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과 개방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황허와 양쯔강은 되돌아가지 않는다.”
리커창 전 중국 총리는 지난해 8월 중국 경제에 변혁을 몰고 온 덩샤오핑의 동상에 헌화하면서 이처럼 다짐했다. 27일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은 리 전 총리의 사망은 중국 자유주의 경제 개혁 시대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잇달아 보도했다.
로이터는 리 전 총리를 '중국의 개혁파 스타'라고 칭하면서, 그가 은퇴 7개월 만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일부 중국 지식인과 자유주의 엘리트들은 위챗 채널 등에서 중국의 자유주의 경제 개혁의 신호탄이 사망한 것에 충격을 표했다”며 “일부는 리 전 총리의 죽음은 한 시대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말했다”고 짚었다.
리 전 총리는 2013년부터 10년 간 시 주석 밑에서 일했으며 올해 3월 퇴임했다. 리 전 총리는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원자바오 전 총리 아래에서 국무원 부총리를 지내면서 경제 발전과 거시경제 관리를 감독했다. 리 전 총리는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이 선호하는 후계자였으나,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2012년 시진핑 현 국가주석을 주석으로 선택했다.
리 전 총리는 실용적인 경제정책을 펼쳤다. 빈부 격차를 줄이고 저가 주택을 공급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경제정책을 통해 소외계층을 위한 리더로서 명성을 쌓았다. 리 전 총리는 지난 2020년 중국 국민 6억명 이상이 한 달에 140달러(약 18만원) 미만의 소득을 벌고 있다고 주장하며, 소득 불평등에 대한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중국은 주석이 정치와 외교, 총리가 경제라는 역할 분담을 해왔다"며 "이 전 총리는 고도성장에서 안정형 경제로의 발전을 제창해 '리코노믹스'라는 찬사를 받았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리 전 총리는 좀 더 개방적인 시장 경제를 지지했으며, 미연으로 끝난 ‘리코노믹스’를 통해 공급 측면 개혁을 옹호했다”고 했다.
외신들은 리 전 총리가 은퇴하기 몇 년 전부터 최고 권력에서 소외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BBC는 “그는 중국 경제를 통솔하는 지휘권을 부여받았지만, 최근 몇 년간 그 역할에서 제외됐다”고 짚었다. 로이터 역시 “베이징대에서 교육을 받은 엘리트 경제학자였던 리 총리는 한때 공산당 최고지도자의 경쟁자로 여겨졌으나, 최근 몇 년간 시 주석에 의해 점점 (정치 일선에서) 제외됐다”고 전했다.
일부 외신은 중국 당국이 온라인상에서 리 전 총리와 관련한 게시물들을 검열했다고 보도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올해 초 리 총리가 정부 부처를 돌면서 고별 인사를 나누며 직원들의 환대를 받는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공유되기도 했으나, 해당 영상은 중국 당국의 검열을 받아 삭제됐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리 전 총리와 같은 인물은 앞으로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봤다. 알프레드 우 싱가포르국립대 리콴유공공정책대학원 부교수는 “이런 유형의 사람은 더 이상 중국 정치에 존재하지 않는다”며 리 전 총리가 주룽지나 원자바오 등 과거 총리들에 비해 강력한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한 이유에 주목했다. 우 부교수는 “리 전 총리는 실각했다”며 “시진핑 치하에서 직면한 제약으로 인해 그가 무엇인가를 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고 지적했다.
웬티성 호주국립대 정치학과 객원 교수는 “리 전 총리는 자유 시장과 가난한 이들을 위했던 인물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버트 호프만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리 전 총리는 중국의 발전을 위해 정말로 노력했고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열린 대화를 촉진한 매우 열정적이고 열린 사람이었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