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재가 화웨이에 압박이 된 것은 분명하지만 압박은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20일 보도된 화웨이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런정페이(任正非)의 발언이다. 전날에는 쉬즈쥔(徐直軍) 화웨이 부회장이 지난 주말 2023 월드 컴퓨팅 콘퍼런스에서 “중국과 외국이 개발한 반도체와 서버, PC 간 기술 격차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우리가 자체 개발한 제품을 쓰지 않으면 그 격차는 절대 좁혀지지 않을 것”이라며 국산 칩 사용 확대를 촉구하는 발언을 한 게 대대적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화웨이가 미국의 수출 통제를 뚫고 최첨단 칩을 내장한 신형 스마트폰을 출시하며 미국의 심기를 건드린 가운데, 중국 언론은 연일 화웨이 인사들의 발언을 전하며 기술 자립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런 CEO는 또한 “화웨이는 원래 미국에 기반 플랫폼을 뒀었지만 (미국의) 제재가 본격화하면서 이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며 “지난 4년간 20만여명의 직원들의 노력 끝에 이제는 자체 기반 플랫폼을 구축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술 전환 시기가 점점 더 짧아지면서 기초 이론 연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며 “화웨이는 이를 위해 매년 30억∼50억달러(약 3조9900억∼6조6500억원)를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런 CEO의 이 같은 발언은 화웨이가 기술 자립을 이뤄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미국의 대(对)중국 제재가 중국의 기술 개발 노력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현실화한 셈이다.
미국은 2020년 5월 미국 기업이 화웨이에 반도체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화웨이를 거래제한 명단(entity list)에 추가했다. 화웨이가 중국 인민 해방군과 연계돼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의 제재로 화웨이는 지난 3년여간 새로운 스마트폰을 내놓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달 29일 화웨이는 중국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인 중신궈지(SMIC)가 생산한 7nm(나노미터·10억분의 1m) 반도체를 탑재한 신형 스마트폰 '메이트 60 프로'를 공개하며 3년 만에 화려하게 귀환했다. 미·중 기술 패권 전쟁의 첫 번째 희생양이었던 화웨이가 미국의 제재를 뚫었다는 사실은 미국에게도, 중국에게도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에 중국은 정부 기관 공무원들에게 아이폰 사용 금지령을 내리며 화웨이 띄우기에 나섰고, 미국은 화웨이가 7nm 칩을 대규모로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며 관련 조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화웨이가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메이트 프로에 내장된 부품 대부분이 중국산인 것도 중국이 어느 정도 기술 자립을 이뤘다는 데 무게를 싣는다. 앞서 블룸버그는 스마트폰용 D램과 낸드플래시를 제외한 모든 부품이 중국산이라는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무선통신 프론트엔드 모듈은 앙루이웨이(昂瑞微), 위성 통신 모뎀은 화리창퉁(華力創通), 무선주파수 송신(RF) 트랜시버는 룬신커지(潤芯科技)의 제품인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디스플레이 제조사 화잉커지(华映科技)와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후이보윈퉁(慧博云通) 등 다수의 중국 상장사들 역시 화웨이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뿐만 아니라 20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중국 주요 반도체 회사인 YMTC(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는 자사가 사용하고 있는 미국산 반도체 설비를 중국산으로 교체하기 위해 중국 내 설비업체들과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뿐 아니라 반도체 설비에 있어서도 기술 자립을 시도하는 모양새다.
중국은 우수한 기술력을 갖춘 화웨이를 대표주자로 내세워 기술 자립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시진핑 정부는 3기 체제를 개막하며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를 겨냥한 발언을 다수 내놓은 가운데 인재 확보와 기술 자립을 위한 노력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는 최근 화웨이가 300억 달러 규모의 정부 지원금을 확보하고 중국 전역에 ‘비밀 반도체 시설’을 짓고 있는 정황을 파악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