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아주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5월 A사 콜센터 사업장에서 화재경보기가 오작동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화재경보기가 울리자 콜센터 직원들이 대피하려 했지만 센터장 제지로 대피하지 못했다는 게 A사 노조 설명이다. A사 노조 지회장은 "당시 화재경보기가 울리자 건물 7층에 있던 직원들이 전화를 끊고 1층으로 내려가려 했는데 센터장이 '대피하지 말고 대기해 전화를 받으라'고 했다"고 전했다.
센터장은 화재경보기가 울릴 당시 7층에 화재가 없었고 경비실에 연락해 확인한 후 대기 지시를 내렸다는 입장이다. 다만 노조는 7층이 아닌 건물 다른 층에서 화재가 나도 경보기가 작동하는 구조라 대피를 제지할 이유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평소 잦은 화재경보기 오작동도 대피에 소홀한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근로자 입장에서 화재경보기가 울렸을 때 정상 작동과 오작동을 분간하기 어려워 대피가 우선이라고도 했다.
지회장은 "사고 이후 센터에 요청해 받은 '중대재해 대응 매뉴얼'에도 '화재 시 모든 업무를 중단하는 게 먼저'라고 돼 있었다"며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후 화재대응 매뉴얼 보완, 비상대피 훈련 실시, 소화기 등 화재예방 물품 설치를 요청했지만 감감무소식"이라고 덧붙였다. 센터장은 "사건 이후 팀장들에게 화재경보가 울릴 시 대피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며 "그간 코로나 유행으로 소방훈련이 이뤄지지 않았는데 향후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근로자 대피 늦어지면 '대형 참사'로
사업주가 화재경보기 오작동을 근거로 근로자 대피를 늦출 경우 실제 화재 발생 시 초기 대피가 어려워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21년 7월 인명수색 과정에서 소방관 1명이 사망한 경기 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당시 방재실 관계자들이 기기 오작동으로 오인해 방재 시스템 작동을 초기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경찰은 화재경보기가 울릴 당시 현장 확인은 없었고 방재 시스템 작동 지연이 화재 확산으로 이어졌다고 파악했다.사업주가 상황을 파악했다는 이유로 근로자 대피를 막을 근거도 부족하다. 산업안전보건법 제52조는 사업주 지시 여부와 관계없이 근로자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는 권리인 '근로자 작업중지권'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장 화재는 '산업재해', 화재경보기가 울리는 상황은 '급박한 위험'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전문가 설명이다.
다만 근로자들은 현장에서 근로자 작업중지권이 제대로 지켜지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근로자 입장에서 일을 지속하라는 사업주 지시를 어겼을 때 불이익에 대한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김현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수석지부장은 "콜센터 직원들은 화장실에 가거나 물을 마시려면 윗선에 보고해야 한다"며 "상담을 멈추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고 전했다. 민병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쿠팡 지회장은 "근로자가 대피하는 과정에서 일을 멈춰야 하고, 손해가 발생한다는 생각이 있어 사용자가 대피를 제지하는 경우가 있다"며 "어느 사업장이나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보완해야
전문가들은 고용부가 산업안전보건법상 '근로자 작업중지권' 보장을 위해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은 작업중지가 가능한 상황으로 '기상상태 불안정', '벼락이 떨어질 우려가 있는 경우' 등으로 정하고 있는데 폭이 좁다는 지적이다.유재원 법률사무소 메이데이 대표 변호사는 "야외에서의 비, 눈, 천재지변, 벼락뿐만 아니라 화재경보 등 실내에서 경보가 울릴 때도 근로자가 작업을 중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수석지부장은 "콜센터 직원들에게 화재 시 안전매뉴얼 마련과 작업중지권 보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