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007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를 기억하는가.
시대에 따라 제임스 본드를 연기한 배우는 달라졌다. 그러나 제임스 본드가 당대 최고의 스타임에 이견을 내놓을 이는 없을 듯하다. 제임스 본드는 첩보전에 특화한 무기와 장비에 소위 ‘수트 빨’이라고 불리는 날렵한 정장 차림으로 대표된다.
1998년 외환위기를 겪은 한국인들에게 2000년은 서서히 경제 회복의 기대감이 움트던 시기다. 아직까지 외환위기의 상처가 곳곳에 남아있었기에 100% 핸드메이드 맞춤 수트를 표방하는 초고가 수트가 자리잡기에는 시기상조였다. 현재 브리오니의 가격대는 1000만~2000만원대, 2000년대 초반에도 가장 저렴한 품목이 400만원 수준이었다.
브리오니의 한국 진출은 실패하는 듯했다. 적어도 2009년 패션기업 신원과 손을 잡기 전까지는 말이다. 신원은 브리오니와 국내 판권계약 후 신세계 강남점과 본점을 비롯해 갤러리아 명품관, 신세계 프리미엄 아울렛 여주점과 파주점에 잇달아 입점시켰다.
신라호텔 내에 매장을 오픈해 VIP 투숙객들을 고객으로 유치하기도 했다. 신원은 내년 대구와 부산에도 브리오니의 매장을 낼 계획이었다. 2009년 40억원에 불과하던 매출은 지난해 100억원 이상으로 성장했다. 브리오니의 성장은 신원의 여성복과 남성복에 대한 국내 유통 노하우가 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올해 신원은 돌연 브리오니로부터 계약해지를 통보받았다. 14년의 동반자 관계를 브리오니측이 일방적으로 끊어버린 것이다.
브리오니뿐만 아니다. 셀린느, 톰브라운, 끌로에 등 명품 브랜드들도 직진출을 선언하며 국내 파트너사와 결별 수순을 밟았다.
주류업계에도 유사한 사례가 존재한다. 골든블루는 최근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한 칼스버그 그룹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골든블루는 5년간 칼스버그의 국내 유통을 책임져왔다.
2018년 골든블루가 칼스버그의 국내 유통을 시작할 때가 기억난다. 광화문에서 대대적인 기자간담회를 열고 칼스버그를 국내 맥주 시장 선두주자로 키우겠다던 골든블루 대표의 포부는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골든블루 대표는 약속을 지켰다. 2018년 수입맥주 시장 점유율 15위권 밖을 맴돌던 칼스버그를 5년 만에 10위권 내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성장의 주역에게 돌아온 것은 계약해지였다. 국내에서의 가능성을 확인한 칼스버그그룹은 칼스버그코리아를 설립하면서 파트너십을 깨고 직진출에 나섰다. 골든블루는 위스키와 함께 포트폴리오의 한 축을 담당했던 주력 맥주 브랜드를 잃으며 실적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글로벌 기업 한국법인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한국콜마는 이탈리아 기업의 한국법인인 인터코스코리아와의 영업비밀 유출 관련 법적 분쟁에서 승소했다. 법원은 한국콜마가 전 연구원이 인터코스 코리아로 이직하면서 기술을 빼돌렸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기업간 계약은 언제든 깨질 수 있다. 인재를 중용하는 것은 기업의 투자다.
그러나 시장 진출을 돕고 인지도를 높이는 데 공을 세운 파트너에게 등을 돌리는 행위가 과연 정당할까. 또 기술을 가로챌 목적으로 인재를 빼돌린 행위를 투자로 볼 수 있을까.
'○○코리아'의 등장이 반갑지 않은 이유가 점점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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