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오세훈 서울시장의 미래복지모델인 ‘안심소득 시범사업’이 시작됐다. 안심소득 시범사업은 심화된 소득 양극화를 완화하고 복지 사각지대를 보다 촘촘하게 메워주는 새로운 복지 해법을 찾기 위해 서울시가 추진하는 최초의 소득보장정책 실험이다.
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선정 기준이 까다롭고 전세보증금과 자동차 등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해 수급 수준을 정하고 있어 복지사각지대 해소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안심소득은 이러한 한계점을 해결하기 위해 복지의 문턱은 낮추고 소득보장 수준은 높여주는 방식으로 설계해 취약계층을 폭넓게 지원해 시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이 목적이다.
또한 4차 산업혁명에 따라 AI기술의 발달, 무인화, 플랫폼 노동 증가 등으로 일자리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해 현재 복지제도만으로는 취약계층 지원에 한계가 있으므로 새로운 미래 복지제도 마련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런 움직임은 외국에서도 다양한 소득보장 실험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안심소득 시범사업은 기준 중위소득 85% 이하이면서 재산 3억2600만원 이하인 가구를 대상으로 ‘기준소득 대비 부족분의 일정 비율을 채워주는 새로운 소득보장제도 모형’이며 1단계와 2단계로 나눠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7월 급여를 하기 시작한 1단계 시범사업은 기준 중위소득 50% 이하 가구를 대상으로 484가구를 선발해 2022년부터 2025년까지 3년간 안심소득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대상자를 선발하고 7월에 첫 급여를 지급한 2단계 시범사업은 기준 중위소득 85% 이하 1100가구를 대상으로 하며 2023년부터 2025년까지 2년간 안심소득을 지원한다.
지원 금액은 기준 중위소득 85% 기준액과 가구소득 간 차액의 5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지난 24일 한국노동경제학회에서 서울 안심소득 1단계 지원가구를 대상으로 한 중간조사 결과 성공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월부터 안심소득 시범사업을 이끌어 가고 있는 이수연 서울시 복지정책실장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었다.
-안심소득 시범사업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
"안심소득은 기준 중위소득 85%와 가구소득 간 차액의 절반을 지원하는, 소득이 적은 취약계층에 더 많은 혜택이 갈 수 있도록 설계된 하후상박(下厚上薄)형 소득보장모델이다. 기존 복지제도의 문제점에 맞추어 재산의 소득환산을 없애고 근로능력과 부양가족 입증 절차를 간소화했으며 지원대상 범위와 소득보장 수준을 확대시켰다. 가구 소득이 일정 기준을 넘으면 수급 자격을 박탈하여 삶의 질과 근로의욕을 떨어뜨리는 현 사회보장제도와는 달리 기준 소득을 넘어도 수급 자격을 박탈하지 않고 실업 등으로 가구소득이 줄면 부족한 소득을 자동으로 산정·지급해 위기 가구에 대한 선제 지원이 가능하다. 또한 수급 가구의 근로의욕을 저해하지도 않는다. 전문가들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소득보장 모형 가운데 소득분배 효과가 가장 크며 사각지대의 반복되는 비극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안심소득 1단계 시범사업은 중위소득 50%를 대상으로 했고, 2단계 시범사업은 중위소득 85%까지로 확대시켰다. 이유가 무엇인가.
"당초 안심소득 시범사업을 설계할 때부터 1단계와 2단계로 나누어 추진하도록 했다. 저소득 가구 중 보다 지원이 시급한 가구인 기준 중위소득 50%(1인 가구 기준 103만8946원)를 대상으로 1단계 사업을 추진하고, 실험의 타당성 확보와 시민들의 공감대 형성을 고려해 2단계 사업은 기준 중위소득 85%(1인 가구 176만6208원)까지 선정 기준을 확대한 것이다."
-현재 국민기초생활수급제도가 있지 않나. 이 제도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봤기에, 이런 안심소득을 하는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부양의무자가 있으면 수급대상자로 선정되지 못하고 근로 능력이 없음을 입증 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선정 기준과 전세보증금, 자동차 등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해 수급 수준을 정하고 있다. 이는 분명 복지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 한계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4월 발생한 창신동 모자 사망 사건(창신동 낡은 집에서 지병을 앓고 있던 80대 노모와 50대 아들이 숨진 지 한달 만에 발견된 사건)을 예로 들면 이 가구의 월 소득은 55만원이었다. 이 돈으로는 약값과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들은 기초생활 수급 신청을 했으나 1억7200만원의 낡은 집 한 채 때문에 지원 대상에서 탈락해 비극적인 선택을 하게 됐다. 그러나 안심소득은 대상자 선정 시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하지 않으므로 월 소득이 전혀 없는 가구를 전세보증금이 있다는 이유로 지원 대상자에서 탈락시키거나 소득인정액으로 환산해 지급액을 깎지 않는다. 창신동 모자의 경우 허름한 집은 있지만 실제 가구소득은 월 55만원이었으므로 안심소득을 적용할 경우 월 95만6000원의 안심소득 지급이 가능하다."
