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게 깔린 검은 비단···생명의 땅 무안
무안의 보배는 뭐니 뭐니 해도 '갯벌'이다. 드넓고 비옥하다. 무려 147.6㎢에 달하는 면적을 자랑하는 이곳은 2001년 12월 국내 1호 갯벌보호습지로 지정됐다. 어디 그뿐인가. 2008년에는 람사르 습지(1732호)에 이름을 올렸고 갯벌도립공원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곳 무안갯벌은 과연 '생태계의 보고'답다. 멸종 위기 야생동물로 지정된 흰발농게를 비롯해 말뚝망둥 등 저서생물 240여 종, 칠면초와 갯잔디 등 염생식물 40여 종, 혹부리오리와 알락꼬리마도요 등 철새 50여 종이 갯벌에 기대어 살아간다. 멸종 위기종이 서식한다는 것만 봐도 무안갯벌이 얼마나 청정한지를 가늠할 수 있다.
무안황토갯벌랜드에는 전시학습 공간인 무안 생태갯벌과학관을 비롯해 갯벌 위를 천천히 걸으며 드넓은 갯벌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데크 산책로, 갯벌 체험장, 대규모 캠핑족을 수용할 수 있는 오토캠핑장과 카라반, 황토이글루, 식당과 카페테리아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조성돼 있다.
먼저 무안 생태갯벌과학관으로 향한다. 황토갯벌랜드는 해마다 20만명이 방문할 정도로 무안 대표 명소로 손꼽히는 곳이다. 특히 해설 프로그램을 통해 갯벌 생태와 멸종 위기종인 흰발농게를 비롯해 집게, 도둑게 등 갯벌에서 살고 있는 주인공들에 대해 체계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다.
황토갯벌랜드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 여파에 최근 2~3년간은 연간 방문객 수가 10만명에 못 미쳤지만 지난해부터 방문객 수가 껑충 뛰었다"며 "과학관은 휴일에는 하루 1000명가량 방문한다"고 귀띔했다.
규모도 상당하다. 전체 면적 3378㎡, 지상 2층 규모인 생태갯벌과학관은 1층에는 안내데스크, 갯벌 생물관, 갯벌 탐구관, 갯벌 미래관, 디지털 수족관, 다목적 영상관, 스마트 빌리지, 어업 유산관이 있으며 2층에는 힐링카페, 갯벌 키즈존, 전망대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론을 습득한 후 무안생태갯벌과학관 바로 앞에 펼쳐진 무안 갯벌로 향한다. 볕을 가릴 모자와 체험복을 입고 갯벌로 나가 생태활동을 즐기며 잡념을 떨쳐 낸다.
갯벌체험 외에도 즐길 거리는 풍성하다. 무안생태갯벌과학관 1층에서 농게 만들기, 하늘물고기 색칠하기, 낙지인형 만들기 등 미술 체험이 여행객을 기다린다.
황토 찜질방이나 분재 전시실도 들러볼 만하다. 특히 분재 전시관에서는 고(故) 문형열 옹이 기증한 분재 작품 등 분재 관련 전시품 총 1000여 점을 볼 수 있다.
빌딩숲에서 벗어나 탁 트인 갯벌을 보니 가슴이 뻥 뚫린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갯벌 위로 햇살이 부서져 내린다. 끝없이 펼쳐진 검은 비단에 보석이 흩어진 듯 반짝반짝 빛이 난다.
갯벌을 온몸으로 만끽한 후 갤러리 '못난이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2016년 10월 문을 연 이곳에는 조각가 김판삼 작품으로 가득한데, 작품이 퍽 이색적이다.
초창기 인체 위주 사실주의 작품 창작을 추구했던 김 작가는 문득 외모 지상주의가 팽배한 세상에 대한 회의가 들었고 '외모보다는 내적 아름다움을 추구해 보자'는 생각으로 새로운 작품들을 창작하기에 이르렀다.
김 작가는 "우리 어머니를 볼 때마다 자식을 위해서 꾸미는 것을 애써 포기하던 기억이 떠오른다"며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 못난이들이야말로 남들을 위해 희생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 못난이 미술관을 조성해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 작품은 못생겼지만 그 못난이들이 활짝 웃는 모습이야말로 이 세상의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관람객들이 웃고 돌아갈 수 있도록 쉽게 접할 수 있는 제목을 붙였던 것이 관람객들과 공감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김판삼 작가는 늘 '못난이들이 있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이 돋보인다'는 생각을 한다. 지역 주민들과 힘을 합쳐 남은 건축자재, 자전거 거치대는 물론 스티로폼 등 버려진 생활 쓰레기도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못난이 미술관에서는 못난이 아트월 만들기, 나만의 머그컵 만들기, 맞춤형 조형 체험, 에코백 만들기, 손 모형 만들기 등 가족 단위 관람객을 위한 체험도 진행하고 있다. 미술관은 오전 10시에 열고 오후 7시에 문을 닫는다. 휴관일은 없다.
◆황금빛 노을 깔린 그곳···노을길
어느새 구름 사이로 황혼이 깔리기 시작한다. 지체할 틈이 없다. 바로 노을길로 향한다.
노을길은 조금나루 해변에서 봉오제까지 이어진 10.75㎞에 이르는 해안도로다. 이름 그대로 노을길이다. 해 질 녘 노을을 감상하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도로뿐 아니라 산책로와 공원 등이 조성돼 있어 스치듯 감상하지 않아도 된다. 가만히 서서 화려한 저녁 빛을 오롯이 눈과 마음에 담는다.
만남의 길, 자연행복 길, 노을 머뭄 길, 느리게 걷는 길 등 4개 구간으로 이뤄진 이 구간도 주제별 스토리와 특색이 있어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서서히 짙어진 노을이 어느새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하늘과 땅이 온통 흑빛으로 변한다.
이제 발길을 옮겨야 하는데 아쉬움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지는 태양을 품고 일렁이던 물결처럼 내 마음도 일렁인다. 이대로 여행을 끝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무안낙지공원 내에 자리한 노을길 야영장에서 하룻밤 머물기로 한다.
무안 앞바다 풍광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이 야영장에는 데크로 이뤄진 일반 캠핑 사이트 10면과 카라반 2대가 마련돼 있다. 텐트를 설치하거나 야영을 할 수 없지만 무료로 즐길 수 있는 피크닉장도 운영 중이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주변에는 조금나루 해수욕장이 있어 연계해 여행을 즐기기 좋다.
눈을 감고 오늘 여행을 떠올린다. 물리고 긁혀 생채기 난 마음에 새살이 돋아난 기분이다. 황금빛 석양, 코끝 시린 늦가을 바닷바람, 광활한 갯벌, 바라만 봐도 미소 짓게 하는 작품들까지···. 모든 것이 '치유'임을 깨달으니 공허한 마음은 충만해지고, 어지러운 머릿속은 가뿐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