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글로벌 공동연구 투자 확대… 협력 전략도 함께 고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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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미양자기술협력센터
정윤채 한·미 양자기술협력센터장

민간과 정부를 합친 한국 연구개발비 규모는 세계 5위 수준이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은 이스라엘 다음으로 높은 세계 2위 수준이다. 즉, 우리는 버는 것에 비해 훨씬 많은 돈을 과학기술과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이런 높은 집중도는 지난 40년간 민간 부문에서 혁신을 끌어내는 주요한 동력이 됐다. 그 결과 반도체·휴대폰·가전·자동차·조선 등 주요 산업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는 바탕이 됐다. 

한국 경제 발전 초기에는 이미 산업화한 기술들을 자체 개발하는 데 주력해 기초과학 육성과 과학적 발견의 응용은 상대적으로 우선순위가 낮았으나 2000년대에 들어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투자가 급격히 늘었다. 성과로 간주하는 논문과 특허 역시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미국과학재단(NSF)이 2020년에 발표한 과학·공학 지표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발표된 전 세계 논문 255만편 중에서 우리는 6만6000여 편을 발표해 전체 중 2.6%로 9위에 들었다. 연평균 증가율도 4.2%로 인도, 중국, 러시아 등에 이어 상위권에 있다. 
그러나 글로벌 협력 지표로서 여러 나라 저자가 함께 작성한 논문 비중을 나타내는 국제공동저술논문 비중은 28%로 인도·중국·러시아·브라질·이란 등과 함께 하위권이다. 우리를 포함한 논문 실적 상위 15개국 평균인 41%와 비교해도 낮은 수치다. 영국 62%, 프랑스 59%, 독일 53%, 스페인 53%, 이탈리아 50%, 미국 39% 등 유럽과 미국과도 차이가 난다. 

이것은 한국이 벌어들인 돈 가운데 연구비를 많이 써서 논문을 많이 생산하는 일은 잘하고 있으나 다른 나라와 협력해서 하는 연구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세계적으로 나라 간 협력연구는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더욱이 양자정보과학 같은 첨단기술 분야에서는 기술의 블록화 현상까지 보여 국제적인 협력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이런 면에서 글로벌 공동연구와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투자를 늘린다는 정부의 정책 방향은 시의적절한 판단으로 생각한다. 외국에서도 이 같은 한국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해 긍정적 평가와 함께 협력에 대한 기대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협력연구 강화는 그저 투자 규모를 늘이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글로벌 공동연구와 협력은 이미 경험이 많고 전략적으로 준비가 된 국가들과 하게 될 것이므로 그들이 글로벌 협력을 어떻게 하고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우리 방식이 과연 그들에게도 익숙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미국과 유럽의 글로벌 공동연구·협력은 기본적으로 개별 연구자를 지원하는 형태로 이뤄지며 연구자들은 필요할 때 쉽게 타국 협력 연구자와 함께 과제 제안을 한다. 과제 진행 중에도 글로벌 협력이 필요하면 추가 연구비를 신청할 수도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하향식(톱다운)보다는 연구자 필요에 기반한 상향식(보텀업) 글로벌 공동연구가 주된 방식이며 이는 활발한 인적 교류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기초연구 단계부터 학회 네트워킹. 상호 방문 등을 통한 학문적 토론 등 다양한 방법으로 만남으로써 폭넓은 협력 기반이 만들어진다. 우리 연구자들은 기본적으로 미국과 유럽 축에서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여행과 시차 제약으로 가뜩이나 네트워크를 확대하기 쉽지 않은데 제도적으로 더 어렵게 하는 부분은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연구개발은 기본적으로 불확실성을 다루는 일인데, 우리는 여태까지 남들이 이미 개발해 놓은 '확실한 것'들을 쫓아온 '빠른 2등 전략'이 주된 전략이었다. 실패할 수도 없고 실패해서도 안 되며,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식으로 해 왔다. 이런 성향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문화가 오랜 기간 누적돼 문화로 자리 잡은 미국과 유럽 연구자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또한 연구개발 관리, 즉 기획·선정·평가 등은 수준 높은 전문성과 책임을 요하는 일인데, 우리는 투명성에 지나치게 치중해 책임을 분산하는 데 역점을 둬 왔다. 일례로 미국과학재단은 분야별 연구사업관리전문가(PD)를 중심으로 자기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고 관리책임을 지는 구조다. 반면 한국연구재단은 연구사업관리전문가(PM)가 과제 선정과 평가에서 철저히 배제돼 책임을 지지 않을 뿐 아니라 전문성을 발휘하기에도 어려운 구조다.

기초연구가 아닌 전략적 주제에 대한 협력일수록 관리자 전문성과 책임이 중요하므로 외국과 공동연구나 협력을 확대하려면 이러한 부분도 제도적으로 보완이 필요할 것이다. 

글로벌 공동연구와 협력은 파트너가 존재하며 그들과 우리 관행이 다를 수도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연구개발에 대한 글로벌 협력 강화·확대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전략과 제도 등에서 혹시 간과하고 있는 것이 없는지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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