-현재 해외에서도 새로운 복지제도에 대한 정책실험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전 세계적으로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고 더욱이 2019년 코로나19 위기로 기존 소득보장 제도의 한계 부각, 소득 양극화 완화 필요성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소득보장 실험이 진행 중에 있거나 진행된 적이 있다.
미국에서는 2020년 캘리포니아주 마이클 터브스 전 스톡턴 시장이 ‘보장소득제를 위한 시장 모임’을 설립해 현재 100여 개 도시가 참여해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또한 캘리포니아주 스톡턴시(2019년 2월~2021년 1월), 로스앤젤레스시 (2022년 1월~2022년 12월), 미시시피주 잭슨시(2022년 5월~2023년 4월), 일리노이주 시카고시(2022년 8월~2023년 7월) 등지에서 소득보장 정책실험을 했다. 핀란드에서도 국가 차원에서 2017~2018년까지 2년에 걸쳐 실험을 했으며, 독일은 2021년부터 베를린 기본소득 실험을 하고 있다."
-1단계 사업이 시작된 지 1년이 넘었다. 어떠한 성과가 있었나.
"아직 실험 초기 단계라 성과를 논하기에는 이른 감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1단계 지원 가구 대상으로 1차 중간조사한 결과 의료비, 식료품비 지출 등 필수 생활 지출이 늘었고 우울감, 스트레스 등 정신 건강이 무척 개선됐다. 그리고 지원 가구 절반 이상이 근로소득 증가를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설문에 기반한 기초 분석일 뿐이다. 소득·재산 변동 등 공적자료까지 포함한 보완 평가 결과는 올해 12월 국제포럼에서 최종 발표할 계획이다."
-안심소득 시범사업 참여가구의 사례를 소개한다면.
"오세훈 시장님과 인터뷰도 했던 분인데 개인 사업 실패로 자활센터에서 지내는 등 어려운 시절이 있었지만, 시에서 운영하는 '희망의 인문학 프로그램' 수강, 안심소득 1단계 시범사업에 참여해 자립에 성공했다. 현재 2년째 경비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분이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적금이라는 것을 가입하게 돼 뿌듯하다는 소감을 들으면서 ‘안심소득이 인간의 삶의 질을 이렇게 바꿀 수 있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안심소득이 복지사각지대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시민들에게 한줄기 희망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안심소득 관련 국제 포럼도 한다고 하던데.
"2022년에 이어 올해도 12월 20일과 21일 이틀간 서울 동대문구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서울 국제 안심소득 포럼’을 개최할 예정이다.
올해로 2회째를 맞는 ‘서울 국제 안심소득 포럼’은 각국의 소득보장 정책실험 동향과 사례를 공유하고 함께 논의하는 장을 마련해 안심소득을 국제적으로 공론화하고 위상을 제고하자는 목적으로 개최하기 시작했다. 올해는 소득보장 정책이 나아갈 길을 주제로 안심소득 성과평가 중간 결과에 대한 최종보고서를 발표하고 201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에스테르 뒤플로가 기조연설과 안심소득 중간평가 토론자로 참여할 예정이다. 또한 각국의 도시 연구기관들과 함께 ‘소득보장 네트워크’를 구축해 소득 보장 정책 발전을 위한 국제적 교류 및 협약을 추진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안심소득 시범사업을 이끌고 있는 수장으로서 한마디 해 달라.
"안심소득은 우리 생활 속의 작은 부분의 변화로부터 시작해서 삶의 태도를 변화시키고, 나아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복지사각지대, 빈곤·불평등이 전 세계적 과제인 만큼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안심소득 정책실험에 대해 국내외적으로 관심과 기대가 크다. 세계적인 학자, 연구기관, 해외도시 등과 연구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효과를 면밀하게 검증하여 시민 모두의 기본적인 삶이 보장되는 지속 가능한 복지모델로 완성해 나가겠다."
◆이수연 복지정책실장은
△서울대 산림자원학과(학사)△캘리포니아 웨스턴 로스쿨 법학과(석사)
△KDI국제정책대학원 공공정책학과(석사)
△기획조정실 조직담당관
△대변인 언론담당관
△푸른도시국 서울로운영단장
△중랑구 부구청장
△행안부 지방자치인재개발원(국내교육파견)
△서울대공원장
△복지기획관
△복지정책실장(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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