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부동산 신탁사들이 올 상반기 신규 차입형 토지신탁 사업 규모를 줄이는 대신 정비사업 수주를 확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부동산 침체기에 상대적으로 위험 부담이 낮은 신탁방식 도시정비사업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다만 도시정비사업에서 신탁방식이 도입된 지 6년이 넘었지만 실제 준공실적이 많지 않아 성과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달려 있다.
3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말 기준 한국토지신탁·한국자산신탁·코람코자산신탁·KB자산신탁·대한토지신탁 등 상위 5대 신탁사의 차입형 토지신탁 수탁고는 8조1626억원으로, 지난해 말 8조2113억원 대비 6개월 만에 487억원 감소했다.
대한토지신탁은 8399억원에서 8279억원으로 120억원, KB부동산신탁은 1조3807억원에서 1조3710억원으로 97억원 감소했다.
반면 신탁방식 도시정비사업 수주 소식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한국토지신탁의 신탁방식 도시정비사업 수주잔고는 지난해 말 2868억원에서 올 상반기 말 3085억원으로 증가했다. 연간 비중으로도 지난 2020년 19.6%에서 지난해 42.9%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한토신은 올해 들어서만 서초 삼풍아파트, 삼전동 모아타운, 목동10단지, 강서구 마곡 신안빌라, 여의도 삼익 등 10곳의 사업장에서 업무협약(MOU)을 맺거나 사업시행자·대행자로 지정됐다.
한국자산신탁은 올 들어 양천구 목동9·11단지, 금천구 시흥동 남서울럭키, 도봉구 창동주공2단지 등 6곳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했고 대한토지신탁은 강남 봉은지구 재개발, 상계주공11단지 재건축 등 신탁방식 정비사업 4건을 따냈다. KB부동산신탁은 목동14단지, 송파구 가락7차현대 등 사업시행자로 선정됐다.
이러한 변화는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한 분양률 하락 우려로 신탁사들이 과거처럼 차입형 토지신탁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힘든 상황이어서다. 차입형 토지신탁은 신탁보수가 다른 신탁상품보다 높고 사업비 지급을 통해 이자수익도 발생하지만 공사비 등 사업비를 신탁회사가 직접 조달해야 해 자금 부담이 크고 분양시장 상황에 따라 사업비 손실에 대한 리스크가 높다.
다만 신탁방식 정비사업장이 늘어나고 있는 반면, 아직 성과가 난 사업장은 많지 않다는 점은 불안 요소로 꼽힌다. 여의도 시범아파트 재건축추진위는 한국자산신탁과 지난 2016년 MOU를 맺었지만 아직까지 첫 삽도 뜨지 못했다. 지난해 서울시 신통기획 대상지로 선정되기 전까지 사실상 사업 진행이 멈춰 있던 셈이다. 신탁방식 도시정비사업이 도입된 지난 2016년 이후 한국토지신탁과 한국자산신탁, 하나자산신탁의 신탁방식 정비사업 준공현장은 각각 한 곳에 그쳤다. KB부동산신탁은 아직 준공 실적이 없다.
신탁사 관계자는 "자체 자금으로 사업을 벌였다가 큰 손실을 볼까봐 차입형 사업은 더욱 신중하게 검토하는 중이며, 위험관리에 방점을 찍고 수익률은 낮아도 안정적인 도시정비 수주에 집중하는 분위기"라며 "다만 신탁방식은 지정고시, 관리처분인가 등 인허가 단계별로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사업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 정비사업 MOU를 체결하고 수년이 지나도록 사업이 진행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