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미국 자산규모 16위인 실리콘밸리은행(SVB)이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으로 인해 파산하고 지난 7월 국내에서도 새마을금고가 뱅크런 위기 직전까지 몰리면서 국내외에서 금융권의 뱅크런 위기 돌파를 위한 대응책 마련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점 수가 적고 비대면예금 비중이 높을수록 뱅크런 리스크가 커진다며 정부와 시장 간 소통 강화 필요성 등을 거론하고 있다.
◆ 뱅크런에 취약한 은행?···"지점 수 적고 비대면예금 비중 클수록 리스크 커"
2일 예금보험공사는 지난달 '은행 지점 밀도와 뱅크런 취약성' 보고서를 통해 '지점 없는 은행일수록 위기 시 뱅크런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평소 지점 밀도가 낮은 은행들이 모바일뱅킹에 익숙한 기업·개인 고객 예금을 적극적으로 유치할 수 있으나 반대로 위기가 터지면 예금자들이 온라인으로 빠르게 거액의 예금을 유출할 위험도 높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 뱅크런 당시 파산한 은행들의 지점 밀도가 최하위권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자산규모 1750억달러였던 SVB의 지점은 17개에 불과했다. 지점 밀도란 '예금 10억 달러당 지점 수가 몇 개인지'를 나타낸다. 퍼스트리퍼블릭(1660억달러) 은행은 87개, 시그니처 은행(1040억달러)도 38개에 그쳤다. 미국 은행의 지점 밀도 하위 10분위가 0.7이었으나 해당 은행들의 수치는 이를 훨씬 하회했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비대면예금 비중이 커지고 있으나 아직 높지 않은 수준이어서 디지털 뱅크런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며 "새마을금고의 예금인출 사태 시 인출 규모가 확대되지 않았던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대체로 비대면 이용 예금자는 금리 인상이나 수준에 민감한 만큼 금융 불안 등이 나타났을 때 더욱 빠르게 은행에 맡긴 돈을 인출할 우려가 크다는 시각이다.
◆ "정부, 정보 제공 통해 예금인출 성향 낮춰···소통 강화로 불안 최소화해야"
그렇다면 금융권의 뱅크런 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예보는 국제결제은행(BIS)의 학술 논문을 인용해 정부가 예금자 등의 불안심리를 해소하기 위해 은행 시스템이 문제 없다는 점 등을 표명하는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펼칠 경우 예금 인출 성향이 효과적으로 완화될 수 있다고 봤다.
BIS는 대형은행 부실이 다른 은행 예금자의 예금인출성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정부의 커뮤니케이션이 예금자의 예금인출성향을 완화할 수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예금자 표본 6000명을 대조그룹(2000명)과 4개 처리그룹(각 1000명)으로 나눠 각기 다른 정보를 제공하고 성향 변화를 비교 분석했다. 대조그룹에는 추가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실험 결과 SVB가 뱅크런 이후 파산했다는 정보를 제공받은 처리그룹 1 예금자들은 예금인출성향이 대조그룹에 비해 1.7%포인트 확대됐다. 대형은행 파산 정보만으로 예금 인출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반면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은행 파산 시 1인당 25만달러까지 예금을 보호한다는 정보를 가진 처리그룹 2 예금자들의 예금인출 성향은 대조그룹에 비해 1.5%포인트 감소했다.
은행에 긴급유동성을 지원할 권한을 가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은행 시스템의 안정성을 강조했다는 정보를 취득한 처리그룹 3의 예금인출성향도 대조그룹에 비해 1.7%포인트 낮아졌다. 다만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은행 시스템의 견고함을 강조하는 연설을 청취한 처리그룹 4 예금자들의 예금인출 성향에는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다.
BIS는 "정부와 예금보험기구의 커뮤니케이션 노력이 예금자의 불안 심리에 따른 뱅크런을 방지할 수 있다"며 "특히 디지털 발달로 패닉에 따른 뱅크런 속도가 과거에 비해 훨씬 빠른 점을 감안해 신속하게 예금자 등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상황별 컨틴전시플랜(비상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