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도 '플리바게닝'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는 가운데,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에 '한국형 플리바게닝'으로 평가되는 '사법협조자에 대한 형벌감면제도'가 시행 6개월을 앞두고 있어 주목된다. 경제범죄에 처음으로 시행되는 이번 제도를 두고 각계각층의 우려와 기대가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법조계는 이 제도가 조직범죄를 소탕하는 데 효율적인 수단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추후 '한국형 플리바게닝' 제도를 개별법이 아닌 일반 형사법에 확산해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6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에는 수사협조자에 대해 형벌을 감면하는 제도가 신설됐다. 개정안은 '미공개정보 이용행위, 시세조종행위 또는 부정거래행위를 자진 신고하거나 수사·재판절차에서 해당 사건에 관한 다른 사람의 범죄를 규명하는 진술 또는 증언 등과 관련해 자신의 범죄로 처벌되는 경우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 받을 수 있다'고 규정했다.
경제범죄에 '사법협조자 형벌감면' 도입…수사 효율성 증대 '기대'
공정거래법에도 담합 행위를 자진해 신고하는 기업에 과징금을 면제하거나 감면하는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제도)' 제도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이는 형벌이 아닌 과징금만 감면한다는 점에서 이번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포함된 '사법협조자 형벌감면 제도'와는 차이가 있다.
전문가들은 자본시장법 '사법협조자 형벌감면 제도' 도입으로 적은 수사 인력으로도 조직범죄를 효율적으로 소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러 명이 공모해 시세조종을 하거나 사기적 부정거래, 미공개 정보이용 행위 등을 할 경우 한 명의 배신으로도 가담자들을 모두 검거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조재빈 변호사(법무법인 바른)는 "범죄 가담자들이 많아질수록 배신의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범죄자들이 섣불리 뭉치지 못하고, 대규모 범죄도 저지를 수 없게 된다"며 "범죄 가담자들이 언제든지 공범에 대해 제보하거나 증거를 수사기관에 제공하고 형사처벌을 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서로를 배신할 강력한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에 자본시장법에 '사법협조자 형벌감면 제도'를 도입한 것은 수사에 다양한 방법으로 협조한 사람에 대해 적절한 기준을 정해 형벌을 면제하거나 감경해줌으로써 실체적 진실을 명확히 하고 공소유지에 핵심적인 증거를 손쉽게 확보할 수 있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조직범죄 소탕 위해 내부자 협조 필수…형소법 등에도 도입해야"
일각에서는 제도 도입을 두고 "사실상 영미법상 플리바게닝 도입이 아니냐"며 우려한다. 그러나 법조계는 금융·자본시장에서 자행되는 조직적 경제범죄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내부자의 수사 협조를 유도할 이 같은 제도가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다. 자본시장법과 같은 개별법에 도입된 '사법협조자 형벌감면 제도'가 조직범죄 소탕 효과를 거둔다면 다른 조직범죄 분야에 이어 형법과 형사소송법 등 일반법까지 도입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조 변호사는 "최근 국내에 마약이 대규모로 유통되면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데 마약범죄도 제조·유통에 다수인이 가담할 수밖에 없는 조직범죄"라며 "이런 범죄 분야에도 '사법협조자 형벌감면 제도'가 도입된다면 범죄를 내부로부터 손쉽게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경렬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형벌 감면을 법원 재량으로 남겨둬 수사 협조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며 "일반법인 형소소송법 등에 사법협조자 형벌감면 제도를 도입해 검사가 협상할 수 있도록 하고 법원이 통제하는 방향으로 보다 개선될 필요는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