 현재 인력은 20% 미만 수준으로 충족하고 있다는 통계를 인용했다. 실제로 베트남 반도체 커뮤니티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베트남에서 해당 분야의 인력은 연간 약 500명 정도만 증가하고 있다. 

또한 옌 사장은 베트남 국내 기술 인력들은 주로 외국 기업을 위해 일하고 있으며, 베트남 엔지니어들은 특히 각 단계에서는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는 반면, 전체를 총괄할 수준의 엔지니어는 없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덧붙여, 반도체 분야는 상당히 '보수적'이고 경험을 중요시한다는 특징이 있다. 옌 사장은 IT 업계를 예로 들면서, 소프트웨어에서 오류가 발생하면 신속하게 수정할 수 있지만, 칩 설계에서는 오류로 인해 수백만 달러의 비용이 들고 수정 시간은 수년이 걸릴 수 있다며, 막 졸업한 기술자들은 경험이 없고, 핵심 업무에서 신뢰를 받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인적 자원 부족은 신규 인력 부족이 아니라 기업이 졸업생 채용을 확대할 수 있도록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해외에서 일하는 전문가를 유치하기 위해 업계 인력에 대한 세금 감면 방안도 제안했다. 향후 5~7년 동안 베트남이 시장에 진출하려면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베트남은 Viettel 및 FPT와 같은 일부 국내 기업이 R&D를 수행하고 자체 칩셋을 개발했지만 여전히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다른 동남아 국가들에 비해서도 뒤떨어져 있다.

이반 람 애널리스트는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교육, 산업 지원, 국제협력, 지적재산권 축적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중요하다”며 “베트남 정부의 노력과 현지 기업의 참여,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협력이 이루어진다면 베트남 반도체 산업은 장기적 발전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꺾이지 않는 의지 

이와 같이 베트남은 여러 문제를 안고 있지만 그럼에도 반도체 산업 발전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 주요 IT업체인 FPT IS 회장 겸 FPT 세미컨덕터의 쩐 당 호아 회장은 베트남이 반도체 공급망에서 입지를 강화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동남아시아의 실리콘밸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베트남이 앞으로 추진할 주요 분야는 △인적 자원 개발 △설계 역량 개발 및 글로벌 공급망 참여 △반도체 공장 유치 및 대중적 칩 생산에 중점 △운송 및 창고 중심지로 발전해 아태 지역의 유통 네트워크 형성 등이라고 설명했다.

호아 회장은 반도체 산업을 위한 약 3만~5만명의 인력을 양성하려는 베트남 정부의 목표와 관련하여 FPT는 1만명의 반도체 엔지니어를 양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FPT 세미컨덕터는 외국 학교들과 협력하여 반도체 산업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베트남에 도입할 예정이다.

또한 지난 9월 미국 주요 반도체 소프트웨어업체 시놉시스는 베트남 반도체 설계 인재 양성을 위해 계획투자부 산하 국가혁신센터(NIC)와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시놉시스는 커리큘럼, 교육 자원 및 교육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포함한 교육 라이선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또한 △시뮬레이션 시설 투자 △정보기술 프로토타이핑 △반도체 설계 인큐베이션 센터 설립 등을 지원할 방침이다. 

뿐만 아니라 9월 개최된 ‘베트남과 동남아시아 반도체 산업 생태계 연결’ 베트남 비즈니스 서밋에서 베트남은 현재 2030년까지 반도체 산업 발전 전략 초안과 2035년 비전을 수립하고 있다고 밝혔다. 응우옌 후이 중 정보통신부 차관은 “해당 전략은 전자 산업 전반, 특히 반도체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비전을 제시하고 결단력과 목표, 로드맵, 방안, 특별 우대 정책 등을 확정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는 베트남이 우선 동남아 지역 반도체 생태계에 참여해 글로벌 반도체 기업을 베트남에서 생산, 연구 및 개발하도록 유치하는 것이 핵심 목표이다.

중 차관은 세계 반도체 산업의 큰 변화에 직면해 동남아 국가와 베트남이 글로벌 공급망에 참여하기 위해 신속하게 적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아세안 국가들이 전반적으로 조율된 실행 계획을 갖고, 공급망에 참여할 단계를 신속하게 결정하며, 아세안 국가 공동체의 강점을 명확하게 인식하는 등 여러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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