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 파장에 중동 화약고가 터졌다. 글로벌 경제 전반에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대외 환경 변화에 취약한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하여 신경이 곤두서게 된다. 현재의 경제침체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전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고물가는 고금리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금융투자협회가 발표한 장외채권 시장동향에 의하면 9월 말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3.884%로 전월 대비 0.173%p 상승했고, 국고채 10년물은 4.030%로 0.209%p 올랐다. 물가 상승과 미국의 고금리 기조가 예상한 것보다 더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고금리는 증가하고 있는 가계 및 기업의 부채 부담을 직접적으로 가중시켜, 취약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부도율을 높일 수 있다.
1400원 선을 위협하고 있는 원·달러 환율도 큰 부담이다. 미국 국채 금리가 급등하면서 원·달러 환율의 불안정성이 심화되고 있고, 외환보유액도 감소하고 있다, 9월 말 외환보유액은 4141억 달러로, 지난달보다 42억 달러 줄었다. 2%p의 미국과의 금리차가 더 확대되면 외국인의 국내 투자가 감소될 수 있다. 10월 들어 외국인은 4일에서 6일까지 3일 동안에만 코스피 시장에서 1조1638억원의 순매도를 보였다. 중동사태의 금융시장에 대한 영향이 아직은 크게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향후 중동사태가 장기화되면 금융·외환시장의 불안은 더 커질 수 있다.
거시금융의 불확실성 증폭에도 불구하고 찬찬히 뜯어봐야 할 것은 거시금융 지표 하나하나보다는 실물경제의 펀더멘털이다. 대한민국 경제가 1997년 IMF 외환위기에서는 크게 흔들렸으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는 위기를 기회삼아 오히려 약진의 기회가 되었던 것은 펀더멘털의 차이였다고 할 수 있다. 1997년에는 경제구조가 취약했으나 2008년에는 앞선 경제위기를 극복하면서 경제 기반이 다져진 상태였다. 따라서 작금의 3高로 통칭되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과 중동사태를 극복할 수 있느냐 여부는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이 얼마나 튼튼하냐에 달린 것이다.
한국 경제는 올해 내내 1.4% 경제성장률을 붙들고 시름하고 있었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서 글로벌 경제가 성장세를 회복하고 있었으나 우리나라는 수출 감소와 내수 침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다행히 9월 수출이 회복세를 보였지만 여전히 전년 대비 4.4% 감소한 것이고, 반도체 수출과 대중국 수출이 개선되었으나 정상 궤도에 올라섰다고 볼 수 없다. 전년 동월 대비 8월의 산업생산동향을 보면, 광공업 생산은 –0.5%로 감소했고, 제조업 재고는 10.4% 증가했다. 소매판매는 –4.8%, 설비투자는 –14.9%를 기록하여 생산 소비 투자 전반이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기종합지수 순환변동치는 동행은 99.4, 선행은 99.3으로 모두 2020년 기준 100.0 이하를 나타내고 있다.
경기 사이클은 순환한다고 치부하더라도, 한국 경제 펀더멘털이 붕괴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저출산·고령화를 비롯하여 중장기적 국가를 구성하는 기본 흐름이 블랙홀로 빠져들고 있거니와 국가 경쟁력이 쇠락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서울 여의도 등 전국 곳곳에서 불꽃이 가을 하늘을 수놓고 있으나, 판타스틱한 불꽃처럼 이 모든 것이 한순간 사그라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것은 그냥 기우일까? 혹자는 1970년대의 석유파동의 악몽을, 혹자는 1990년대 말의 외환위기를 떠올리는 것은 다소 성급하게 느껴지지만 방심할 때가 아님은 분명하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과 중동사태와 같은 시급을 다투는 사안에 대해서 주도면밀한 대응이 필요하고, 이러한 대응능력은 우리나라가 다른 국가에 비해서도 비교적 잘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렇지만 단기적 임기방편적 처방만으로 국가 전반에 깊숙이 내재해 있는 질환을 치료할 수는 없다. 윤석열 정부가 핵심 국정과제로 채택하고 있는 노동개혁, 교육개혁, 연금개혁, 그리고 규제개혁 등이 바로 우리 경제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고, 잠재성장률을 3∼4%로 다시 끌어 올리고 3高를 극복하는 길이다. 국민 각자가 하루하루 살아가기 급박한 상황에서 정부가 좌고우면해서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국정 최고지도자가 국민과 국가의 번영된 미래만 바라보고 앞장서서 전진하면, 국민도 어느 순간에는 부정에서 긍정으로, 반대에서 지지로 입장을 바꾸고 따르게 된다는 것이 오랜 역사적 교훈이다.
김용하 필자 주요 이력
△성균관대 경제학 박사 △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전 한국경제연구학회 회장 △전 한국재정정책학회 회장 △현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